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케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efia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번째 줄: 20번째 줄:
 
==이름 및 위치==
 
==이름 및 위치==
 
[[파일:kenya_map.png|thumb|left|450px|'''케냐 위치''']]
 
[[파일:kenya_map.png|thumb|left|450px|'''케냐 위치''']]
공식명칭은 이스라엘국이다. 북쪽으로 레바논, 동쪽으로 시리아, 남서쪽으로 이집트와 국경을 접한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아랍 세계에 둘러싸여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유대인 공화국이며, 중동에서 하나뿐인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국명은 헤브라이어()로 '하느님이 지배하신다'는 뜻으로, 《구약성서》〈창세 32:28〉에 나오는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행정구역은 6개주(mehoz)로 되어 있다. 면적은 약20,770㎢, 인구는 약7,821,850명(2014년), 수도는 예루살렘(Jerusalem)이다.
+
케냐의 정식 국가 명칭은 케냐공화국(Republic of Kenya)이다.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하며 동북부로는 소말리아, 서북부로는 에티오피아(Ethiopia) 및 수단(Sudan)과 접하고 서부로는 우간다(Uganda), 남부로는 탄자니아(Tanzania)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약 57만㎢로 한반도의 약 2.6배이다. 수도는 나이로비(Nairobi)이며 해발 고도는 약 1,700m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인구는 4,555만 명이고 수도 나이로비의 인구는 450만 명이다(2012년 현재 평균수명 남 69세, 여 77세). 케냐는 적도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나 열대의 해안 지대부터 사바나 초원, ()사막1), 고산 기후 지대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해안 지방이 20.5℃~32℃, 내륙 지방이 9.5℃~23.6℃이다. 고원 지방 및 서부는 강우가 풍부하고 북부는 건조하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
  
 
==간략역사==
 
==간략역사==
기원전 12∼8세기에 있었던 고대 이스라엘왕국의 멸망 후 전세계로 흩어졌던 유태민족이 민족국가 건설을 열망한 끝에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지역에서 건국되었다. 성문헌법은 없고, 기본법이 역할을 대신한다. 대외적으로 이집트를 제외한 인접 아랍국가들과 적대관계에 있으며, 서유럽 나라들 외에는 외교관계가 단절상태이다. 그러나 1993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의 상호승인이 이루어지고 요르단과 시리아 등과도 관계가 개선되었다. 유태인과 아랍계 주민간의 마찰이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의회민주주의제도의 확립으로 정치적 안정도는 높은 편이다.대외적으로는 자유를 표방하며, 친서방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49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
케냐는 BC 1,000년경까지만 해도 원주민은 부시먼족(Bushman) 계통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무렵 아라비아 반도 쪽으로부터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를 경유하여 햄족과 셈족의 인종이 남하해왔다. 인도양 연안에는 기원 초까지도 그리스인·이집트인·페르시아인·아랍인·인도인 등이 들어와 거주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7세기경에는 아랍인이 정착하여 그들의 마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1498년 이후 포르투갈인이 해안지대에 진출해왔다. 16세기에는 서쪽으로부터 반투족이 이동해왔고, 해안지대는 아랍인과 포르투갈인의 쟁탈장이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영국과 독일의 그리스도교 포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1824년부터 몸바사 부근에 세력을 펴게 되었다.
 
+
1888년 영국의 동아프리카 회사가 특허회사로서 이 지역의 무역을 독점하였고, 1895년 영국의 동아프리카 보호령이 되었다. 유럽인의 식민이주가 장려되어 이민자들은 내륙 고원에 백인고원(White Highlands)이라고 일컫는 농업지대를 형성하였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많은 백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고, 1920년 6월에는 인도양 연안을 케냐 보호령으로, 그 밖의 지역을 케냐 식민지로 개칭하였다. 그 후 영국은 우간다 및 탕가니카(현재의 탄자니아)와 공통의 통화(通貨)를 사용하게 하고, 그 밖에도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로써 묶어 통치하였으나 1930년대부터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더욱 강화되었다.  
 +
1952년 10월에 시작된 ‘마우마우(Mau Mau)의 투쟁’은 1956년경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는 유럽인에게 빼앗긴 농토를 되찾기 위한 민족운동이기도 하였다.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가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이윽고 1963년 12월 12일 케냐는 독립을 성취하였으며, 1964년 12월 12일 공화국을 선언하였다.
 +
1964년 케냐타가 1대 대통령을 취임하면서 시작된 케냐의 독립국가로서 역사는 부침이 심한 특징을 보여왔다. 198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보였던 케냐는 부정부패, 종족 갈등, 범죄, 테러리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하여 국가적 잠재력을 만개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1979년 집권한 KANU당의 모이 대통령(Daniel Arap Moi)은 24년 간에 걸쳐 통치자로 군림했는데, 이 기간 동안 부정부패와 인권탄압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영국, 미국, IMF 등은 이러한 이유로 케냐에 대한 경제 원조와 차관 제공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모이 대통령의 독재 체제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레인보우 연합당(NARC)의 음와이 키바키(Mwai Kibaki)가 승리하면서 끝이 났다. 
  
