교과서:미국: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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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차

1 콜럼버스, 인디언, 인간의 진보
2 피부색에 따른 차별
3 천하고 상스러운 신분의 사람들
4 폭정은 폭정이다
5 일종의 혁명
6 친밀한 방식으로 억압당한 사람들
7 풀이 자라고, 물이 흐르는 한
8 다행히도 정복으로 차지한 땅은 전혀 없다
9 복종 없는 노예제, 자유 없는 해방
10 또 하나의 내전
11 악덕 자본가들과 반란자들
12 제국과 민중
13 사회주의의 도전
14 전쟁은 국가의 건강한 상태이다
15 어려운 시절의 자구책
16 민중의 전쟁?
17 “아니면 폭발할까?”
18 불가능한 승리: 베트남
19 놀라운 일들
20 1970년대: 이상무?
21 카터󰠏레이건󰠏부시: 양당 합의
22 알려지지 않은 저항
23 임박한 간수 반란
24 클린턴 시대
25 2000년 선거와 ‘테러와의 전쟁’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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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 관련 내용

pp. 427-428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 있던 한국은 35년 만에 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해방을 맞았고, 사회주의 독재국가로 소련의 영향 아래 있는 북한과 우익 독재국가로 미국의 영향 아래 있는 남한으로 분단되게 되었다. 남북한 사이에 수차례 위협이 오갔고,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하였다. 이에 미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던 UN은 회원국들에게 “무장 공격 격퇴”를 위해 한국을 원조할 것을 요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미군에게 남한을 도울 것을 명령했고, 미군은 UN 군이 되었다. 트루먼은 이렇게 말했다. “국제 문제에 있어, 힘의 지배(rule of forced)가 되돌아오는 것은 광범위한 악영향을 낳을 것이다. 미국은 계속해서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지지할 것이다.”

[428]“힘의 지배”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란 것은 곧 3년 동안 계속된 폭격과 포격으로 한국의 남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네이팜탄이 투하됐고, BBC의 한 기자는 그 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 앞에 기묘한 모습의 남자가 서 있었다. 몸통은 구부정한데다 다리는 엉거주춤하고, 두 팔은 옆구리에 매달려 있었다. 눈은 없었고, 불에 탄 누더기 조각 틈새로 온통 드러나 보이는 몸뚱이는 노란 진물이 얼룩덜룩 배어나오는 딱딱한 검은 딱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도통 앉아 있지를 못했는데, 성한 피부라고는 온데간데없이 쉽사리 떨어져 나가는 딱딱한 빵 껍질 같은 부스럼 딱지로 온몸이 뒤덮여 있기 때문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잿더미가 된 마을 수백 곳이 떠올랐고, 이내 분명히 그 남자 같은 사상자가 한국 전선에서 산더미처럼 늘어났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남북한 통틀어 200만 명가량이 “힘의 지배”에 반대한다는 미명 하에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군사적 조치는 트루먼이 말한 소위 법의 지배를 훨씬 넘어서는 듯이 보였다. UN 결의안은 “무력 침공을 격퇴하고, [한국] 지역에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한” 행동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군을 38선 너머로 밀어낸 뒤에도 북한 지역으로 계속 진격해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다. 그리고 중국의 개입을 초래했다. 뒤이어 중국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고, 1953년의 평화협상으로 예전의 남북한 경계선이 회복될 때까지 전쟁은 38선에서 일진일퇴의 교착상태에 빠졌다.
한국전쟁은 전쟁과 트루먼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 여론을 결집시켰다. 한국전쟁은 해외 개입정책과 국내 경제의 전시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연합을 만들어 냈다. 이런 연합의 바깥에서 급진적 비판자로 자리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곤란한 문제를 의미했다. 얼론조 햄비(Alonzo Hamby)는 자신의 저서 『뉴딜을 넘어서 Beyond the New Deal』에서 『뉴리퍼블릭 New Republic』, 『더 네이션 The Nation』, 헨리 월러스(Henry Wallace)(1948년, 좌파연합인 진보당의 공천으로 트루먼에 맞서 출마했던 인물)가 한국전쟁을 지지했다고 지적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어디에서든지, 심지어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공산당을 추적했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햄비가 말한 대로 한국전쟁은 “매카시즘에 새 생명을 주었다.”

p. 647
범죄자들은 이들 허깨비(hobgoblin) 중의 일부였다 이민자, ‘복지’ 생활자, 그리고 이라크, 북한, 쿠바 등 몇몇 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허깨비들이었다. 그들에게 주의를 돌리고, 그들의 위협을 날조하거나 과장함으로써 미국 체제의 실패를 감출 수 있었던 것이다.

p. 652
클린턴 재임기 동안 [미국] 정부는 연간 2,500억 달러 이상을 꾸준히 국방부문에 지출했다. 1989년에 소련이 붕괴했음에도 클린턴은 “2 개의 국지전”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공화당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1989년 당시 부시 행정부의 국방장관 딕 체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위협은 너무 멀리, 너무 멀리 있어서 식별하기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콜린 파월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디펜스 뉴스 Defense News』 1991년 4월 8일자). “악마들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악당들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카스트로와 김일성을 표적으로 삼을 것입니다.”

[동 페이지]
국방부가 “두 개의 대규모 국지전 수행”의 사례로 가장 자주 언급한 나라는 이라크와 북한이었다. 그러나 1991년의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1980년대에 수차례 이라크에 무기를 제공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또 북한의 국방예산이 증액된 것은 한국에 대한 대규모 군사원조와 미군의 한국 영구 주둔 때문이라는 가정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국방예산은 아직도 한국에 비해 현저히 작은 규모이다.

p. 685
계급적 이해관계(class interest)는 언제나 "국익"이라 불리는 모든 것을 감싸는 베일 뒤에 가려져 왔다. 고위 공직자들이 어떤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익’이나 ‘국가안보’에 호소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겪어낸 전쟁 경험이나 미국이 벌인 모든 군사개입의 역사 때문이다. 트루먼이 한국에서 ‘치안 활동(police action)’을 개시해 수백만 명이 죽음을 당했을 때, 존슨과 닉슨이 인도차이나에서 전쟁을 벌여 3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갔을 때, 레이건이 그레나다를 침공하고, 부시가 파나마와 이라크를 공격하고, 클린턴이 이라크를 되풀이해서 폭격했을 때, 이는 모두 이러한 정당화에 근거한 것이었다.

3. 간략 분석

미국 현대사 책으로 미국사에서 미국의 무력 개입을 주로 비판적 시각에서 다룬다. 예를 들어 한국 관련 부분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를 다루는 데 일정 분량을 할애하며, 또 미군의 삼팔선 이북으로의 전진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내린다. 또한 북한의 국방예산이 증액된 것은 미군의 한국 영구 주둔 때문이라는 점도 언급한다.

4. 검토 의견

페이지 한국 관련 기술 내용 검토 의견 개선 과제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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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 과제 유형
A: 동해·독도 표기 수정 필요 B: 단순표기 C: 내용 수정 필요 D: 내용 증·신설 필요 E: 기타
A1: 동해 표기 A2: 독도 표기 C1: 통계 C2: 과거 사실 C3: 객관적 기술 D1: 증설 필요 D2: 신설 필요

연계 정보

관계 대상 문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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