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미국:Art History, 5th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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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차

-저자의 말
-5판에서 달라진 점
-ArtsLab 사용하기
-추천 자료
-감사의 말
-도움말
-초보자를 위한 기본 지식
-들어가는 말

1. 선사시대 미술
석기시대
구석기시대
피난처? 건축?
유물? 예술품?
동굴 벽화
동굴 부조
신석기시대
건축
조각과 토기
금속의 사용
청동기시대
암석 조각술
이름의 위력
고의적인 방화
선사시대의 남녀
차탈회위크의 가옥
건축의 구성요소
초기 시공법
선사시대 벽화
도예
유적 발굴
연대 추정하기

2. 고대 근동지역 미술
초승달 지대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아카드
우르, 라가시
바빌론
아나톨리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칼후
두르샤루킨
니느웨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전쟁 전리품으로서의 예술품: 보존? 약탈?
함무라비 법전
우르 왕릉에서 발견된 리라
아시리아 궁수를 피해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온 침입자들
설형 문자

3. 고대 이집트 미술
나일강의 선물
초기 이집트 왕조 (기원전 2950~2575년경)
신격화된 군주
예술적인 관례
무덤 건축
고왕국 (기원전 2575~2150년경)
기자 피라미드
조각
무덤 내 부조
중고왕국 (기원전 1975~1640년경)
세누스레트 3세
암석묘
묘비
도시 계획
신왕국 (기원전 1539~1075년경)
신전 단지
하트셉수트
라모세의 묘
아크헤나텐과 아마르나 시대 미술
전통의 부활: 투탕카멘과 람세스 2세
사자의 서
제3중간기 (기원전 1075~715년경)
후기 이집트 예술 (기원전 715~332년경)
이집트 상징
아부심벨의 람세스 2세 신전
나르메르의 팔레트
마스타바에서 피라미드로
시신의 보존
이집트 부조
유리공예
연대 추정하기

4. 고대 에게해 미술
에게해 청동기시대
키클라데스 제도
크레테의 미노아 문명
구궁전시대 (기원전 1900~1700년경)
신궁전시대 (기원전 1700~1450년경)
미노아 문화의 전파
미케네(헬라) 문명
헬라 건축
미케네 무덤
도예 기술
사자의 문
아크로티리에서 발견된 ‘플로틸라 프레스코’
에게해 금속 가공기술
에게해 고고학의 선구자들

5. 고대 그리스 미술
그리스 문명의 발생
역사적 배경
신앙과 성지
그리스 미술 (기원전 900~600년경)
그리스 기하학
근동의 영향
그리스 상고기 (기원전 600~480년경)
델포이 신전
신전
조각상
항아리 그림
고전기 초기 (기원전 480~450년경)
대리석 조각
청동 조각
도자기 그림
고전기 전성기 (기원전 450~400년경)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프로필라이아, 에레크테이온
아테나 니케 신전
아테네의 아고라
도시 계획
묘비
회화
고전기 후기 (기원전 400~323년경)
조각
금세공인의 기술
회화와 모자이크
헬레니즘 (기원전 323~31/30)
헬레니즘 건축의 코린트 양식
조각
그리스 로마의 신
‘고전’인가 ‘고전적’인가
작품의 주인은 누구? 엘긴 대리석 조각과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
분수에 모인 여인들
그리스 극장
켈트 미술
잠수부의 묘
사르페돈의 죽음
그리스식 기둥
그리스 조각의 색상
붉은색과 검은색폴리클레이토스의 ‘표준율’
리아체의 전사들

6. 에트루리아와 로마 미술
에트루리아인
에트루리아 건축
에트루리아 신전
묘실
청동 작품
로마인
로마 공화정 (기원전 509~27년)
인물 조각
로마 신전
로마 제국 초기 (기원전 27년~기원후 96)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예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로마의 도시와 주택
벽화
플라비우스 왕조
트라이누스와 하드리아누스 황제
건축
인물 조각
3~4세기 로마제국 말기
세베루스 왕조
군인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
콘스탄티누스 이후 로마 미술
미술에 대한 로마 기록
로마의 인물 조각상
아우구스트 마우의 ‘폼페이 벽화 4가지 양식’
작업 중인 화가
평화의 제단
석관에 새겨진 ‘인도에서 승리를 거둔 디오니소스’
로마식 기둥
아치
볼트
콘크리트
로마 모자이크
카피톨리나 늑대상
밀덴홀의 유보

7. 유대와 초기 기독교 미술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슬림
로마 제국 후반기의 유대교와 기독교
초기 유대 미술
초기 기독교 미술
제국의 기독교 건축과 미술
로마
라벤나와 테살로니키
예수의 생애
라벤나 갈라플라키디아의 웅변술
베스 알파 회당의 모자이크 바닥
일자형 교회와 원형 교회
두라 에우로포스

8. 비잔틴 미술
비잔티움
초기 비잔틴 미술
유스티아누스의 황금기
숭배와 헌신의 대상
성상과 성상파괴령
중기 비잔틴 미술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양식의 건축과 벽화
기념, 숭배, 헌신의 중요한 대상
후기 비잔틴 미술
콘스탄티노플: 코라 성당
성상
기독교 교회 명칭: 설계 + 숭배 대상 + 장소
두루마리와 고문서
성상파괴령
테오도레 메토키데스의 추도 성당
성 미카엘 대천사의 성상
펜던티브와 스퀸치

9. 이슬람 미술
이슬람과 초기 이슬람 사회
초기: 9~12세기
건축
서예
도자기
후기: 13~15세기
건축
사치품
제책술
후기 왕조의 미술과 건축
오스만 제국
사파비 왕조
현대
이슬람의 다섯 기둥
코르도바 대 모스크
맘루크 유리 등잔
아치
장식
양탄자 제작

10. 1200년도 이전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미술
지리학
남아시아의 미술
인더스 문명
베다 시대
마우리아 왕조
슌가와 초기 샤타바하나 왕조
쿠샨 왕조
굽타 왕조와 후예들
그 밖의 지역 (4~6세기)
팔라바 왕조
7~12세기
촐라 제국
동남아시아 미술
초기 동남아시아
6~9세기
10~12세기
불교
무드라
힌두교
촐라 제국의 나타라야 시바
석가출가도
사리탑과 사원

11. 1279년도 이전의 중국과 한국 미술
중국
신석기시대
도자기 그림
양저문화
중국의 청동기시대
은나라
주나라
중국의 제국: 진나라
한나라
철학과 미술
건축
6조 시대
회화
서예
불교 미술과 건축
수나라와 당나라
불교 미술과 건축
인물화
송나라
북송 회화
남송 회화와 도자기
한국의 미술
삼국시대
통일신라 시대
고려 왕조
한자
도교
공자와 유교
당나라 시대의 비단길
왕궁의 연회

주형주물

12. 1333년도 이전의 일본 미술
선사시대 일본
죠몽 시대
야요이 시대
고훈 시대
아스카 시대
호류지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
밀교 미술
정토종 미술
세속 미술과 서예
가마쿠라 시대
정토종 미술
선불교 미술
글과 언어, 문화
불교의 상징
무기와 갑옷
달마대사: 선불교 창시자
겐지 이야기
일본의 목공술
대웅전