 
==지리==
 
==지리==
이스라엘의 국토는 남북으로 길죽하며 지형과 지세는 매우 다양하다. 북쪽 끝에 레바논산맥에 이어지는 갈릴리 고원(高原)있는데 이 고원은 동쪽은 요르단 계곡, 서쪽은 지중해 연안평야, 남쪽은 에스드렐론 평야의 3방향으로 경사를 이룬다.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건조하고 기온이 30℃ 이상에 달하는 반면 겨울에는 강수량도 많고 온화한 기후가 된다. 겨울철에 북쪽 고원에서는 강설을 볼 수 있으며 강수량은 북쪽의 800mm 이상에서 남쪽 네게브 지방의 100mm 이하까지 심한 차이가 있다. 남부가 건조해지는 까닭은 남서탁월풍이 시나이 사막이나 북아프리카 사막지대의 건조한 공기를 몰아오기 때문이다. 경작 가능지는 15.45%, 농경지 3.88%, 기타  80.67% (2005년)이다.
+
케냐의 국토는 크게 네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빅토리아호 부근의 서부 지역은 완만한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중부 고원지대는 동아프리카지구대가 통과하는 지역이다. 북부 지역은 건조 지역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며, 동부해안 지역은 반건조 평원지대이다. 특히 동아프리카지구대(Great Rift Valley)가 통과하는 중서부 지역은 지질적으로 불안정하며 높은 산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만도 20개(최고봉은 Mt. Kirinyaga로 5,199m)에 이른다.
 
+
케냐의 기후 지역은 크게 북부의 건조기후대와 남부의 사바나기후대로 나누어지는데, 북동부 지역에서는 사하라 사막에서 이어지는 건조기후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수도인 나이로비를 포함한 남부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교차하는 열대 사바나 기후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지적으로는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는데, 빅토리아호 부근의 서부 지역은 비교적 강수량이 풍부한 특색을 나타내며, 인도양과 접하고 있는 해안지역에서는 고온 다습한 전형적인 열대기후의 특색이 나타난다. 또한 동아프리카지구대가 통과하는 고원지대에는 고산 기후적인 특성도 나타나고 있다. 해안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20.5°~31°C 정도이지만, 내륙지방의 연평균 기온은 7°C~27°C 정도로 내륙으로 갈수록 열대 기후의 특색이 감소한다.
  
