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과 주식시장 대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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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주식시장 대폭락

학습목표
- 1929년 주식시장의 대폭락을 가져온 사건들은 무엇인가?
- 왜 대폭락이 전국 경제에 파급효과를 가져왔는가?
- 대공황의 주요원인은 무엇인가?

요점
1929년 10월 공황매도(panic selling)로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함. 이 대폭락은 대공황으로 불리는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가져옴.

핵심용어
-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
- 검은 화요일(Black Tuesday)
- 대폭락(Great Crash)
- 경기순환(business cycle)
- 대공황(Great Depression)

학습주안점
- 원인과 결과를 찾기: 본문을 읽어가면서 1929년 주식시장의 대폭락의 원인과 결과를 찾아서 아래 표를 완성시키시오.
. 원인: 1920년대의 과잉투기, 과잉생산 → 대폭락
. 결과: 투자자와 기업가들이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음, 수천 개 은행이 부도나고 저축금을 찾지 못하게 됨.


배경
1929년 10월 29일, 뉴욕 증권 거래소의 객장에는 공포가 휘몰아쳤다. 투자자들은 수백만 달러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1920년대의 놀라운 번영은 갑자기 끝났다. 작가 고든 토마스(Gordon Thomas)와 막스 모르건 위츠(Max Morgan-Witts)는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한 배달원이 무리를 헤치고 나가려 할 때 누군가에게 머리카락을 움켜잡혀 허공에 뜨게 됐다. 그 소년을 잡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잃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 소년을 풀어주려 하지 않았다. 두려움에 빠진 소년이 마침내 풀려났지만 그의 머리 한 움큼은 그 사람의 손에 남아 있었다. 너무 아파서 울면서 증권거래소에서 도망갔지만 그 소년의 머리는 다시 자라지 않았다. 그 소년이 떠난 뒤편은 아수라장이 더 심해졌다. 주식이 뭉텅이로 버려졌다. 천 명의 중개인들과 이천 명의 보조원의 무리들, 전령, 직원들, 전화교환수, 그리고 기록원들은 이날이 ‘백만장자들의 살육일’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윌리엄 크로포드(William Crawford)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그는 이렇게 그날을 회상한다. ‘사람들은 수많은 사자와 호랑이들처럼 울부짖었다. 그들은 고함을 치고 비명을 질렀고 서로 서로 멱살을 잡고 있었다. 완전히 미친놈들의 떼거지였다.’” - 고든 토마스와 맥스 모건 위트, “거품이 터지던 날”


시장의 폭락
운명적이었던 그 10월의 공포 이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1928년 초에 주요 산업분야의 주가의 평균을 보여주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는 191까지 치솟아 올랐다. 후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1929년 3월 4일에는 122포인트 더 상승했다. 9월 3일에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381을 기록했다.

  • 역사의 한 장면: 주식시장의 가격이 내려가게 되자 주가를 알려주는 티커 테이프는 시장의 동향을 제 때 알려주지 못하게 되었다. 조급해진 투자자들은 최신 소식을 알기 위해 월 스트리트로 몰려들었다.

- 핵심문제 파악하기: 왜 1929년 10월 투자자들은 공포심을 느꼈는가?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뉴스를 지배했다. 주가를 체크하는 것은 베이브 루스의 홈런 개수를 세는 것과 같은 대중적인 관심거리였다. 조바심이 난 예민한 투자자들이 주가를 알려주는 티커 테이프에 실린 최신 소식을 얻기 위해 중개사무소에 몰려들었다. 많은 주식 가격들이 기업의 수입과 자산의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게 치솟았다.

