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제 1차 세계대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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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펜 계획)
(서구의 고챡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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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은 벨기에를 통과하는 프랑스침공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다시 돌아와 러시아군과 맞설 수 있도록 <br />그들을 자유롭게 내버려 둘 것이라 생각하였다 – 벨기에의 저항과, 러시아가 그토록 잘 대처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독일은 벨기에를 통과하는 프랑스침공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다시 돌아와 러시아군과 맞설 수 있도록 <br />그들을 자유롭게 내버려 둘 것이라 생각하였다 – 벨기에의 저항과, 러시아가 그토록 잘 대처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서구의 고챡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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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에서의 고착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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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형태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 그리고 그것은 충격적일 정도로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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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의 야전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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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에서의 초기 전투는 우위를 차지하기위한 양측의 투쟁의 양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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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스(MONS)''' – 1914년 8월 첫 병력으로 영국으로부터 파병된 영국 원정군(BEF; British Expeditionary Force)은 독일의 진군 속도를 늦추었으나,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독일 황제(German Kaiser)는 그들을 ‘비열한 작은 군대’라고 지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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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느(MARNE)''' – 연합군은 파리(Paris)를 수호하였고, 독일을 엔(Aisne)강으로 퇴각시켰다. 전투는 5일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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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르(YPRES)''' – 상대 군이 해안지대를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양측모두 ‘바다로 돌진하였다’ 연합군이 이에 성공하였으나, 엄청나게 많은 인명손실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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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쪽도 상대편을 퇴각 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참호를 파고 적군의 진격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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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년 말, 참호 선은 벨기에 해안에서부터 스위스(Switzerland)까지 늘어서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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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쪽 모두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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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변화는 참호 내 교착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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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누구도 참호전에 익숙하지 않았다. 교착상태를 끝내는 방법을 알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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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큰 규모의 군사를 통솔한 적이 없었다.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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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든 새로운 병력들을 훈련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전쟁 발발 전 소규모의 군대 만을 보유하였던 영국에게는 특히나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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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이 보유한 새로운 무기들은 대체로 공격보다 방어에 더 적합하였다(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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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진 부대들은 점령한 고지를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후퇴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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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양측모두 보급이 잘 이루어졌으며, 항상 더 많은 군대와 인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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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상황은 끔찍하였다, 진흙투성이와 축축한 환경은 빠른 공격에 적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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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포병대의 폭격으로 적군의 전선을 약화시키고자 하였으나 – 적들에게 공격의 시작을 경고하는 데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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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실들을 머릿속에 쏙쏙 집어넣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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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가 참호에 들어가게 되자, Christmas에는 전쟁이 끝날것이라는 희망은 사라졌다.
  
 
==참호 속에서의 삶==
 
==참호 속에서의 삶==

2015년 12월 3일 (목) 23:55 판


슐리펜 계획

이 장은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만약 이 주제에 대해 다시 검토하고자 한다면, 제1장에서 다루고 있는 전쟁의 원인과 발생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독일(Germany)인들은 프랑스(France), 러시아(Russia)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1) 프랑스는 1870-71년 독일에 패하였으며 복수를 원하고있었다. 프랑스는 1871년 빼앗긴 영토인 알자스(Alsace)와 로렌(Lorraine)을 되찾기 위한 Plan 17이라는 비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2) 1984년 프랑스는 러시아와 조약을 맺었으며, 이에 독일은 러시아가 프랑스를 돕기 위해 동쪽으로부터 공격해 올 것이라 예상했다.

3) 독일은 양면전을 벌여야 했다. 이에 대한 답안은 1905년 작성된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이었다.

      슐리펜 계획은 러시아군이 준비를 마치기 전에 벨기에(Belgium)를 가로질러 프랑스를 공격하고 승리를 거둔 후, 
      다시 돌아와 러시아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슐리펜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1) 벨기에는 독일의 군대가 자국의 영토를 지나 프랑스를 침공하러 가는 것을 거부하였다. 독일은무력을 사용하여야 하였으며, 이로 인해 그들의 진군 속도가 늦어지게 되었다.

2) 1839년 벨기에는 중립국가로서의 상태를 지키기 위해 영국(Britain)과의 조약에 서명하였다. 독일이 벨기에로부터의 철수를 거부하자, 영국은 전쟁을 선언하였다.

3) 러시아는 독일의 예상보다 빠르게 전쟁 준비를 마쳤다. 다수의 소중한 독일 군인들이 프랑스로 나아가는 대신 그들(러시아)을 대면하기 위해 동쪽으로 전진해갔다.

모든 일이 독일의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
독일은 벨기에를 통과하는 프랑스침공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다시 돌아와 러시아군과 맞설 수 있도록 
그들을 자유롭게 내버려 둘 것이라 생각하였다 – 벨기에의 저항과, 러시아가 그토록 잘 대처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서부전선에서의 고착상태

제1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형태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 그리고 그것은 충격적일 정도로 무서웠다.

단기간의 야전이 뒤따랐다.

서부에서의 초기 전투는 우위를 차지하기위한 양측의 투쟁의 양상을 보였다:

몽스(MONS) – 1914년 8월 첫 병력으로 영국으로부터 파병된 영국 원정군(BEF; British Expeditionary Force)은 독일의 진군 속도를 늦추었으나,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독일 황제(German Kaiser)는 그들을 ‘비열한 작은 군대’라고 지칭하였다.

마르느(MARNE) – 연합군은 파리(Paris)를 수호하였고, 독일을 엔(Aisne)강으로 퇴각시켰다. 전투는 5일간 지속되었다.

이프르(YPRES) – 상대 군이 해안지대를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양측모두 ‘바다로 돌진하였다’ 연합군이 이에 성공하였으나, 엄청나게 많은 인명손실을 입었다.

         어느 쪽도 상대편을 퇴각 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참호를 파고 적군의 진격을 막았다. 
         1914년 말, 참호 선은 벨기에 해안에서부터 스위스(Switzerland)까지 늘어서게 되었고 
         양쪽 모두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전쟁의 변화는 참호 내 교착을 의미했다.

1) 어느 누구도 참호전에 익숙하지 않았다. 교착상태를 끝내는 방법을 알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

2)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큰 규모의 군사를 통솔한 적이 없었다.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3) 모든 새로운 병력들을 훈련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전쟁 발발 전 소규모의 군대 만을 보유하였던 영국에게는 특히나 힘든 일이었다.

4) 군이 보유한 새로운 무기들은 대체로 공격보다 방어에 더 적합하였다(그림 참조).

5) 전진 부대들은 점령한 고지를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후퇴해야만 하였다.

6) 양측모두 보급이 잘 이루어졌으며, 항상 더 많은 군대와 인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7) 상황은 끔찍하였다, 진흙투성이와 축축한 환경은 빠른 공격에 적합하지 않았다.

8) 포병대의 폭격으로 적군의 전선을 약화시키고자 하였으나 – 적들에게 공격의 시작을 경고하는 데에 그쳤다.


이 모든 사실들을 머릿속에 쏙쏙 집어넣기를...
부대가 참호에 들어가게 되자, Christmas에는 전쟁이 끝날것이라는 희망은 사라졌다.

참호 속에서의 삶

동부전선

갈리폴리 전투

해상 전쟁

전쟁 종료

요약

시험 자료

연습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