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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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토기와 도자기는 점력(粘力)을 갖춘 가소성(可塑性)이 있는 질[胎土]로 형태를 만들고 이것을 불에 구워낸 것이다.

내용

토기를 만들려면 점력을 가진 흙이면 대체로 질로 사용할 수 있으며, 토기를 구워내는 화도(火度)는 600℃ 이상에서 800℃ 정도이고 경우에 따라서 1,00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인류가 처음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대략 서기전 1만년에서 6000년경 사이이며, 우리 나라에서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대략 서기전 6000∼5000년경이었다. 토기를 질로 만들어 불에 굽지 않고 햇볕에 말려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이었고 뒤에도 매우 제한된 지방에서 사용되었다. 처음 토기를 만들었을 때는 질을 앙금짓기[水飛:혼합된 점토와 원료를 물에 풀어서 가라앉혀 앙금만 걷어서 쓰는 것)하지 않고 그릇을 만들어 600℃ 정도의 낮은 화도에서 구워냈으며 가마도 없었다.

사람의 지혜가 점차 발달함에 따라 질을 앙금짓기를 하고 토기를 구워내는 화도를 높이고, 높은 화도에 견디어내는 질을 찾아내고, 가마를 만들고 가마도 높은 화도를 견디어내는 가마로 점차 바꾸어나가면서 저화도(低火度) 연질토기(軟質土器)에서 더욱 발전하여 1,100℃ 이상 1,200℃의 고화도(高火度) 경질토기(硬質土器:炻器)를 만들게 되었고, 토기에서 자기로 이행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따라서, 도자기는 넓은 의미의 토기·도기(陶器)·석기(炻器)·자기(磁器:瓷器)를 모두 일컫는 말이다.

도기는 900∼1,000℃ 내외의 화도에서 산화번조(酸化燔造:가마에 불을 땔 때 산소를 많이 들여보내는 방법. 결과, 토기는 황색·갈색·적색을 띠며, 청자와 백자는 황색이나 갈색을 머금게 됨. ) 위주로 구워내며 표면에 유약(釉藥)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간단한 도기의 개념이지만, 도기라는 것은 그 범위가 넓어 그 밖에도 일부 반환원상태(半還元狀態)의 토기를 도기라고도 하며, 1,000℃ 이상의 높은 화도에서 여러 가지 회유(灰釉:나뭇재나 석회로 만든 잿물)를 발라 산화번조한 토기를 지칭하기도 하며, 연유(鉛釉)를 입힌 모든 토기를 지칭하기도 한다.

석기는 1,100℃ 이상의 높은 화도에서 주로 환원번조(還元燔造:산화번조와 반대 방법으로, 가마의 온도가 1,100℃ 이상일 때, 땔감을 많이 넣고 산소를 막아 불완전연소가 되게 하는 방법. 결과, 토기는 회색·회청흑색이 되고, 백자는 담청색을 머금고, 청자는 아름다운 비색이 됨.)한 것을 말하는데, 자연유(自然釉)나 인공회유가 입혀진 것이 있으며, 토기 중에서 가장 경질의 것이다. 자기(瓷器는 중국식 표기)는 점력을 갖춘 순도 높은 백토(白土:高嶺土), 즉 질(胎土:陶土·陶石)로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장석질(長石質)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번조(燔造)하여 그 조직이 치밀한 것을 말하며, 이를 백자라고도 한다.

치밀하다는 것은 번조할 때 가마 안에서 완전히 자화(磁化)되어 유약은 무색 투명하며, 순백의 태토 자체도 반투명질이 되고 태토와 유약이 일체가 되듯 밀착된 상태로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유약에 균열(빙열·식은 테)도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도기·석기의 단계까지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일찍이 도달할 수 있었지만,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한 나라는 별로 없었다. 우리 나라와 중국·베트남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앞서서 자기를 만들어냈으며, 그 중에서도 우리 나라와 중국은 그 조형이 독창적이고 양질의 자기를 생산하였지만, 베트남은 자질(磁質)에는 거의 도달하였으나 질과 조형이 모두 중국의 아류로 우수하지 못하였다.

2015 도자기 체험

2016 도자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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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