13. 1300년도 이전의 아메리카 미술
새로운 세계
메소아메리카
올메크 문화
테오티우아칸
마야 문명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중앙안데스
차빈데우완타르
파라카스, 나즈카 문화
북아메리카
동쪽
북아메리카 남서쪽
마야 문자
의식을 위한 공놀이
암각화
방패 표범과 쏙 부인
안데스 직물

14. 초기 아프리카 미술
고대 아프리카의 매력
아프리카: 미술과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 암각화
사하라 암각화
사하라사막 남부 문명
노크
이그보 우크부
이페
베냉
그 밖의 중심지
젠네
그레이트 짐바브웨
악숨, 랄리벨라
콩고 제국
서양으로의 수출
‘원시’ 미술의 신화
남아프리카 암각화
충성을 맹세하는 사령관
끈을 감은 항아리
납형주조법

15. 유럽의 중세 초기 미술
중세 초기
유럽의 ‘야만인’ 미술
메로빙 왕조
스칸디나비아
영국의 켈트족과 앵글로색슨족
영국의 초기 기독교 미술
책의 삽화
스페인 모사라베 미술
베아투스 본
바이킹 시대
오세베르그호
옐링의 비석
목조건축
카롤링거 왕조
카롤링거 건축
책의 삽화
금속 가공술
오스만 왕조
오스만 건축
오스만 조각
책의 삽화
중세의 정의
중세의 기록실
린디스판 복음서
위트레흐트 시편집의 시편 23편
서튼후

16. 로마네스크 미술
로마네스크 시대의 유럽
정치와 경제, 사회
교회
로마네스크 미술
건축
‘최초의 로마네스크’
순례 교회
클뤼니
시토
로마네스크 건축의 지역적 양식
세속 건축물: 영국 도버 성
건축에 새겨진 조각
모데나 대성당의 빌리겔무스
무아사크의 성 베드로 성당
오탕의 성 라자로 성당
목조, 청동 조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상지의 옥좌에 앉은 마리아
슈바벤 루돌프의 무덤
르니에 데 위
직물과 책
연대기적 역사
신성한 책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
유물과 성유물
성 베르나르도와 테오필루스: 시각 예술에 대한 수도사들의 논쟁
타우의 산트클리멘트 성당 회화: 모사라베와 비잔틴의 만남
힐데가르트 폰 빙엔
바이외 자수
오탕의 팀파눔에 새겨진 최후의 심판
로마네스크 교회 정문

17. 12, 13세기 고딕 양식
고딕양식의 출현
도시와 지성의 발달
대성당의 시대
프랑스 고딕 미술
생드니 대성당, 고딕의 탄생
고딕 대성당
성 루이 시대의 미술
영국 고딕 미술
그림 성경
건축
독일과 신성로마제국 고딕 미술
건축
조각
이탈리아 고딕 미술
조각: 피사노 가
회화
쉬제르, 수도원 미술의 가치에 대하여
숙련된 석공들
비야르 옹느쿠르
파리의 생트 샤펠
윈드밀 시편집의 시편 1편
리브 볼트
고딕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18. 14세기의 유럽 미술
14세기 유럽
이탈리아
피렌체 건축과 금속 가공술
피렌체 회화
시에나 회화
프랑스
그림 성경
금속 가공술과 상아
잉글랜드
자수: 오푸스 앙글리카눔
건축
신성로마제국
신비주의와 고행
프라하의 부상
14세기 문학의 새로운 바람
흑사병
연애 장면을 담은 상아 궤짝
잔 데브뢰의 시간
부온 프레스코
첸니니의 ‘예술의 서’

19. 15세기의 북유럽 미술
북유럽 르네상스
프랑스 공작 저택
샤르트뢰즈 드 샹무아의 회화와 조각
그림 성경
직물
플랑드르 회화
플랑드르파의 창립
15세기 중반 회화: 제2세대
플랑드르 너머의 유럽
프랑스
독일, 스위스
그래픽 아트
낱장 인쇄
책 출판과 보급
제단과 제단화
중세와 르네상스의 여류화가
헨트 제단화
가게에 있는 금세공인
유화
목판화와 금속판화

20. 15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
인본주의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피렌체
건축
조각
회화
마사초 이후의 피렌체 회화
15세기 전반 이탈리아 미술
우르비노
만투아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조각 경연대회
모렐리-네를리 부부의 함
고아원
보티첼리의 ‘봄’
르네상스 원근법

21. 16세기의 이탈리아 미술
16세기 유럽
16세기 초반의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
16세기 초반의 거장 3인
로마와 바티칸 건축
이탈리아 북부 건축, 회화, 조각
베네치아와 베네토
매너리즘
회화
조각
미술과 가톨릭개혁
로마와 바티칸의 미술, 건축
16세기 후반의 베네치아와 베네토
유화
건축: 팔라디오
비트루비안 맨
성 베드로 대성당
여성들의 예술 후원
심문을 받은 베로네세
시스티나 성당의 태피스트리를 위한 라파엘로의 습작
아테네 학당

22. 16세기의 북유럽과 이베리아 반도 미술
종교개혁과 예술
독일
조각
회화
프랑스
프랑수아 1세 시대의 프랑스 르네상스
스페인과 포르투갈
건축
회화
네덜란드
귀족 후원자를 위한 예술
안트베르펜
영국
튜더 왕가의 예술가들
건축
귀부인들의 성
투마르 수도원
왕실 경기용 갑옷
브뢰헬의 ‘계절 연작’
프랑스 사절들
독일 금속 가공술: 금속 합작회사

23. 17세기의 유럽 미술
바로크
이탈리아
로마의 건축과 조각
회화
스페인
스페인 황금기의 회화
스페인의 건축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플랑드르
네덜란드 공화국
프랑스
베르사유 건축물과 장식
회화
영국
건축
과학과 세계관의 변화
거장들의 등급
콘타렐리 성당의 카라바조
포박된 프로메테우스
정원 설계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24. 1200년도 이후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미술
1200년도 이후의 남아시아
종교와 미술의 변화
무굴 제국
영국 식민지 시대와 독립운동
1200년도 이후의 동남아시아
불교 미술과 왕위
이슬람 미술과 동남아시아
현대
현대 남아시아
현대 동남아시아
인도 문화의 기반
동남아시아 도자기
자한기르와 샤 압바스
수코타이 불상
인도 회화

25. 1279년도 이후의 중국과 한국 미술
몽골의 침략
원나라
명나라
화원과 직업화가
공예
건축과 도시계획
문인화
청나라
정통 회화
개성적인 문인화
현대
한국의 미술: 조선 왕조에서 현대까지
조선 자기
조선 회화
한국의 현대
중국 문화의 기반
마르코 폴로
산꼭대기에 선 시인
한궁춘효
중국 회화의 구성
자기의 비밀

26. 1333년도 이후의 일본 미술
무로마치 시대
선불교 수묵화
적막한 정원
모모야마 시대
건축
서원 장식을 위한 회화
다도
에도 시대
린파 화파
자연주의적 회화
문인화
우키요에: 덧없는 세상을 그리다
선불교 회화: 촌부를 위한 불교 예술
복식과 자기
현대
메이지 시대의 자연주의적 화풍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
일본 문화의 기반
인간문화재
옻칠한 필통
여성의 복식 코소데
서원의 설계
필통 내부
일본 목판화