검은 목요일
9월에 최고치를 기록하고는 주가는 점차 떨어졌다. 어떤 중개인들은 대출금을 환수했지만 어떤 중개인들은 더 많이 빌려주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걱정하는 대중들을 이렇게 안심시켰다. “과잉투기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시장은 전반적으로 지금 건강한 상태입니다.”
10월 23일 수요일 주식 시장이 폐장했을 때 다우존스 평균지수는 한 시간에 21포인트 떨어졌다. 그 다음날인 10월 24일 걱정스러웠던 투자자들이 매도해서 주가가 떨어졌다. 한 주에 400달러에 구입한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주식은 283달러에 팔렸다.
재계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말했다. 어떤 은행 중역은 미국같이 부유한 나라만이 “증권거래소에서 하루에 30억 달러의 손실이 있어도 일반 시민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후버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는 “건전하고 번영하는 기초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검은 화요일
시장의 공포를 멈추기 위해 일단의 은행가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그들의 자금을 모았다. 이 조치는 가격을 안정시켰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월요일에 주가는 다시 떨어졌다. 전국의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자신들의 돈을 빼내기 위한 경합을 벌였다. 그해 초에 평균 4백만에서 8백만 달러의 주식이 거래되었던 데에 비해 10월 29일, 바로 검은 화요일에 1천6백40만 달러의 주식이 팔렸다. 이렇게 주식 시장이 붕괴한 것을 대폭락(Great Crash)이라고 부른다. 진정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폭락은 검은 화요일을 넘어 계속됐다. 11월 13일에 다우존스 평균지수는 9월에 기록한 381포인트로부터 198.7포인트로 떨어졌다. 시장의 전체 손실은 3백억 달러에 이르렀다. 대폭락은 경제가 성장하고 수축하는 주기인 경기순환의 일부였다.


대폭락의 파급효과
처음에 대폭락은 주식 시장에 대규모로 투자했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1929년에 그 수는 전체 인구 1억2천만 명 중 400만 명이었다. 어떤 투자자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주식 시장에서 큰 타격을 받은 한 보스턴에 사는 부자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어제는 주식 통장에 7천 달러밖에 남지 않았었다. 오늘은 완전히 비어버렸을 것이다. 난 백만장자를 꿈꿨는데 그 꿈은 어디로 갔나.”
그러나 짧은 시간에 대폭락의 영향력은 전국 경제에 미쳤다. 주식 하나 만져본 적이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 다음의 리스트는 어떻게 주가의 폭락이 모든 미국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 심화학습: 경제

- 경기순환: 한 나라 경제의 주기적인 성장과 수축
∙ 역사적 배경: 1929년의 폭락은 1920년대 경제적 팽창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였고 대공황으로 알려진 장기적인 경제 수축기의 시작이었다. 대공황 기간 동안 정치지도자들은 강도 높은 정부의 개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할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 팽창과 변영을 회복하는 자유시장의 자연스러운 작동에 의지할 것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 오늘날의 개념: 미국경제는 고성장기와 저성장기 혹은 수축기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게 된다. 연방정부는 세금을 부과하고 재정정책을 통하여, 그리고 연방준비위원회(Federal Reserve)는 화폐의 공급을 규제하는 금융정책을 통해서 경제가 심각하게 하강하는 충격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 경기순환의 추적