 
==사회==
 
==사회==
 
===주민===
 
===주민===
유대인은 기본적으로는 지중해 인종과 아르메니아 인종의 혼혈이었으나 세계에 흩어져 살게 됨으로써 여러 인종과의 혼혈을 나타내게 되었다. 1948년의 건국 당시 유대인의 인구는 약 60만이었으나 그 뒤 아랍 여러 나라와 해외 70개국으로부터 인구가 대량 이주해와 크게 늘어났다. 전인구에 대한 유대인의 비율은 1948년의 83%에서 1965년의 87.5%로 늘어났다가 2000년 이후 77.8%로 줄어들었다. 1990년대 이후 구소련에서 약 85만의 유대인이 유입되었다. 아랍인은 건국 이전에는 120만이었으나 난민으로 유출되고, 팔레스티나 전쟁 후로는 20만 이하로 격감하였다. 그 뒤에는 조금씩 증가하여 1977년에는 57만, 2000년 이후에는 113만이 되었다. 전체 인구 중에서 유대인 비율이 76.4% (자국 출생 67.1%, 유럽-아메리카 출생 22.6%, 아프리카 출생 5.9%, 아시아 출생 4.2%), 비유대인 23.6% (대부분 아랍계) (2004년)이다.  
+
케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8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인구의 집중지는 서부의 빅토리아호 부근,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한 지역, 그리고 동부 해안 지역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수도인 나이로비로 약 280만 명(2005년)의 인구 수를 기록하고 있고, 2위는 몸바사로 82만 명 정도이다. 인구 증가율은 약 2.8%(2007년 추계)매우 높은 편으로, 인구 추계에 따르면 케냐의 전체 인구는 2025년 경 5,000만 명에 이르고, 2050년 경에는 6,50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평균수명은 55.3세(남자 55.2세, 여자 55.4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구의 42.1%가 15세 미만이고 단지 2.6%만이 65세 이상으로 인구 구조 상 전형적인 피라미드 형을 보여주고 있다.  
 +
케냐에는 43개 부족이 있는데, 최대 부족은 반투어 그룹인 키쿠유족(704만)이다. 그외에 루야족(448만), 루오족(416만), 칼렌지족(384만), 캄바족(352만), 키시족(192만), 메루족(192만), 기타 종족(480만), 비아프리카계(32만) 등이 있다. 공용어는 영어이고 스와힐리어가 통용된다. 종교는 개신교가 45%, 가톨릭이 33%, 이슬람교가 10%, 토착 신앙이 10%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
 
===문화===
이스라엘의 문화는 종교적이었으며 최근에는 세계적인 소비자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세속적인 삶을 살지만 여전히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슬람교 문화가 두드러진다. 이스라엘은 고전음악으로 유명하며 바이올린 연주자인 이차크 페를만이 유명하다. 클레즈머는 이스라엘에서 매우 인기 있는 민속악이고 세계 각지의 유대인이 있는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시온주의자운동의 창시자는 작가들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팔레스타인 지역도 문학에는 전통을 가지고 있고 특히 시가 인기가 높다.
+
케냐의 음식문화는 각 지역의 자연환경적 특색에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 왔다. 케냐 고원 지역에 살고 있는 키쿠유족의 주식은 콩과 옥수수이다. 옥수수 가루를 물에 개어 만든 것을 '우갈리(Ugali)'라고 부르는데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다. 해안에 거주하는 스와힐리인들은 코코넛 열매를 이용해 지은 밥인 '왈리(Wali)'를 튀긴 생선과 쇠고기 수프인 '카랑가(Karanga)'등과 함께 먹는다. 사바나 지역에 거주하면서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 등은 우유와 소의 피를 섞어 마시기도 하고, 소피를 응고시킨 것을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
케냐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 중의 하나는 성년식이다. 케냐의 마사이 족은 이 성년식을 어린 전사의 지위에서 성년의 삶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로 간주한다. 전쟁의 상징인 붉은 황토색이 평화의 상징인 하얀 줄무늬로 대체된다. 여성 할례의식 또한 뿌리깊은 전통과 함께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케냐는 1990년 일부 형태의 할례를 금지했지만, 매년 약 6,000명 이상의 케냐 여성이 할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케냐에서 스포츠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 육상경기의 장거리 종목은 아주 뛰어나 올림픽, 육상선수권 대회, 마라톤 대회에서 수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크리켓은 1996년 월드컵 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축구도 월드컵축구대회에 진출할 만큼 실력이 좋다. 럭비 역시 인기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매년 파라다카르 랠리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시골에서는 구멍이 뚫리고 반으로 나누어진 나무판자로 바오(Bao)라는 게임을 한다.  
  