27. 1300년도 이후의 아메리카 미술
아즈텍 제국
테노치티틀란
조각
깃털장식
문서
잉카 제국
쿠스코
마추픽추
직물
금속 가공술
스페인 점령의 여파
북아메리카
동부 삼림지대
대평원
북서부 해안지대
남서부
새로운 시작
기술? 예술?
하마차 탈
아즈텍 돌 달력
잉카의 공사
바구니 세공품

28. 태평양 지역 미술
태평양 지역의 인구
오스트레일리아
멜라네시아
뉴기니
뉴아일랜드
뉴브리튼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마르케사스 제도
하와이
라파누이의 모아이 석상
사모아
오세아니아의 현대 미술
태평양 예술 축제
중앙사막 회화
시게유키 키하라
테하누키 투랑가
남자의 사랑이야기

29. 근대 아프리카 미술
전통, 현대 아프리카
아프리카 건축
어린이와 삶의 지속성
입문
영적 세계
리더십
죽음과 조상
현대미술
아프리카 문화의 기반
초크웨의 점술
쿠바의 장례용 탈
콩고의 엔키시 엔콘디 주술상

30. 18세기와 19세기 초반 유럽과 북아메리카 미술
산업, 지성, 정치적 혁명
로코코
로코코 살롱
로코코 회화와 조각
로코코 교회 장식
이탈리아: 유럽여행과 신고전주의
유럽여행 회화와 경치
로마의 신고전주의
영국의 신고전주의와 초기 낭만주의
건축과 설계에서 고전주의 부활
건축과 설계에서 고딕 양식 부활
영국 회화의 경향
18세기 후반 프랑스 미술
건축
회화와 조각
스페인과 중남미 지역 미술
스페인의 초상화와 저항: 고야
중남미 지역의 미술
19세기 초반 미술: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프랑스에서의 발전
낭만주의 풍경화
19세기 초반 건축의 고딕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
아카데미와 전시회
메두사의 뗏목
조지 시대의 은제품
철제 건축 자재
석판화

31. 19세기 중후반 유럽과 미국 미술
19세기 중후반 유럽과 미국
프랑스 아카데미 건축과 미술
아카데미 건축
아카데미 회화와 조각
유럽과 미국의 초기 사진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
리얼리즘과 혁명
마네: ‘근대생활의 화가’
프랑스 외 국가들의 리얼리즘에 대한 반응
인상주의
풍경과 여흥
근대적 삶
19세기 후반
후기인상주의
상징주의
프랑스 조각
아르누보
모더니즘의 시작
유럽 건축: 기술과 구조
시카고파
세잔
오리엔탈리즘
미술의 대량 보급
1877년의 미술 재판
모더니즘 화가들과 세계 문화: 일본주의
마하나 노 아투아 (신의 날)
도시공원
사진을 찍는 과정

32. 1900~1950년대 유럽과 아메리카의 현대 미술
20세기 초반 유럽과 아메리카
유럽의 초기 모더니즘
야수파: 색채의 야수들
피카소, ‘원시주의’, 큐비즘의 도래
다리파와 원시주의
표현주의
청기사파
큐비즘의 확대
전통 조각의 추상화
다다이즘: 예술 자체에 대한 의문
아메리카의 모더니즘
스티글리츠와
화랑
아모리 쇼와 자체적인 모더니즘
초기 모더니즘 건축
유럽 모더니즘
아메리카 모더니즘
전쟁 속 유럽 미술
러시아의 실용주의적 미술 형태
네덜란드의 데스틸
독일 바우하우스
초현실주의와 마음
영국의 유닛원
전쟁 속 아메리카 모더니즘
할렘 르네상스
아메리카의 시골 지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쿠바
전후 유럽과 아메리카 미술
유럽의 엥포르멜 미술
라틴아메리카의 실험
뉴욕 추상표현주의
나치의 박해를 받은 아방가르드
대공황 시대 연방 정부의 미국 예술 지원
게르니카
독일 장교의 초상
마천루
국제적 양식

33. 1950년대 이후 세계 미술의 동향
1950년대 이후의 세계
1950년대 이후의 미술
미술계의 확장
앗상블라주
사진
팝아트
오브제의 비물질화
미니멀리즘
관념과 행위 예술
개념 예술
페미니즘과 미술
토공 작업과 부지 특성적 조각
건축: 20세기 중반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20세기 중반 모더니즘 건축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포스트모더니즘
회화
포스트모더니즘과 성
포스트모더니즘과 인종, 또는 민족성
조각
미술, 행동주의, 논쟁: 1990년대
문화 전쟁
행동주의 미술
탈식민주의 담론
첨단 기술과 해체주의 건축
비디오와 필름
세계통합주의: 새천년으로
미술과 기술
미술과 정체성
게릴라 걸스
공공 예술기금에 대한 담론
디너 파티
풍요의 자랑

-용어집
-참고문헌
-자료출처
-색인

2. 한국 관련 내용

p. 297
10. 1200년도 이전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미술: 남아시아의 미술
지도 10-1: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 한반도를 ‘한국’으로 표시.

p. 301
10. 1200년도 이전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미술
미술 속 문맥읽기: 불교 (싯달타 왕자의 출가, 부처의 가르침과 ‘부처’ 개념에 이은 4번째 단락)
‘테라바다(소승불교)’ 또는 ‘니카야’로 알려진 초기 불교에서는 ‘열반’에 이르러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수양을 강조했다. 소승불교는 주로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남아 있다. 소승불교만큼 오래된 마하나야(대승불교)라는 또 다른 형태의 불교는 주로 북인도에서 각광을 받았고 중국과 한국, 일본, 티베트(밀교)에 번성했다. 대승불교의 기초는 모든 중생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개인의 열반 뿐 아니라 온 우주의 모든 존재가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많은 불교학파에서 석가모니 외의 다른 부처들이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미륵은 지상에 나타날 다음 부처라고 알려진 인물이다. 몇몇 분파에서는 부처가 되기 직전 단계인 보살(지혜로운 자) 개념을 받아들이며, 보살은 열반에 이르기 직전에 있는 인물로 다른 이들도 부처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이라고 믿는다. 미술에서 보살과 부처는 의복과 장식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보살은 인도 왕자와 같은 옷을 입고, 부처는 승려복을 입는다.

p. 331
11. 1279년도 이전의 중국과 한국 미술
(중국 미술 개관을 설명한 뒤 마지막 단락) 중국 문명은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중국 학문은 계속 한국 문화의 발전을 촉진했고, 그 다음으로 한국이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
<학습> 11.1 초기 중국과 한국 미술의 발전기와 지역적 양식을 찾아보고, 중국 전통과 한국 전통 간의 관계를 알아보자.
11.2 신석기 시대부터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한국이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주로 다룬 주제와 소재들을 찾아보자.
11.3 중국, 한국의 예술 역사와 유, 불, 도교 전통 간의 관계를 조사해 보자.

