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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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
Kam 1.jpg
인구 14,701,717명(2010년)
면적 181,035㎢(남한의 약 1.8배, 한반도 전체의 약 80%)
언어 크메르어, 불어(50대 이상), 영어(청・장년층)
정부 입헌군주국으로 국가원수는 국왕이나, 정부수반인 총리가 실질적인 국정을 운영
통화 리엘(Riel)
GDP 111억 불(2010)/1인당 GDP : 842불(2010)


이름 및 위치

캄보디아 위치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의 다른 이름인 '캄부자(산스크리트어: कंबुज)'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캉보주(Cambodge)'가 영어화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1970년 이전 왕국시대에는 캄보디아로 불려오다가, 1970년 론 놀의 쿠데타로 공화국이 성립되자 국명이 크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75년 4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크메르어: ខ្មែរក្រហម Khmêr Khrôm)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고 국명은 또다시 민주 캄푸치아로 바뀌었다. 4년 뒤인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가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가, 이후인 1993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되돌아왔다


간략역사

앙코르를 건설한 민족은 서기 6세기경 남부 인도차이나의 몬-크메르어족에서 점차 생겨났다. 인도의 영향 아래에 두 개의 대표적인 문명이 발달하였는데, 보다 오래된 것은 반도의 남쪽 끝에서 생겨난 ‘푸난(Funan)’ 문명이다(‘푸난’은 ‘산’이라는 뜻의 고대 크메르어인 ‘프놈(Phnom)’이 중국어로 음역된 것이다). 푸난은 시암만(Gulf of Siam)의 전 해역을 다스린 막강한 해양 제국이었다. 6세기 중반, 메콩 중심부(오늘날 캄보디아의 북쪽)에 살던 캄부자족이 푸난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쩐라(Chenla)라 불린 이 신생 집단이 푸난 왕국을 흡수했다. 7세기 후반, 쩐라는 북쪽의 육쩐라(Land Chenla)와 태국만을 따라 건설된 남쪽의 수쩐라(Water Chenla)로 분열되어 중국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8세기에 육쩐라는 안정기를 맞은 반면 수쩐라는 여러 적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시기 동안 자바인이 침략하여 영토 일부를 정복하였다.

9세기 초반, 여러 왕들은 저마다 오늘날의 시엠립(Siem Reap) 지방에 수도를 건설했는데, 거의 600년간 서로 경쟁하듯 사원을 건설하고 화려하게 꾸몄다. 이 사원 중 200여 개가 여전히 시엠립 지방의 400 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앙코르 지역에 널리 퍼져 있으며, 이 사원과 성소들은 그 건축물과 조각으로 유명하다.

앙코르를 세운 이는 자야바르만 2세(Jayayarman II, 802~850)로, 그는 802년 꾸런(Kulen) 평원에 자신의 왕궁을 건설했다. 자야바르만 2세의 조카인 인드라바르만 1세(Indravarman I, 887~889)는 로라이(Lolei)에 거대한 관개 시설을 건설하고, 879년에는 쁘레아꼬(Preah Ko)에, 881년에는 바꽁(Bakong) 에 탑을 건설했다. 893년 인드라바르만 1세의 아들인 야소바르만(Yasovarman, 889~900) 왕은 로라이의 이 탑들을 자신의 업적으로 돌리고 북서쪽으로 천도하였는데, 이곳은 앙코르의 가장 중심부로 남았다. 그는 또한 가로 7㎞, 세로 2㎞ 규모의 인공 호수인 동바라이(Eastern Baray)도 건설하였다.

야소바르만 왕의 아들 하르샤바르만 1세 (Harshavarman I, 900~923)는 프놈 바켕(Phnom Bakheng)의 정상에 박사이 짬끄롱(Baksei Chamkrong) 사원을 축조하고, 921년 쁘라삿 끄라반(Prasat Kravan)을 건설했다. 하르샤바르만 1세(Harshavarman I)의 숙부인 자야바르만 4세(Jayavarman IV, 928~941)는 오늘날의 꼬께르(Koh Ker) 마을 근처인 캄보디아 남동쪽 유역을 다스렸는데, 그는 인상적인 기념물을 여러 개 지었다. 라젠드라바르만 왕(Rajendravarman, 944~968)은 952년 앙코르로 돌아와 961년 동메본(Eastern Mebon)과 쁘레룹(Pre Rup)을 건축했다. 967년, 왕족 혈통의 신앙심이 깊은 고위 관리이며 브라만 사제였던 야즈나바라하(Brahman Yajnavaraha)가 왕도에서 북동쪽으로 20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반띠스라이(Banteay Srei) 사원을 세웠다. 자야바르만 5세 왕(Jayavarman V, 968~1001)은 따께오(Takeo) 사원 주변에 새로운 왕도를 건설했다.