===종교===
+
==경제==
낙천적이고 실무적이면서 근면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유대인의 대부분은 일신교(一神敎)인 오소독스-유대교를 믿는다. 정치와 종교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국민들은 사바스의 안식일(유대교의 휴일, 즉 토요일)을 의무적으로 엄수한다. 구소련 붕괴 이후 구소련에서 많은 유대인이 귀국하였으나 10월전쟁 이후 경제상태가 악화되자 이민 희망자가 격감하였다. 77.8%가 유대교도이고 나머지가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이다.
+
케냐는 독립(1963) 후 4년 간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7.4%로, 동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제조공업이 발달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심한 가뭄 및 1997년 말부터 1998년까지 발생한 엘니뇨현상으로 농작물이나 기간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생기고 치안이 악화되어 2000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경제 정책들이 성과를 거두면서 전반적인 경제회복이 이루어졌는데, 2006년에는 GDP 237억달러에 실질 GDP 성장률 6.1%를 기록하였다. 분야별 GDP 구성을 보면, 농업이 24.2%, 정부서비스가 14.4%, 무역·호텔·요식업이 12.2%, 운수·저장·통신업이 10.9%, 제조업이 10.5%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은 케냐의 최대 수입 산업이자 최대 고용산업인데, 차와 원예가 가장 큰 외화벌이의 원천이다. 제조업 분야는 2004년 이후 서서히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설탕과 소다회가 주요 생산품이다. 관광업 분야는 2004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
2006년 수출은 35억 3400만 달러, 수입은 67억 5500만 달러로 무역수지 적자가 32억 2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주로 수출에 비해 수입제품에 대한 국내수요의 빠른 증가세에 기인한다. 원예, 차, 철강, 커피, 소다회가 총수출의 60%를 차지하며, 천연석유, 석유제품, 산업기계, 자동차 등이 총 수입의 50%를 차지한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우간다, 영국, 미국, 네덜란드이며, 주요 수입대상국은 UAE,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이다.
 +
2006년 기준으로 총연장 약 2,778km의 철도가 부설되어 있고, 대부분이 우간다와 탄자니아로 연결되어 있다. 도로의 총연장은 6만 3,265km인데(도시간 도로만 포함), 이 중 8,933km만이 포장되어 있다. 인도양 연안의 몸바사 항구, 빅토리아호의 키수무 항구 등의 항만시설과 선박은 모두 동아프리카 철도항만청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우간다와 탄자니아와의 공동경영에 의한 동아프리카항공(EAA)도 운항하고 있다. 연평균 80만 명 정도의 여객이 나이로비와 몸바사 국제공항을 이용한다.
  
 
==경제==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소득은 36,067달러이다.(2014년) 산업별 GDP구성 비율은 농업 2.5%, 광공업 30.3%, 서비스업 67.2%이다. 1980년대까지의 첨단 농업은 생명공학 및 과학영농으로 탈바꿈하고, 1990년대 초반 이후 첨단산업 위주의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여 오늘날 자타가 공인하는 실리콘 밸리 중심의 경제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산품을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678만명의 인구를 가진 중소규모의 시장으로서 중화학공업, 제조업분야의 발전은 미약한 편이다. 최근 아랍국가와의 오랜 분쟁 상태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한 국방비 및 사회복지 비용의 과다지출이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게 되고, 세계시장 의존도가 강하여 세계경제의 부침에 큰 영향을 받는다.
 
2003년 말부터의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용창출로 연결되지 못하여 실업률이 비교적 높다. 실업문제 및 실질임금 하락문에에 대한 대응책으로 외국인노동자를 줄이는 정책을 취하였다. 무역 현황을 보면 수출 437.3 억 달러, 수입 469.6억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기계장비류, 소프트웨어, 다이아몬드 절단기, 농산물, 화학제품, 섬유 의류 등이며, 수입품목은 원료, 군사장비, 투자품목, 다이아몬드 원석, 연료, 곡물, 소비재 등 다수이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미국 38.4%, 벨기에 6.5%, 홍콩 5.9% 등이며, 수입대상국은 미국 12.4%, 벨기에 8.2%, 독일 6.7%, 스위스 5.9%, 영국 5.1%, 중국 5.1% 등이다(2006년). 이스라엘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대신 양질의 인적자원이 풍부하며,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상품인 하이테크 및 무기 등 방위산업 제품 수출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references/>
 
<references/>
 
 
==과학기술==
 
이스라엘의 과학기술 중에서 생명공학산업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분야이며 미국의 투자로 시작되었다. 생명공학의 출발은 1960년대 후반 이스라엘 내의 외국 제약회사의 자회사 설립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의 생명공학은 와이즈먼 공학학회(Weizmann Institute of Technology)와 함께 마일스 연구소(Miles Labratory)에 의해 만들어진 자회사 형태였다. 그 후 이것은 히부르 대학(Hebrew Univ.)-와이즈먼 공학학회(Weizmann Institute of Technology)의 자회사인 아메스-이썸(Ames-Yissum)으로 이어졌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러한 회사들은 이스라엘인만의 소유회사로 변하여갔다.
 