p. 333
<지도 11-1 중국과 한국>
이 지도에는 현재 중국과 한국의 국경을 표시했다. 밝은 색깔로 칠한 부분은 중국 한 왕조(기원전 206~기원후 220)의 확장을 보여준다.
- 한반도를 ‘한국’으로 표기.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명칭과 함께 개성, 서울, 경주 표시.
동해는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됨.

pp. 356~359
[11. 1279년도 이전의 중국과 한국 미술: 한국의 미술]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자리 잡은 한국은 아시아 북동지역의 반도를 차지했다. 한반도에는 수천 년간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삼국시대에 독특한 한국 문화가 발생했다.
삼국시대
보통 기원전 57~기원후 668년으로 추정되는 이 시기에 한반도 남동 지역 신라, 남서 지역 백제, 북쪽 고구려의 세 왕국이 독자적인 국가 형태를 수립했다. 5, 6세기에 지은 거대한 고분에서 삼국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금관: 고분에서 출토된 가장 화려한 물품은 왕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들이다(사진 11-26). 이 정교한 왕관은 매장용으로 제작된 제품이 분명하며, 얇게 자른 금판들을 금실로 엮어 구성했다.
쉼표 모양으로 생긴 녹색과 흰색 비취 장식과 금장식이 왕관에 달려 있다. 비취는 중국에서 귀하게 여겼던 연옥과는 광물학적으로 다른 종류다. 왕관 둘레에 가지 모양으로 높게 뻗은 형상은 나뭇가지와 사슴뿔을 닮았다. 왕관 안에는 날개나 깃털 모양의 부속품을 달고 얇은 금판을 엮어서 짠 원뿔 모양 모자를 쓴다.

p.356
사진 11-26: 왕관 - 한국 경상북도 경주 금령총에서 발견. 6세기 경 삼국시대 신라. 비취로 장식, 높이 약 44.5cm. 대한민국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화 도자기: 고분 안에는 도자기도 많이 발견된다. 대부분 망자의 영혼이 먹을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다. 이런 그릇은 대부분 유약 처리를 하지 않고 열을 가해 유약 없이도 액체의 영향을 받지 않게 만든 도자기이다.
가장 인상적인 자기는 높은 받침대(사진 11-27)로, 아래쪽이 넓적한 이 원통형 받침대는 바닥이 둥근 단지를 지지할 때 사용했다. [357] 다소 육중해 보였을 수 있으나, 고화 처리 전 흙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구멍을 내 형태가 산뜻해졌다. 종종 나타나는 물결무늬나 원, v자 무늬를 제외하고 삼국시대 도자기에서 외부 장식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이 작품에서는 뱀이 받침대 손잡이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p.356
사진 11-27: 뱀 무늬, 추상 무늬, 투조로 장식한 예식용 받침대 - 한국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 5~6세기경 삼국시대 신라. 회색 자기에 무늬와 투조를 내 장식, 천연 유약의 흔적. 높이 약 58.7cm.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하버드 대학교 새클러 박물관 소장. 마리아 C. 헨더슨 기증, 어니스트 B. 데인과 헬렌 프랫 데인 동양미술품구입기금을 통해 구매.
반가사유상: 중국에서 건너온 불교는 372년 고구려, 384년 백제에 들어왔다. 불교가 5세기 후반 신라에도 소개되었을지 모르나, 공식적으로는 527년에야 인정을 받았다.
초기 불교 미술은 중국을 모방한 형태였다. 그러나 6세기 후반 한국 조각은 독특한 양식을 드러냈고, 전형적인 예로 (미륵보살로 추정되는) 금동 반가사유상이 있다(사진 11-28). 보살의 자세는 6세기 후반 중국 조각을 따랐지만 날씬한 몸매와 타원형 얼굴, 우아한 옷주름, 세 갈래의 관은 한국 조각의 특징이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소개했다. 실제로, 수많은 한국 조각가들이 6~7세기에 일본에서 활약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일본 불교미술 초기 작품에는 한국의 영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사진 12-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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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28: 반가사유상 - 삼국시대 7세기 초, 신라로 추정. 금동, 높이 약 91cm. 대한민국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전).
통일신라시대
신라는 660년 백제를 정복하고, 668년 중국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격파해 삼국을 통일했다. 통일신라는 935년까지 지속되었다. 불교는 통일신라시대에 번영했고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안팎으로 많은 큰 규모의 중요 사찰이 건축되었다.
석굴암: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큰 유물인 석굴암은 신라 왕실의 후원으로 경주 근처의 토함산 꼭대기에 지어진 인공 석굴사찰이다. 인도 석굴사찰이 중국에 영향을 미쳤고, 5~7세기에 지어진 중국의 석굴사찰 형식을 한국에서 본떠 석굴암을 만든 것이다.
8세기 중반에 화강암을 깎아 만든 석굴암은 사각의 작은 전실과 천장이 둥근 원형 주실이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높이 3.4m가 넘는 거대한 부처가 주실을 차지하고 있다(사진 11-29). 연꽃에 앉은 불상의 모습은 지면을 만지는 자세(촉지(觸指) 동작)에서 알 수 있듯 부처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역사적인 순간을 나타낸다. 부처의 풍만하고 팽팽한 형태, 얇은 옷자락, 해부학적으로 상세하게 묘사된 가슴팍은 8세기 중국 조각과 연관이 있다. 얕은 돋을새김으로 정교하게 새긴 보살과 하위 신들은 부실과 연결 통로, 주실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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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29: 석가모니 불상 - 한국 경상북도 경주 근처의 석굴암. 통일신라시대 751년경. 화강암, 불상 높이 약 3.42m.
- 불상의 땅을 만지는 손 모양은 촉지 동작으로, 깨달음을 의미한다.
[358]
고려시대
918년 건국된 고려는 935년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통일신라의 통치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1392년까지 지속된 고려의 수도는 개성으로, 오늘날 서울의 북서쪽이자 북한에 있는 도시이다. 고려 왕조 시대의 미술은 품위가 넘쳤으며 유약을 바른 청자가 가장 유명하다.
청자: ‘셀러던(celadon)’이라는 용어는 고화 처리된 자기의 유약이 띠는 투명하고 엷은 청록색을 의미하며, 보통 회백색 자기에 발랐다. 중국 도자기 장인들은 1세기에 이미 청색 유약을 발명해 꾸준히 청자를 제작했다. 한국 장인들은 8~9세기에 청색 유약을 시험해보기 시작했고, 곧 중국의 최상급 도자기에 견줄 만한 세련된 고려청자가 탄생했다. 고려 시대에 이런 청자는 다양한 계층이 두루 사용했지만, 가장 우수한 자기들은 왕족과 귀족, 유력한 승려들에게 돌아갔다.
11세기 고려청자는 고전적인 단순미를 자랑하며 장식을 지양했지만 12세기 장인들은 동시대의 중국 자기를 모방하거나 새로운 장식 기법을 찾아내기 위해 무늬를 새기거나 장식을 넣었다. 장인들의 발명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상감 기법으로, 자기 표면에 음각으로 새긴 무늬에 백토나 흑토를 발라 대조적인 색깔을 배치해 세 가지의 다른 장면을 흑토와 백토로 나타냈다(그림 11-30). [359] 이 자기에는 호숫가에 꽃이 핀 매화나무(늦겨울에 잎이 돋기 전에 꽃이 피는 나무) 가지와 한데 얽힌 대나무 숲을 묘사하고 있다. 호수에 거위가 헤엄치고 나비가 나무 위로 날아다니면서 도자기의 장면을 연결한다. 윗부분이 넓은 이 ‘매병’은 포도주, 식초 등의 액체를 담는 용기로 사용했다. 원래는 종 모양의 조그만 뚜껑으로 주둥이를 덮어 내용물을 보관하고 도자기의 곡선을 보완했다.