팽창-최고점-수축(경제활동의 둔화, 실업)-저점-팽창(고용과 수입증가, 경기의 전반적인 활황-최고점-수축-저점-팽창

  • 학습이해도 확인: 대폭락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위험도 높은 대출이 은행에 손실을 입히다: 은행들은 예금을 대출하여 얻은 이자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1920년대에 은행들은 대규모의 자금을 위험도가 높은 기업에 빌려주었다. 주식 가격이 떨어지자 이런 기업들은 그들의 부채를 갚을 수 없었다.
소비자대출: 은행들은 또한 소비자들의 대출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소비자들은 1920년대에 은행으로부터 과도하게 대출을 해서 소비재를 구입했다. 은행들이 대출금을 회수하게 될 때, 소비자들은 대출금을 갚을 현금이 없었다.
예금인출사태: 대폭락은 전국적인 은행의 파산을 가져왔다. 은행에 돈이 없을 것을 염려하여 사람들은 그들의 계좌에서 인출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예금을 지불해주기 위해 은행들은 채무자들로부터 부채를 환수했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과 소비자들은 주가의 하락으로 손실을 입어서 부채를 상환할 수 없었다. 부채가 상환되어도 은행들은 자신들의 돈을 요구하는 예금자들에게 지급할 수 있을 만큼 빨리 자금을 회수할 수 없었다.
은행의 파산: 부채의 미상환과 예금인출사태가 결합하게 되자 전국적으로 은행들이 파산하였다. 예금자들의 돈을 돌려줄 수 없게 되자 수천 개의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단 몇 년 동안 5천5백 개 이상의 은행들이 파산했다.
저축금의 손실: 은행의 파산은 사람들의 소액의 저축까지도 사라지게 되었다. 1933년에는 9백만 개 계좌의 저축이 사라졌다.
생산의 감소: 기업들은 제품을 생산할 자금을 더 이상 빌릴 수 없었다. 게다가 기업들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지출할 동기가 결여되었다. 그리고 제품을 구매할 돈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실업의 증가: 기업들이 생산을 감축하게 되자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실업이 증대되었다.
생산의 추가적 감축: 실업률이 상승하고 소득이 급감하면서 소비자들은 지출을 더 줄였고 기업들은 생산을 더 줄였다. 경제전반의 상품 생산이 급락했다.

  • 도표를 이해하기: 대폭락이후 경제의 각 부문들은 손실을 입히는 순환을 겪게 되었다. 각 부문의 순환은 다른 부문에 영향을 미쳤다.

- 문제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어떻게 대폭락에 따른 사건들이 상호작용하여 각 부문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 대폭락의 영향

- 투자자들: 투자자들이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음 ↔ 기업들이 이윤을 상실함
- 기업과 노동자들: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임 → 기업들이 투자와 생산을 삭감함. 여러 기업이 파산함 → 노동자들이 해고됨 →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임
- 은행: 기업과 노동자들이 은행의 대출을 상환하지 못함 → 은행이 자금이 부족하여 파산함 → 은행인출사태 → 계좌의 저축금이 사라짐 → 기업들과 노동자들이 은행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함 - 전 세계적 지불구조: 미국의 전반적인 생산이 감소 → 미국의 투자자들이 투자할 자금이 부족하거나 없음 → 독일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감소 → 연합국에 대한 독일의 전쟁보상금이 급감함 → 유럽 국가들이 미국 제품을 구매하지 못함 → 연합국들이 미국에 대한 차관을 상환하지 못함 → 미국의 전반적인 생산이 감소

경제의 수축
위에서 설명한 대폭락의 결과는 수축하는 경제의 일반적인 증상들이다. 수축은 상품과 용역 생산의 감소로 나타나는 경제의 쇠퇴를 말한다. 특히 장기적이고 심각한 수축을 공황이라고 부른다. 1920년대 말에 이미 경제는 위험한 사인을 보냈다. 대폭락은 더 심각한 결과들을 가져왔다. 결국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기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1929년부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 1941년까지 이어지는 대공황이다.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미친 영향
더 이상 상품을 생산할 자금도 동기도 결여되면서 전국적으로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삭감되었다. 1931년 8월 헨리 포드(Henry Ford)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을 폐쇄했고 적어도 7만5천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각 지역의 공장들이 문을 닫자마자 지역 중소기업들도 사정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식당들과 소규모 기업들은 더 이상 소비자들이 찾아오지 않게 되어 문을 닫았다. 이전에 부유했던 가정들은 가정에서 고용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농작물의 가격은 이미 낮았지만 더 떨어져서 많은 가정들에게 재앙을 가져왔다. 1929년에 밀가루 한 부대는 1달러 18센트였는데 1932년에는 49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목화는 1파운드에 19센트에서 6.5센트로 떨어졌다.
1932년에는 1천2백만 이상이 실업상태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체 노동력의 4분의 1에 해당되었다. (오른쪽 그래프를 보라) 다른 사람들은 시간제로 일하거나 임금이 삭감되었다. 한 국가가 한 해 동안 생산하는 재화와 용역의 총합인 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 GNP)은 1929년 1천30억 달러에서 1933년에 5백60억 달러로 떨어졌다.