점차적으로 외국 벤처자본가들은 이스라엘 내에 그들만의 독립된 회사를 설립하였다. 반면,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의 벤처 자본가들은 과학에 기초를 둔 그들만의 회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생명공학은 이제 이스라엘 본래의 산업이라고 말한다. 단지 연구와 개발활동을 돕기 위해 미국의 자본이라는 요소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의 주요 생명공학 분야는 유전자 기술, 인간과 동물 진단법, 농업에 쓰이는 비료, 그리고 해양생물공학 등이 있다.
 
  
  
 
==대한관계==
 
==대한관계==
우리나라는 1962년 4월 9일 수교를 하였으며, 1964년 8월 이스라엘의 주한 상주대사관이 설치되었다. 그 뒤 1978년 4월부터 대사관이 폐쇄되고 주일 이스라엘대사가 겸임을 하였으나, 1992년 1월 재개되었다. 우리나라는 1969년 4월 주 이탈리아 대사가 이스라엘 대사를 겸임하였으나 2008년 현재 상주공관을 설치하고 있다. 양국의 관계는 6·25전쟁 당시 17만 달러 상당의 의약품을 원조한 것으로부터 비롯되며, 1990년 6월 학술교류협력의정서를 체결한 이래, 1993년 9월 항공우주기술교류 협정, 1994년 11월 과학기술협력 협정, 1994년 12월 항공운수 협정, 문화협력 협정, 1995년 2월 비자면제 협정, 1995년 8월 군사기밀보호 협정, 1996년 9월 세관협력 협정, 1997년 3월 이중과세방지 협정, 1997년 8월 농업협력양해각서, 전기통신 우편협력양해각서, 1998년 11월 산업기술협력 협정, 1999년 7월 투자보장 협정, 2002년 10월 해운 협정, 2005년 1월 민간부문연구개발협력 협정, 2005년 11월 관광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정치적으로는 한국의 대아랍관계 때문에 긴밀한 편은 아니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쌍방의 민간친선협회를 중심으로 교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의 대 이스라엘 수출액은 2007년 현재 9억 6977만 달러로 주종목은 전자·무선통신·자동차 등이고, 수입액은 7억 3651만 달러로 주종목은 반도체·정밀기계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37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한편, 북한은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이는 북한의 아랍지지일변도 정책 때문이며,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북한의 대아랍군사 지원과 팔레스타인게릴라에 대한 북한의 무기지원으로 적대관계에 있다. 2007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현대상사,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대우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고, 16명의 한국민 교민과 354명의 체류자가 있다.
+
케냐는 한국과 1964년 2월 7일에 수교하여 2007년 7월 서울에 대사관을 설립하였다. 의료협정(1973), 무역협정·경제기술협력협정(1977), 문화협정(1980), 항공협정(1981) 등이 체결되었다. 1973년 한국의 의사가 파견되었으며 한국 상사(商社)들도 진출해 있다. 대통령 전두환(1982), 대통령특사 한완상(1994), 국회의장 박준규(1991), 환경처장관 권이혁(1992)이 케냐를 방문했고, 케냐 대통령 모이(1990), 외무장관 무쇼카(1994), 과학기술장관 코네스(1999), 통상산업장관 비요트(2001)가 방한하였다. 2006년 기준으로  교민 체류자는 약 550명으로 이 중 나이로비 지역에 약 480명, 몸바사 지역에 약 40명, 기타 지역에 약 30명이 거주하고 있다. 2006년 우리나라의 대케냐 수출액은 2억 480만 달러이고 수입액은 512만 달러로 무역 흑자 1억 9,968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열연강판, 합성수지, 타이어, 석유화학제품, 폴리에스테르직물, 재봉기, 축전기 등이며, 케냐의 수출품은 마사, 커피, 어류의 필레트 등이다. 1968~2006년까지 우리나라의 대 케냐 투자는 11건에 347만 달러이며, 케냐의 대한 투자 건수는 전무하다.
  