p.358
그림 11-30: 대나무와 매화나무로 장식된 매병 - 한국 고려시대, 12~13세기. 상감청자: 유약 처리 전의 회백색 자기에 흑토와 백토로 무늬를 넣음. 높이 33.7cm.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불화: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는 왕가의 후원을 받아, 많은 사찰이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고려 시대에 가장 호화로웠던 불교 예술품은 회화였다. 비단 족자에 먹과 물감으로 그린 14세기 수월관음도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중국식으로는 ‘관인’)을 묘사하고 있다(사진 11-31). 풍성한 색감과 금색 물감은 당대의 화려한 취향을 반영한다. 같은 유형의 수많은 회화가 일본에 수출되어 일본 불교 회화에 영향을 미쳤다.

p.359
사진 11-31: 수월관음도 - 한국 고려시대, 14세기 후반. 비단 족자에 먹, 물감, 금색 물감. 높이 159.6cm.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하버드 대학교 새클러 박물관 소장. 그렌빌 L. 윈스롭 기증.
<연구>
11.1 초기 중국과 한국 미술의 역사 발전에 있어 자연주의(자연 세계의 시각적 외관을 재현하는 경향)는 어느 범위까지 원동력으로 작용했는가?
11.2 중국의 관음보살상(사진 11-20)과 한국의 반가사유상(사진 11-28)을 비교, 대조해 보자. 보살의 의미를 정의하고 신의 속성이 외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조사해 보자.

p. 362
[12. 1333년도 이전의 일본 미술: 선사시대 일본]
야요이 시대: 야요이 시대(기원전 400년~기원후 300년경)에 한국 이주민들을 통해 논농사를 도입해 일본이 농경 국가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았다. 세계 모든 지역이 그렇듯, 이러한 전환으로 노동은 농사와 그 밖의 활동으로 나뉘고 사회 구조가 계층적으로 형성되어, 정착지 확대와 계급구조 형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인 정착민들은 금속 기술도 보급했다. 청동은 종과 같은 의례용 도구뿐 아니라 무기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 철기 제작도 발달해 결국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석기를 대체했다.
<지도 12-1: 일본>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됨
. - 일본: 15,000년 전 빙하기 말에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일본 땅은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큐슈의 4개 섬이 되었다.

p. 364
[12. 1333년도 이전의 일본 미술: 선사시대 일본]
아스카 시대
1세기 동안의 아스카 시대(554~645년)에 한국과 중국에서 새로운 철학, 의술, 음악, 음식, 복식, 농업, 도시 계획, 종교, 시각 예술, 건축 형태가 일본에 급속도로 밀려들어왔다. 그중 불교, 중앙 집권적 구조, 문자 체계가 가장 중요하며, 각각 일본의 상황에 맞게 변형, 융화되어 오랜 유산이 되었다.

p. 367
[12. 1333년도 이전의 일본 미술: 선사시대 일본]
(아스카 시대 계속) 석가삼존상: 일본 불교 미술 초기의 국제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토리 부시가 만들었다고 전통적으로 알려진 호류사 석가삼존상이다(사진 12-6). (일본어 ‘샤카’는 전설적인 부처인 석가모니를 뜻한다.) 토리 부시(‘부시’는 불상 제작자라는 뜻)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밀려들어온 승려 및 장인들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해 온 한국 장인의 후손으로도 추정된다. 석가삼존상에는 중국 북위시대 미술의 막대한 영향이 드러난다(사진 11-12 참고). 정면을 향한 자세, 커다란 얼굴과 손, 선으로 처리된 휘장은 이 불상을 만든 장인이 대륙의 초기 불상 형태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한편, 세련된 청동 주물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장인의 숙련된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p. 369
[12. 1333년도 이전의 일본 미술: 선사시대 일본]
헤이안 시대
일본은 헤이안 시대(794~1185년)에 중국과 한국에서 차용한 문물을 완전히 흡수하고 변형시켰다.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시대였기에 자립의 분위기가 새롭게 조성됐고, 귀족 가문의 세력이 증가한 9세기에 일본 왕실은 중국과의 유대를 단절했다. 일본어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도구가 발달했고, 토속 문학의 부상으로 여류작가 무라사키의 <겐지 이야기>와 같은 산문 작품이 등장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4세기 동안 불교는 크게 두 가지 주류로 나타났다. 하나는 밀교이고, 다른 하나는 정토 극락세계의 구원을 믿는 정토종이다.

p. 371
[12. 1333년도 이전의 일본 미술: 선사시대 일본]
(헤이안 시대의 불교) 정토종 미술: 군국주의의 부상, 정치적 격변, 궁중의 방종이 11세기 초 일본의 특징이다. 불안정한 이 시기에 많은 이들이 말법(末法), 즉 부처의 바른 가르침이 끊어진 어두운 시대가 닥쳤다고 믿었다. 각계의 일본인들은 신성한 꽃과 음악으로 가득한 눈부신 ‘서방극락정토’를 믿고 내세의 구원을 갈망하게 되었다. 극락에는 아미타(산스크리트 어로 ‘아미타바’)와 그를 수행하는 보살들이 있어, 이들의 자비에 전심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을 축복의 땅으로 기꺼이 맞아들이고 보호한다. 정토 신앙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큰 인기를 누렸고, 한국을 통해 일본에도 전해졌다. 밀교의 복잡한 종교 의식에 비해 정토종은 즉각적이고 쉬운 수단으로 구원을 약속한다. 정토종에서는 신실한 신자가 ‘나무아미타불’을 암송하기만 하면 서방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p. 772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지도]
- 지도 우측 상단에 한국 표시.

p. 793
[25. 1279년도 이후의 중국과 한국 미술]
(당나라의 화풍 특징과 과거제를 소개한 뒤, 5번째 단락) 송나라 때(960~1279) 과거제는 확장되고 체계화되었다. 관직의 절반은 학자들이 차지했다. 뒤이은 원나라와 명나라 때는 문인화(식자층의 취향을 반영한 회화 양식)의 전통이 더욱 발달했다.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원나라의 시대가 끝나고, 명나라 때는 송대의 궁중 전통을 부활시켰다. 명나라는 한국 조선 왕조의 본보기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독특하고 꾸밈없는 미술 양식이 조선 왕조의 지지 아래 발달했다.
<학습>
25.1 중국과 한국 미술에서 나타나는 문인화 양식을 연구하고 문인화와 문인들의 삶의 관계를 탐구해 보자.
25.2 중국과 한국 회화의 풍경화 소재의 발전과 중요성을 이해하자.
25.3 중국과 한국의 궁중 생활과 후원이 각 나라의 미술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 보자.
25.4 13세기에서 현재까지 중국과 한국에서 중요한 예술 양상으로 나타난 특징들을 분석하고 학습해 보자.