세계에 미친 영향
1930년대에 각 나라들 간의 국제금융과 제조업과 무역은 전 세계적으로 상호 의존적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남미의 국가들은 상품의 수출에 있어서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투자와 차관에 의존하고 있었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던 미국의 경제가 쇠퇴하자 세계 경제체제도 미국경제와 같은 방식으로 흔들리고 수축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전시의 연합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이 부채를 상환하도록 요구했다. 동시에 미국 의회는 고율의 수입관계를 유지해서 유럽 국가들이 미국 시장에 상품을 파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전쟁으로 경제가 약화되고 미국시장에 상품을 팔 기회가 별로 없게 되자 연합국들은 독일의 배상금에 수입을 의존하게 되었다.
미국의 기업들이 독일에 투자해야만 독일은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투자는 급락했다. 독일의 은행들은 파산했고 독일은 배상금 지불을 중지했고 연합국들은 미국에 대한 부채상환을 중지했다. 독일의 산업생산은 40퍼센트 감소했고 영국은 14퍼센트, 프랑스는 29퍼센트 감소했다. 유럽 국가들은 더 이상 미국 제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세계 경제의 하강 곡선이 시작됐다.

  • 그래프를 이해하기: 주식시장의 붕괴가 잇따른 경제적 재앙을 가져옴.

- 정보를 분석하기: 대략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929년부터 1933년 사이에 실업자가 되었는가?


대공황의 배경과 원인
1929년의 주식시장의 대폭락이 대공황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폭락과 대공황은 국가 경제의 저변에 깔려있는 더 깊은 문제들의 결과였다.

불안정한 경제
전반적으로 번영하는 듯이 보이던 1920년대의 경제에는 견실한 기초가 없었다. 국가의 부는 불균등하게 분배되어서 더 많은 돈이 상품을 구매하기 보다는 저축과 투자의 경향이 강한 소수의 가문의 손 안에 있었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필요나 구매능력보다 더 많이 생산했다. 농부들과 많은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활황의 혜택을 입지 못했다. 1920년대의 불균등한 번영은 경제적인 쇠퇴로부터의 빠른 회복을 불가능하게 했다.

과잉투기
1920년대에 투기꾼들은 대출을 받아서 주식을 샀고 이 주식을 담보로 더 많은 주식을 샀다. 담보는 일정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채무자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때 채권자가 부채를 변제하기 위해 몰수할 것을 동의한 것이다. 중개자들의 부채는 1928년에는 50억 달러 미만이었던 것이 1929년 9월에는 8천5백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주식시장의 붐은 실제 가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차입한 돈과 막연한 낙관주의에 근거한 것이었다.

정부의 정책
금융정책의 실수에도 책임이 있다. 1920년대에 통화량을 관리하는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는 경제 성장을 자극하기 위해 이자율을 낮췄다. 그리고 1929년에 과잉투기를 염려하여 연방준비위원회는 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화폐의 공급을 제한하였다. 그 결과로 대폭락이후 경제의 회복을 돕기에는 통화량이 너무나 부족했다.

  • 정치만평 해석하기: 이 만화는 대폭락 3주전, 바로 약세시장을 의미하는 베어마켓이 시작될 때 그려진 것이다. 베어마켓은 주식시장이 일정기간 하락세를 기록할 때 존재한다.

- 시각적인 정보를 분석하기: 만화가는 베어마켓이 월스트리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견했는가?


1과 평가
단원 이해도 평가
1.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란 무엇인가?
2. 검은 화요일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3. 대공황은 경기순환의 어떤 단계를 나타내는가?
4. 한 나라의 국민총생산의 감소를 가져오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5. 1920년대의 불안정한 경제는 어떻게 대공황에 기여했는가?

비판적인 사고와 글쓰기
6. 원인과 결과를 인식하기: 어떻게 대공황이 다른 국가들의 경제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7. 비교하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외상거래로 물건을 산다. 이런 관행은 1929년처럼 위험하지 않은가? 왜 그런가? 왜 그렇지 않은가?
8. 정보를 알리는 편지쓰기: 검은 화요일 다음날이다. 지역 은행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묘사하는 간단한 신문기사를 작성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