  
  
 
==바깥고리==
 
==바깥고리==
*[http://col.mofa.go.kr/ 주이스라엘대사관]
+
*[http://col.mofa.go.kr/ 주케냐대사관]
*[http://www.info.gov.il/ 이스라엘 정부(히브리어)]
+
*[http://http://www.mfa.go.ke/ 케냐 외무부(영어)]
*[http://www.israelhanin.org/ 이스라엘 한인회]
+
 
+
  
  
73번째 줄: 68번째 줄:
 
|-
 
|-
 
|uses
 
|uses
|[[교육제도:이스라엘]]
+
|[[교육제도:케냐]]
|콜롬비아 교육과정, 2014년 조사 보고  
+
|케냐 교육과정, 2014년 조사 보고  
 
|-
 
|-
 
|uses
 
|uses
|[[교과서목록:이스라엘]]
+
|[[교과서목록:케냐]]
|이스라엘 사회과 교과서 목록  
+
|케냐 사회과 교과서 목록  
 
|-
 
|-
 
|}
 
|}
85번째 줄: 80번째 줄:
  
 
[[분류:국가]]
 
[[분류:국가]]
[[분류:이스라엘]]
+
[[분류:케냐]]
 
[[분류:2014년]]
 
[[분류:2014년]]

2015년 4월 8일 (수) 11:09 판

케냐(Kenya)
Kenya.png
인구 약4,555만명(2014년 IMF 예상치), Kikuyu(22%), Luhya(14%), Luo(13%), Kalenjin(12%), Kamba(11%), Kisii(6%), Meru(6%) 등 약 42개 부족으로 구성
면적 약57만㎢
언어 스와힐리어(통용어), 영어(공용어)
정부 대통령 중심제
통화 Kenya Shilling
GDP 전체 $552.4억(2013, UN)/ 1인당 $1,227(2014, EIU)
HDI 0.519(145위, 2012년)
국제전화 +254
도메인 .ke


이름 및 위치

케냐 위치

케냐의 정식 국가 명칭은 케냐공화국(Republic of Kenya)이다.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하며 동북부로는 소말리아, 서북부로는 에티오피아(Ethiopia) 및 수단(Sudan)과 접하고 서부로는 우간다(Uganda), 남부로는 탄자니아(Tanzania)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약 57만㎢로 한반도의 약 2.6배이다. 수도는 나이로비(Nairobi)이며 해발 고도는 약 1,700m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인구는 4,555만 명이고 수도 나이로비의 인구는 450만 명이다(2012년 현재 평균수명 남 69세, 여 77세). 케냐는 적도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나 열대의 해안 지대부터 사바나 초원, 반(半)사막1), 고산 기후 지대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해안 지방이 20.5℃~32℃, 내륙 지방이 9.5℃~23.6℃이다. 고원 지방 및 서부는 강우가 풍부하고 북부는 건조하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간략역사

케냐는 BC 1,000년경까지만 해도 원주민은 부시먼족(Bushman) 계통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무렵 아라비아 반도 쪽으로부터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를 경유하여 햄족과 셈족의 인종이 남하해왔다. 인도양 연안에는 기원 초까지도 그리스인·이집트인·페르시아인·아랍인·인도인 등이 들어와 거주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7세기경에는 아랍인이 정착하여 그들의 마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1498년 이후 포르투갈인이 해안지대에 진출해왔다. 16세기에는 서쪽으로부터 반투족이 이동해왔고, 해안지대는 아랍인과 포르투갈인의 쟁탈장이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영국과 독일의 그리스도교 포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1824년부터 몸바사 부근에 세력을 펴게 되었다. 1888년 영국의 동아프리카 회사가 특허회사로서 이 지역의 무역을 독점하였고, 1895년 영국의 동아프리카 보호령이 되었다. 유럽인의 식민이주가 장려되어 이민자들은 내륙 고원에 백인고원(White Highlands)이라고 일컫는 농업지대를 형성하였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많은 백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고, 1920년 6월에는 인도양 연안을 케냐 보호령으로, 그 밖의 지역을 케냐 식민지로 개칭하였다. 그 후 영국은 우간다 및 탕가니카(현재의 탄자니아)와 공통의 통화(通貨)를 사용하게 하고, 그 밖에도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로써 묶어 통치하였으나 1930년대부터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더욱 강화되었다. 1952년 10월에 시작된 ‘마우마우(Mau Mau)의 투쟁’은 1956년경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는 유럽인에게 빼앗긴 농토를 되찾기 위한 민족운동이기도 하였다.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가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이윽고 1963년 12월 12일 케냐는 독립을 성취하였으며, 1964년 12월 12일 공화국을 선언하였다. 1964년 케냐타가 1대 대통령을 취임하면서 시작된 케냐의 독립국가로서 역사는 부침이 심한 특징을 보여왔다. 198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보였던 케냐는 부정부패, 종족 갈등, 범죄, 테러리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하여 국가적 잠재력을 만개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1979년 집권한 KANU당의 모이 대통령(Daniel Arap Moi)은 24년 간에 걸쳐 통치자로 군림했는데, 이 기간 동안 부정부패와 인권탄압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영국, 미국, IMF 등은 이러한 이유로 케냐에 대한 경제 원조와 차관 제공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모이 대통령의 독재 체제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레인보우 연합당(NARC)의 음와이 키바키(Mwai Kibaki)가 승리하면서 끝이 났다.