p. 794
<지도 25-1: 중국과 한국>
이 지도에는 현재 중국과 한국의 국경을 표시했다. 색칠한 부분은 중국 청 왕조(1644~1911년)와 청의 조공국들을 포함한 범위로, 당대의 역사적인 확장을 보여준다.
- 한국은 북한, 남한으로 나누어 표시. 개성과 서울을 표기, 남한의 금강산 표시. 동해와 황해 표시.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음.

p. 797
[25. 1279년도 이후의 중국과 한국 미술]
(명나라: 화원과 직업화가에 대한 내용)이 시기에는 궁중 회화와 연관되면서도 더욱 대담하고 제약에서 벗어난 풍경화가 인기를 끌었다. 이 회화 양식은 절강 양식이라고도 하는데, 이 양식이 남송 수도가 있었던 절강성 항저우에 기원을 두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표작으로 <춘유만귀도>가 있다(사진 25-5). 서명은 없으나 대진(戴進, 1388~1462)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절강 양식은 안견(사진 25-18 참고)이나 셋슈(사진 26-13 참고) 등의 한국, 일본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pp. 808~813
[25. 1279년도 이후의 중국과 한국 미술]
한국의 미술: 조선 왕조에서 현대까지
1392년 이성계 장군(1335~1408)이 고려 왕조(918~1392)를 전복시켜 조선 왕조(1392~1910), 또는 이씨 왕조를 건립했다. 처음에 이성계는 옛 고려의 수도 개성을 그대로 수도로 삼았다가 1394년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고,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 수도는 다시 바뀌지 않았다. 조선은 불교를 배척하고 국가 철학으로 성리학을 옹호했다. 중국 명나라를 본받은 조선은 명의 관료제를 본떴고, 심지어 명나라 황실의 상징이었던 백청색 자기를 그대로 차용하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문화와 과학 발전을 이루어, 측우기와 천문관측대, 혼천의, 해시계, 물시계뿐 아니라 한국 문자인 한글도 창조했다.

조선 자기
신라와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11과 참고) 조선 도자기 장인들도 뛰어난 자기를 제작했는데, 동시대의 중국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는 했지만 그대로 베끼는 일은 드물었다.

분청사기: 고려청자의 전통을 물려받은 조선 자기는 ‘분청’사기라고 불리며, 한반도 전역에서 널리 사용했다. 값비싼 흰 자기와 비슷하게 백토를 많이 사용하면 장식적인 효과가 더욱 높아졌다. 15세기 작품에는 도자기에 백토로 반복적인 무늬를 넣은 작품도 종종 보인다.
16세기 분청사기의 특징은 흰 바탕에 회갈색을 바른 자기에 붓으로 흐르는 듯한 무늬 장식이다. 분청사기는 대부분 꽃무늬가 많았지만, 사진 25-16의 술병처럼 드물게 장면을 묘사한 병도 있다. 신선하고 힘찬 붓질로 그린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발톱으로 물고기를 낚아 올린다. 그 아래로 파도가 치고 커다란 연꽃 두 송이가 가장자리를 둘렀다.
1592~159년에 일본군이 계속 한반도를 침입해 분청 가마가 많이 파괴되었고, 아예 도자기 제작이 중단될 정도였다. 일본인들이 많은 분청자기 제작자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분청식 자기를 만들게 했고, 이들의 자기는 다도 전문가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다. 사실 한국 분청사기의 자연스러운 성격이 오늘날까지 일본 자기에 영향을 주었다.

p. 809
사진 25-16: 물고기를 잡은 새가 그려진 술병
한국 조선시대, 16세기. 분청사기: 연회색 바탕에 백토, 회갈색 무늬. 15.5x24.1cm.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스미토모 그룹 기증.
채색된 자기: 한국 장인들은 15세기부터 중국 명나라 자기의 영향으로(사진 25-7 참고) 도자기에 청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조정에서는 궁궐의 장인들을 한양에서 남동쪽으로 50km정도 떨어진 도자기 가마로 보내 도자기 화가들을 훈련시켰다. 그 결과 15세기부터 최고급 한국 자기에 그려지는 그림은 종이나 비단에 그린 그림과 거의 흡사해졌고, 이는 회화적 전통을 거의 참고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밟은 중국 도자기의 장식과 사뭇 달라졌다.
또 다른 독특한 점은 16~17세기 한국 자기가 청색 물감을 사용하는 명나라 자기의 전통보다 회갈색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17세기에 상부가 넓고, 몸체는 가늘며, 목은 세로로 좁은 독특한 형태를 띤 도자기가 나타났고, 조선 후기에 가장 특징적인 도자기 형태가 되었다. 사진 25-17의 17세기 도자기는 유약 처리 전 회갈색으로 포도나무 가지 그림을 그려 넣었다. 경계에 구애받지 않은 그림을 그려 넣어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비대칭적인 디자인은 여백의 미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전형적인 한국 양식이다.

p. 810
사진 25-17: 백자철화 포도무늬 항아리
한국 조선시대, 17세기. 유약 처리 전 회갈색으로 그림. 높이 53.8cm. 대한민국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오늘날 남은 고려자기는 별로 없지만 한국 장인들은 약 11~12세기부터 고려의 도자기 제작법을 배웠다. 몇 세기 동안 중국과 한국에서만 도자기 제작법을 알고 있었다.
조선 회화
한국 세속화는 조선 시대에 진가를 발휘했다. 고려의 전통을 물려받아 조선 초기 회화는 중국식 전형을 따랐고, 식물부터 풍경, 인물, 다양한 동물에 이르기까지 그림의 주제를 넓혔다.
안견(1418년 출생)이 1447년에 그린 몽유도원도(사진 25-18)는 현존하는 조선 세속화 중에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몽유도원도에는 중국에서 숭앙받는 자연시인 도겸(365~427)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묘사했고, 세상과 동떨어진 도원을 거닐었던 꿈을 떠올려 그린 작품이다.
고려와 마찬가지로, 15세기 한국화에 나타나는 거대한 산맥과 광대한 경치는 북송 회화 양식을 반영한다. 중국 남송(1127~1279)과 명나라(1368~1644)도 15~17세기 한국 회화에 영향을 미쳤으나 북송 대가들의 흔적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p. 810
사진 25-18: 안견<몽유도원도>
한국 조선시대, 1447년. 비단 두루마리에 먹과 엷은 채색. 36.7x106.1cm. 일본 덴리(나라 근처)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실학운동: 18세기, 중국 고전뿐 아니라 한국 연구도 강조한 실학(실용적인 학문)의 영향으로 진정한 한국적인 양식이 등장했다. 실학 운동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화가는 정선(1676~1759)으로, 선대 화가들이 선호했던 중국 풍경이 아닌 자신에게 친숙한 한국 경치를 그렸다. 정선의 회화에는 한국 동쪽 해안의 울퉁불퉁한 금강산이 자주 등장한다. 1734년에 그린 작품(사진 25-19)에는 바늘처럼 생긴 금강산의 봉우리들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주제가 한국이니만큼 작품에 드러난 역동적인 기상과 강한 개성, 수정처럼 생긴 산맥, 묽은 먹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구름, 독자적인 붓놀림도 한국적이다.