11세기경, 수르야바르만 1세 (Suryavarman I, 1002~1050) 가 앙코르를 장악하고 찬란한 왕조를 세웠다. 이 시기에 왕궁이었던 앙코르톰(Angkor Thom)의 출입구(고푸라, Gopura)가 완성되었고, 그 중심에 피미나까스(Phimeanakas)사원이 세워졌다. 수르야바르만 1세는 또한 깜뽕 스바이 지역(Kampong Svay District)에 프놈 치소(Phnom Chiso) 사원을 비롯하여 쁘레아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의 일부와 쁘레아 칸(Preah Khan) 사원을 세웠다.

수르야바르만 1세의 아들 우다야디뜨야바르만 2세(Udayadityavarman II, 1050~1066)는 왕국의 대표사원인 바푸온(Baphuon)과 인공저수지인 서바라이(Western Baray)를 건축하였다. 우다야디뜨야바르만의 형제인 하르샤바르만 3세(Harshavarman III)가 왕권을 물려받아 1066년에서 14년간 통치하는 동안 격심한 내전이 일어나 왕조의 몰락을 초래했다. 자야바르만 6세(Jayavarman VI, 1080~1113)가 계속해서 왓뽀(Vat Po)와 피마이(Phimai)에 쁘레아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을 건축하였다.

수르야바르만 2세 (Suryavarman II, 1113~1150)는 중국 연안에서 인도양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앙코르왓(Angkor Wat), 톰마논(Thommanon), 쪼싸이떼보다(Chau Say Tevoda), 쁘레아 빨리라이(Preah Palilay), 쁘레아 삐투(Preah Pithu), 반띠 삼레(Banteay Samrè) 사원 등을 건설하였다. 이처럼 눈부신 업적을 이룩한 크메르 문명은 내부 분열과 참족(Cham)의 공격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 1181~1220) 왕은 크메르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인도차이나 남부 전 지역을 통치하면서 거대한 건축물들을 축조했다. 따쁘롬(Ta Prohm, 1186)과 쁘레아 칸(Preah Khan, 1191)을 건설하여 부모에게 바치는 한편, 반띠 끄다이(Banteay Kdei), 나병왕 테라스(the Terrace of the Leper King), 코끼리 테라스(the Terrace of the Elephants), 네악쁘완(Neak Pean), 따사옴(Ta Saom), 따나이(Ta Nei) 를 비롯하여 왕국 전역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잇따라 건설했다. 또한 찬란한 왕궁 도시인 앙코르톰과 그 한 가운데에 200개의 암벽 얼굴이 조각된 바욘 사원(Bayon temple)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거대 건축 사업은 국가의 쇠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3세기 초 자야바르만 7세가 죽은 후 앙코르 시대는 저물기 시작하였는데, 시암인(Siamese)들의 침략과 관개 시설 부족으로 크메르 왕국의 기세가 급속히 기울어 국왕은 마침내 1431년 프놈펜 인근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그 후 연이은 시암과 참파의 침략 후, 캄보디아는 1863년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지리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181,035 평방 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3개의 시, 20개의 성(도), 172개의 군, 1,547개의 면으로 나뉘어지고 435km의 해안을 가지고 있다. 캄보디아는 많은 강이 교차하는 저평원으로 주로 이루어져 있고 태국과 접해 있는 북부 국 경 지역과 남서부에 산지가 있을 뿐이다. Cardamom산맥은 북서쪽에 1500m급의 산들로 구성되며 북서에서 남동으로 발달해 있으며 동쪽에 우뚝 솟은 캄보디아에서 제일 높은 산은 Phnom Aural(오랄산)으로 1,771m에 달하며 기막힌 경치를 자랑한다.

남동쪽으로 발달된 Cardamom 산맥은 500-1000m 급의 산들로 구성되며 “Elephant Range”라고 부른다. 메콩강은 캄보디아의 동쪽 중심부를 가로질러 400km을 캄보디아내에서 흘러 베트남에 이른다. 메콩강은 발생지는 티베트(중국영토)의 “탕그라” 산으로 중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을 거쳐 South China Sea에 이르는 장장 4,200km의 긴 강이다.

이 강은 우기가 되어 강이 범람하게 되면, 캄보디아 중부에 있는 아시아 최대의 거대한 호수인 툰레샆 호수(Tonle Sap Lake)로 흘러 들어 메콩강의 수위를 조절하게 된다. 호수의 넓이는 건기 때에는 2600km2에 불과하지만 우기가 되면 10,000km2가 되며 비가 많이 왔을 때는 13,000km2 까지 늘어 난다. 건기가 되어 메콩강의 수위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호수의 물은 다시 강으로 흘러 만조 때에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남북 450㎞, 동서 580㎞에 달하는 타원형태를 띠고 있다. 산림이 65.7%이고 농지는 20.65%로 농지 총면적은 36,460km2 이다.