지리

케냐의 국토는 크게 네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빅토리아호 부근의 서부 지역은 완만한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중부 고원지대는 동아프리카지구대가 통과하는 지역이다. 북부 지역은 건조 지역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며, 동부해안 지역은 반건조 평원지대이다. 특히 동아프리카지구대(Great Rift Valley)가 통과하는 중서부 지역은 지질적으로 불안정하며 높은 산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만도 20개(최고봉은 Mt. Kirinyaga로 5,199m)에 이른다. 케냐의 기후 지역은 크게 북부의 건조기후대와 남부의 사바나기후대로 나누어지는데, 북동부 지역에서는 사하라 사막에서 이어지는 건조기후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수도인 나이로비를 포함한 남부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교차하는 열대 사바나 기후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지적으로는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는데, 빅토리아호 부근의 서부 지역은 비교적 강수량이 풍부한 특색을 나타내며, 인도양과 접하고 있는 해안지역에서는 고온 다습한 전형적인 열대기후의 특색이 나타난다. 또한 동아프리카지구대가 통과하는 고원지대에는 고산 기후적인 특성도 나타나고 있다. 해안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20.5°~31°C 정도이지만, 내륙지방의 연평균 기온은 7°C~27°C 정도로 내륙으로 갈수록 열대 기후의 특색이 감소한다.

사회

주민

케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8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인구의 집중지는 서부의 빅토리아호 부근,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한 지역, 그리고 동부 해안 지역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수도인 나이로비로 약 280만 명(2005년)의 인구 수를 기록하고 있고, 2위는 몸바사로 82만 명 정도이다. 인구 증가율은 약 2.8%(2007년 추계)로 매우 높은 편으로, 인구 추계에 따르면 케냐의 전체 인구는 2025년 경 약 5,000만 명에 이르고, 2050년 경에는 6,50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평균수명은 55.3세(남자 55.2세, 여자 55.4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구의 42.1%가 15세 미만이고 단지 2.6%만이 65세 이상으로 인구 구조 상 전형적인 피라미드 형을 보여주고 있다. 케냐에는 43개 부족이 있는데, 최대 부족은 반투어 그룹인 키쿠유족(704만)이다. 그외에 루야족(448만), 루오족(416만), 칼렌지족(384만), 캄바족(352만), 키시족(192만), 메루족(192만), 기타 종족(480만), 비아프리카계(32만) 등이 있다. 공용어는 영어이고 스와힐리어가 통용된다. 종교는 개신교가 45%, 가톨릭이 33%, 이슬람교가 10%, 토착 신앙이 10%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

케냐의 음식문화는 각 지역의 자연환경적 특색에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 왔다. 케냐 고원 지역에 살고 있는 키쿠유족의 주식은 콩과 옥수수이다. 옥수수 가루를 물에 개어 만든 것을 '우갈리(Ugali)'라고 부르는데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다. 해안에 거주하는 스와힐리인들은 코코넛 열매를 이용해 지은 밥인 '왈리(Wali)'를 튀긴 생선과 쇠고기 수프인 '카랑가(Karanga)'등과 함께 먹는다. 사바나 지역에 거주하면서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 등은 우유와 소의 피를 섞어 마시기도 하고, 소피를 응고시킨 것을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케냐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 중의 하나는 성년식이다. 케냐의 마사이 족은 이 성년식을 어린 전사의 지위에서 성년의 삶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로 간주한다. 전쟁의 상징인 붉은 황토색이 평화의 상징인 하얀 줄무늬로 대체된다. 여성 할례의식 또한 뿌리깊은 전통과 함께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케냐는 1990년 일부 형태의 할례를 금지했지만, 매년 약 6,000명 이상의 케냐 여성이 할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케냐에서 스포츠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 육상경기의 장거리 종목은 아주 뛰어나 올림픽, 육상선수권 대회, 마라톤 대회에서 수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크리켓은 1996년 월드컵 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축구도 월드컵축구대회에 진출할 만큼 실력이 좋다. 럭비 역시 인기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매년 파라다카르 랠리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시골에서는 구멍이 뚫리고 반으로 나누어진 나무판자로 바오(Bao)라는 게임을 한다.