p. 811
사진 25-19: 정선 <금강전도>
한국 조선시대, 1734년. 종이 족자에 먹과 물감. 130.1x94cm. 대한민국 서울 삼성 리움미술관 소장.
인물화가 중 신윤복(1758년 출생)은 실학 정신의 중요한 본보기이다. 18세기 말~19세기 초에 활동한 신윤복은 주로 한복 차림의 양반 계층을 그렸다. <상춘야흥>(사진 25-20)은 어느 가을날 한국 양반들이 기생을 데리고 전원을 즐기는 장면을 담았다. 풍성한 머리와 짧은 상의, 폭넓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과, 수염을 기르고 흰 두루마기에 상투를 틀고 챙이 넓은 갓을 쓴 남자들은 누가 보아도 한국인이다. 우측 하단의 남성이 연주하는 현악기는 한국 악기들 중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가야금(한국의 치터)이다.

p. 812
사진 25-20: 신윤복 <상춘야흥>
혜원 전신첩에서 발췌. 한국 조선시대, 18세기 후반. 30장짜리 화첩, 종이에 먹과 물감. 28.3x35.2cm. 대한민국 서울 간송미술관.
한국의 현대
오랫동안 ‘은자의 왕국’으로 알려졌던 조선왕조는 쇄국정책을 실시해 1876년까지 중국을 제외한 모든 세계에 국경을 열지 않았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왕조는 막을 내렸으나 외부 세계와 차단되어 은둔 기간은 더욱 연장되었다. 자발적 고립의 유산에 식민통치(1910~1945)--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의 혹독한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뒤이은 더 끔찍한 한국전쟁(1950~1953) 상황--까지 더해짐으로써 한국의 예술, 문화적 발전은 20세기 전반에 방해를 받았다.
한국의 현대화가: 이러한 빈곤한 상황에도 중국과 일본을 통해 한국은 간접적으로나마 현대의 영향을 받았고, 1920년대 초~1930년대에 몇몇 한국 화가들이 서구식 현대 미술을 시도했다. 흔히 세잔이나 고갱을 따랐지만 일부는 비구상적 추상미술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중 김환기(1913~1974)는 구성파와 기하학적 추상화의 영향을 받아 20세기 한국의 영향력 있는 화가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의 많은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김환기도 서구 모더니즘을 연구하고 싶어 했다. 그는 1956년에 파리를 방문했고 1964~74년에는 뉴욕에 거주, 작업하면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을 이때 제작했다. 그의 작품 <5-IV-71>은 파랑, 검정, 회색을 띤 점과 사각형으로 구성된 한 쌍의 거대한 원형 패턴을 보여준다(사진 25-21). 방식과 재료, 발상, 심지어 제목으로 쓴 날짜까지도 완전히 서구식이지만, 이 작품은 동아시아의 전통인 단일색상의 수묵화와도 연관성이 보이고 도교나 불교적인 초월성도 제시하는 듯하다. 작가가 한국인이며 어릴 적에 중국 고전을 공부했다는 점, 파리에서 공부했고 뉴욕에서 작업했다는 점에 미루어 볼 때 그의 회화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고 볼 수도 있다. 김환기의 작품은 분명하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찾는 많은 현대 예술가들이 겪는 딜레마를 표현한다. 전통 양식의 가장 최근 스타일, 철저히 세계적인 스타일, 지역적 특색이 분명하지만 세계적인 스타일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토속적인 성분과 다양한 예술 전통에서 유래된 성분을 통합하는 절충적이고 혼합적인 스타일을 택할 것인가? 김환기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면서 유명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등 후배 한국인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백남준은 33과에서 다룰 것이다.

p. 813
사진 25-21: 김환기 <5-IV-71>
한국, 1971년. 캔버스에 유화. 100x100cm. 대한민국 서울 환기미술관 소장.

p. 815
[26. 1333년도 이후의 일본 미술]
1630년대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 국민의 출국을 금지하고 외국인들의 입국을 제한했다. 나가사키는 유일한 국제 항구로 한국인, 중국인, 네덜란드인만이 출입할 수 있었고, 그들도 일본 땅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다. 기독교 선교사를 막고 외세에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일본 정부의 조치였다. 1853년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강제로 다른 항구를 개방한 뒤에야 정책이 바뀌었다. 그 전에도 이 작품(사진 26-1)에 나타나는 담뱃대와 망원경이 증명하듯, 외국의 영향과 물품 유입은 막을 수 없었다.

p. 816
[26. 1333년도 이후의 일본 미술]
무로마치 시대: 선불교 수묵화
무로마치 시대에도 밝게 채색된 일본 고유의 두루마리 책은 계속 제작되었으나, (가마쿠라 시대(1185~1333년) 말에 대륙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먹의 검은색과 먹을 묽힌 회색을 사용한 회화가 절대적이었다. 무로마치 수묵화는 선불교 미학의 영향을 깊게 받았지만, 선불교의 중요 인물에 치중했던 초기 선불교 수묵화와 달리 많은 화가들이 중국식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승려이자 화가인 슈분(약 1418~1463년에 활동)을 일본 수묵 풍경화의 첫 대가로 인정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슈분의 작품은 애석하게도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나 슈분의 제자 분세이(약 1450~1460년에 활동)의 풍경화 2점은 남아 있다. 사진 26-2의 작품은 명나라(사진 25-5 참고)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수묵 풍경화와 매우 비슷하다. 전경의 바위투성이 지면에는 잎이 뾰족한 소나무, 험준한 바위, 은둔한 시인, 암자의 조그만 정원을 둘러싼 싸리나무 울타리 등 여러 가지 모티프가 겹쳐져 있다. 중간은 여백으로 비워 놓았다. 이 공간은 물이 채워져 있다고 ‘읽어야’ 한다. 빈 공간 위에는 미묘한 회색으로 아득히 떨어진 해변에 놓인 고기잡이배, 작은 오두막, 서 있는 두 사람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 작품에 그려진 두 장면은 넓은 공간을 사이에 놓고 서로를 향해 메아리치는 듯하다.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은 시적인 장면으로 순수하고 고즈넉하며 평화로운 영혼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p. 816
<지도 26-1: 일본>
- 지도 좌측 하단에 한국 표시.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음.