인구

2014년 기준으로 캄보디아 인구는 약 6,703,860명이며, 인구밀도는 1km2당 15명을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구는 수도인 아순시온(Asunsión; 186만 명)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전 인구의 약 57.9%만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데, 가이아나,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함께 남미 지역 전체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한다.


인종

현재 1,500만으로 추산되고 있는 인구 중 90%는 크메르족이며, 중국계가 5%, 기타 베트남인, 미얀마인, 참족, 산간 소수부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성격은 산간의 소수민족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언어도 복식도 생활방식도 거의 유사하다. 이를테면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사회적 통합의 정도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종교적 신념체계가 불교를 공통분모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체계에서 유사성을 비교적 많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물론 소수민족의 경우에는 자신들만의 부족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사회적, 문화적 통합의 기초가 되는 언어조차도 타 종족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해가 구축되지 못하며, 이는 잠재적 소외감과 경계심을 불러오기도 한다. 따라서 외부세계와의 교류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언어

캄보디아의 공식 언어는 크메르어이다. 캄보디아어는 몬-크메르 Mon-Khmer (오스트로아시아 Austro-Asiatic) 어족에서 탄생하였다. 크메르어는 자음 33개, 모음 23개, 독립모음 12개 등 가장 많은 숫자의 알파벳을 가진 언어로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표현들을 배워 보고자 하는 관광객도 있겠지만, 캄보디아 전역에서 영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프랑스어나 중국어가 통용되는 지방도 있다. 캄보디아 노년층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크메르계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사용한다.


종교

상좌불교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널리 섬기는 공식 종교로 인구의 약 90 퍼센트가 상좌불교 신자이다. 그밖에 이슬람, 힌두교, 기독교 신자도 있다. 불상이나 불화는 신성시되므로,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이에 적절한 예의를 갖추어 현지인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캄보디아인들은 종교에 관계 없이 화합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

최근 개방적 시장경제체제를 견지하면서 비록 원조와 외국투자에 의존한 경제발전을 추구하고는 있지만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높은 경제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 ODA 규모(12억 35백만불)는 총 GDP(128억불)의 9.7%를 차지하였다. 낙관적인 경제성장이 전망되며, 달러화 겨엦, 느슨한 외환규제로 외국투자 지속 확대되고 있다(2012년 23억불 유치). 특히 봉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 위주의 산업발전 추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수출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저임금 기반 봉제분야의 안정적인 성장이 전망된다. 이외에도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전량 수입하고 있는 캄보디아는 자국 내 농산물 자원을 이용하여 에탄올 등 바이오에너지 대량생산을 통해 농업 및 에너지 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대체에너지 수출국가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제조업은 주로 식품가공업과 가죽제품과 관련되며, 최근 의류제조업도 남미공동시장(MERCOSUR) 국가에 대한 수출증가로 활기를 띠고 있다. 캄보디아는 일찍부터 대외통상이 개방된 나라로 관세 및 수량제한 등 비관세 장벽이 없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정치

  • 국왕을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국으로,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현 국왕은 2004년 10월 29일 즉위
  •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로, 국왕은 국회의장이 국회부의장 2인의 동의를 얻어 요청하는 제1당 인사를 총리내정자로 지명
  • 입법부는 상원(임기 5년, 의원수 61명, 정부와 의회간 조정 역할)과 하원(임기 5년,의원수 123명, 정부에서 제출한 법안 심의)로 구성
    • 상원은 지역평의회 의원을 통해 간접선거로 59명을 선출하고, 국왕이 2명 지명
    • 하원은 지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선출하며, 현재 캄보디아국민당(Cambodian People’s Party: CPP)가 68석, 캄보디아구국당(Cambodia National Rescue Party:

CNRP)가 55석

  • 사법부는 3심제로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고등법원 및 대법원은 프놈펜에만 설치


한국과의 관계

한국은 캄보디아와 1962년에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총영사관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1966년 주 캄보디아 일본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한 북한 김귀하 권투선수를 캄보디아 정부가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였다. 한국은 이에 대한 항의로 1967년 1월 총영사관을 폐쇄하였다. 1970년 시하누크(Sihanouk) 국가수반이 물러나고 론놀(Ron Nol) 정부 때 캄보디아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1975년 크메르루즈(Khmer Rouge)가 프놈펜(Phom Penh)을 함락한 이후, 공관은 철수되었고 양국의 교역 활동도 중단되었다. 그 후 22년이 지나서 양국의 외교 관계가 재개되었다.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대상 문서 설명
uses 교육제도:캄보디아 캄보디아 교육과정, 2014년 조사 보고
uses 교과서목록:캄보디아 캄보디아 사회과 교과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