경제

케냐는 독립(1963) 후 4년 간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7.4%로, 동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제조공업이 발달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심한 가뭄 및 1997년 말부터 1998년까지 발생한 엘니뇨현상으로 농작물이나 기간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생기고 치안이 악화되어 2000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경제 정책들이 성과를 거두면서 전반적인 경제회복이 이루어졌는데, 2006년에는 GDP 237억달러에 실질 GDP 성장률 6.1%를 기록하였다. 분야별 GDP 구성을 보면, 농업이 24.2%, 정부서비스가 14.4%, 무역·호텔·요식업이 12.2%, 운수·저장·통신업이 10.9%, 제조업이 10.5%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은 케냐의 최대 수입 산업이자 최대 고용산업인데, 차와 원예가 가장 큰 외화벌이의 원천이다. 제조업 분야는 2004년 이후 서서히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설탕과 소다회가 주요 생산품이다. 관광업 분야는 2004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2006년 수출은 35억 3400만 달러, 수입은 67억 5500만 달러로 무역수지 적자가 32억 2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주로 수출에 비해 수입제품에 대한 국내수요의 빠른 증가세에 기인한다. 원예, 차, 철강, 커피, 소다회가 총수출의 60%를 차지하며, 천연석유, 석유제품, 산업기계, 자동차 등이 총 수입의 50%를 차지한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우간다, 영국, 미국, 네덜란드이며, 주요 수입대상국은 UAE,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이다. 2006년 기준으로 총연장 약 2,778km의 철도가 부설되어 있고, 대부분이 우간다와 탄자니아로 연결되어 있다. 도로의 총연장은 6만 3,265km인데(도시간 도로만 포함), 이 중 8,933km만이 포장되어 있다. 인도양 연안의 몸바사 항구, 빅토리아호의 키수무 항구 등의 항만시설과 선박은 모두 동아프리카 철도항만청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우간다와 탄자니아와의 공동경영에 의한 동아프리카항공(EAA)도 운항하고 있다. 연평균 80만 명 정도의 여객이 나이로비와 몸바사 국제공항을 이용한다.



대한관계

케냐는 한국과 1964년 2월 7일에 수교하여 2007년 7월 서울에 대사관을 설립하였다. 의료협정(1973), 무역협정·경제기술협력협정(1977), 문화협정(1980), 항공협정(1981) 등이 체결되었다. 1973년 한국의 의사가 파견되었으며 한국 상사(商社)들도 진출해 있다. 대통령 전두환(1982), 대통령특사 한완상(1994), 국회의장 박준규(1991), 환경처장관 권이혁(1992)이 케냐를 방문했고, 케냐 대통령 모이(1990), 외무장관 무쇼카(1994), 과학기술장관 코네스(1999), 통상산업장관 비요트(2001)가 방한하였다. 2006년 기준으로 교민 및 체류자는 약 550명으로 이 중 나이로비 지역에 약 480명, 몸바사 지역에 약 40명, 기타 지역에 약 30명이 거주하고 있다. 2006년 우리나라의 대케냐 수출액은 2억 480만 달러이고 수입액은 512만 달러로 무역 흑자 1억 9,968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열연강판, 합성수지, 타이어, 석유화학제품, 폴리에스테르직물, 재봉기, 축전기 등이며, 케냐의 수출품은 마사, 커피, 어류의 필레트 등이다. 1968~2006년까지 우리나라의 대 케냐 투자는 11건에 347만 달러이며, 케냐의 대한 투자 건수는 전무하다.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대상 문서 설명
uses 교육제도:케냐 케냐 교육과정, 2014년 조사 보고
uses 교과서목록:케냐 케냐 사회과 교과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