p. 819
[26. 1333년도 이후의 일본 미술]
미술 속 문맥읽기: 일본 문화의 기반
(2~3번째 단락)야요이 시대(기원전 400년~기원후 300년경)에 위계적인 사회 구조와 함께 완전히 정착한 농경 사회가 출현했다. 사람들은 청동과 철을 제조하는 법을 배웠고 이 금속들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초가지붕에 색칠하지 않은 야요이 건축은 이미 자연에 대한 친밀함과 명료한 선을 보여주며, 특히 야요이의 곡창 지대는 이후 시대에 사당의 디자인을 거부했다. 사회 조직을 향한 경향은 고훈 시대(300~552년경)까지 지속되어, 한국 관습을 따른 거대한 왕릉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지도자 숭배 사상에서 왕정 체계가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이 제도가 지속된다.
아스카 시대(552~645년)에는 한국을 통해 중국 문명이 일본으로 밀려들어오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 문화를 발전시킨 중국의 세 가지 주요 문명은 불교(와 불교 미술 및 건축), 문자 체계, 중앙집권 체제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인 호류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보존된 목조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p. 819
[26. 1333년도 이후의 일본 미술 - 모모야마 시대]
(무로마치 시대가 끝나면서 세 명의 강력한 일본 지도자가 등장한다.)첫 번째는 오다 노부나가(1534~1582)로, 1568년 군대를 끌고 교토로 들어와 1573년에 아시카가 쇼군을 몰아내고 일본 정치에 새 시대를 이끌었다. 노부나가는 승려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교 사원을 파괴할 정도로 무자비한 전사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상하고 세련된 예술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군사작전 중에 적에게 굴복하지 않으려고 노부나가가 자살한 뒤, 그의 가신 중 하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가 뒤를 이었고, 곧 일본의 권력을 장악했다. 히데요시 역시 통치에 있어 문화가 필수적인 부가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군대를 지휘할 때가 아니면 예술을 지지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야심이 지나쳤다. 한국과 중국을 모두 점령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두 차례의 불운한 침략 전쟁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낭비했다. 1600년 직후에야 세 번째 지도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의 승리로 견고한 무신정권이 지속될 수 있었다. 노부나가의 전 동맹이자 히데요시의 심복인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사망한 뒤에야 권력을 잡았다. 굴곡진 시대였지만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통치기는 모모야마 시대(1573~1615년)로 알려져 일본 역사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대 중 하나로 꼽힌다.

p. 823
[26. 1333년도 이후의 일본 미술 - 모모야마 시대]
다기: (2번째 단락)자연스럽고 비대칭적인 사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오랜 사랑은 다기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소작농들이 쓰는 한국식 밥그릇이 갑자기 고상한 취향의 전형으로 추앙받았고, 장인들에게 그 불완전한 형태를 모방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기형적이라고 모두 각광받지는 않았다. 찻잔 크기가 손에 잘 맞는지, 형태와 질감이 보기 좋은지, 이전에 누가 사용했는지 등이 찻잔의 미를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이런 목적으로 다기 상자가 그 안에 딱 들어맞는 다기만큼이나 중요해졌고, 유명한 차 전문가가 이름을 붙인 다기는 특히 후배들에게 보물처럼 여겨졌다.

p. 832
[26. 1333년도 이후의 일본 미술 - 에도 시대]
일본 자기: 일본에서는 역사적으로 문명 초기부터 도자기를 꾸준히 제작해 왔지만, 유약을 바른 고화 도자기는 16세기에야 일본에 확산되었다. 일본 남부에서 특히 번영한 도자기 사업은 1600년에는 숙련된 한국 도자기 장인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일본 내 장인들이 대륙의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도왔고, 처음으로 자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아리타라는 마을은 자기 제작의 중심지가 되었고, 국내용뿐 아니라 서양 수출용 자기까지 제작했다. 다도에서는 여전히 초지로의 다기(사진 26-9 참고)와 같은 질박한 그릇을 선호했으나, 중국 예술이 유행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자기를 더 많이 사용했다. 아리타에서 만든 자기는 제작일과 장식에 따라 이름이 모두 다르다. 사진 26-17의 자기는 1628년 나베시마 사무라이 집안에서 만든 나베시마 자기로 아리타 가마에서 구운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런 자기를 집안에서 쓰거나 도쿠가와 쇼군에 선사했지만, 결국 다른 유력한 귀족 가문에 선물로 주어지기도 했다. 그릇 장식으로는 자연스럽고 불규칙적인 무늬(사진의 등나무꽃)와 추상적이고 견고한 형태(사진의 등나무를 지탱하는 격자)가 나란히 묘사되곤 한다. (최신 유행의 패턴을 담은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대적인 디자인은 나부시마 자기의 장식에 자주 영감을 준다.

p. 1128
[33. 1950년대 이후 세계 미술의 동향 - 미술, 행동주의, 논쟁: 1990년대]
비디오와 필름 -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한국인 백남준(1931~2006)은 존 케이지의 영향으로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에 실험적인 음악을 작곡했다. 1963년부터 텔레비전을 변형해 작업했고, 소니(SONY)에서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를 만든 해인 1965년 비디오 아트를 만들었다. 백남준은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체했듯, 브라운관(텔레비전)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후 그는 여러 크기의 비디오 모니터에 나타나는 실시간 영상, 녹화 영상, 컴퓨터로 제작한 영상을 가지고 작업을 했고, 그 결과물 중 하나로 뉴욕 홀리 솔로몬 갤러리에 전시했던 <전자 초고속도로:미국 대륙>(사진 33-61)이 있다. 이 작품에는 미 대륙 지도의 윤곽을 네온사인으로 만들어 비디오 모니터 벽 위에 설치했고, 컴퓨터로 조종되는 모니터에서는 각 주의 문화와 역사에 맞게 녹음된 영상이 재빠르게 바뀐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는 옆 벽에 붙였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복합적인 메시지의 보급과 위력을 나타낸다. 뉴욕 주를 나타내는 모니터에는 갤러리 방문객들을 실시간으로 담아내 작품을 관람자가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새 정체성을 스크린에 보여주어, 관람자는 피동적인 관객에서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참여자로 바뀐다.

3. 간략 분석

Pearson 출판사의 미술사 교과서로 아시아 미술을 다루는 부분의 양이 상대적으로 많으며 한국 관련 내용도 어느 정도 이상 다루어진다. 전체 33개의 장 가운데 동아시아 관련 장은 11, 12, 25, 26 네 개의 장이다. 11장(1279년 이전의 중국과 한국 미술), 25장(1279년 이후의 중국과 한국 미술)에서는 중국과 한국이, 12, 26장에서는 일본이 다루어지는데 진다. 다루어지는 한국의 예술 관련 내용은 삼국시대 미술(금관, 고화 도자기, 반가사유상, 석굴암), 고려시대미술(청자, 수월관음도), 조선시대 미술(분청사기, 백자, 진경산수화, 풍속화), 현대미술(김환기, 백남준) 등이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농사 기술, 금속 기술, 불교, 도자기 기술을 전하였다는 내용이 각각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4. 검토 의견

페이지 한국 관련 기술 내용 검토 의견 개선 과제 코드
p. 333 <지도: 중국과 한국>
-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됨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하거나 최소한 '동해(일본해)'로 수정해야 함 A1
p. 362 <지도: 일본>
-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됨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하거나 최소한 '동해(일본해)'로 수정해야 함 A1
p. 794 <지도: 중국과 한국>
-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됨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하거나 최소한 '동해(일본해)'로 수정해야 함 A1
p. 816 <지도: 일본>
-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됨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하거나 최소한 '동해(일본해)'로 수정해야 함 A1
p. 356 "불교는 5세기 후반 신라에도 소개되었을지 모르나, 공식적으로는 527년에야 인정을 받았다."로 기술됨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해는 528년이므로 연도를 이에 맞게 수정한다 C3


- 개선 과제 코드 -
개선 과제 유형
A: 동해·독도 표기 수정 필요 B: 단순표기 C: 내용 수정 필요 D: 내용 증·신설 필요 E: 기타
A1: 동해 표기 A2: 독도 표기 C1: 통계 C2: 과거 사실 C3: 객관적 기술 D1: 증설 필요 D2: 신설 필요

연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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