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증권시장 대폭락과 대공황, 1929-1933

Cefia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5장 증권시장 대폭락과 대공황 (1929-1933)

1과 주식시장 대폭락 2과 대공황의 사회적 영향 3과 대공황에서 살아남기 4과 1932년 선거

미국사 / 대통령 임기: 허버트 후버 1929-1933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1933-1945 1929 10월 29일 대폭락(the Great Crash)으로 알려진 주가의 폭락으로 투자자들은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보았고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지다. 1930 의회가 국내 산업보호를 위해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입관세인 홀리-스무트 관세(Hawley-Smoot tariff)를 통과시키다. 그 결과 세계 무역이 타격을 받다. 1931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 뉴욕에서 개관함. 1932 의회에서 연금 보너스 선지급에 대한 군인들의 요구를 거부하자 후버 대통령이 이에 항의하는 보너스 아미(Bonus Army)로 불리는 시위대를 진압할 것을 명령하다. 1932 미국인들이 “뉴딜정책”에 기대를 품고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Franklin Denano Roosevelt)를 압도적인 표차로 미국 32대 대통령으로 선출함. 1933 의회가 금주법을 철폐하는 수정헌법 21조를 통과시킴.

세계사 1929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용어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함. 1930 5개국이 참가하여 런던군축회의를 개최함. 1931 일본군이 만주를 점령함. 1932 소련의 대기근 1933 히틀러와 나치당이 독일을 장악함.

미국의 유산 - 역사단상 (My Brush with History) - 톰 플레밍(Tom Fleming)

야구장에서의 어느 오후 1920년대의 호황기와 1930년대의 불황기 모두 많은 영웅들과 유명인사들을 배출해내었다. 라디오와 같은 기술적인 발전 덕분에 이런 국민적인 영웅들은 전국에 걸쳐 미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되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라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매우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경험이었다. 아래 글에서 톰 플래밍은 그가 저 유명한 사람들 중 세 사람을 한 번에 보았던 날을 회상하고 있다. 대통령과, 다음에 대통령이 될 사람, 그리고 그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야구선수가 그들이다. 20년대와 30년대의 다른 모든 미국 소년들처럼 나는 베이브 루스를 야구 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존경했다. 내가 그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뉴욕에 다녀오시면서 아메리칸 리그의 진짜 야구공을 가져다 주셨기 때문이다. 루스가 파울을 쳤을 때 아버지는 뛰어 올라서 한 손으로 그 공을 잡으셨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곳은 “루스가 지은 집”이라고 불리는 양키 스타디움이었다. 물론 나는 베이브 루스가 경기하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내셔널 리그에 속한 시카고 컵스의 팬이었고 루스는 아메리칸 리그에 속한 뉴욕 양키스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키스의 선수들이 시카고에 올 때는 사우스 사이드의 코미스키 파크에서 같은 아메리칸 리그 소속의 화이트 삭스팀과 경기를 했다. 1932년 가을 시카고 컵스와 양키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게 되어서 베이브가 시카고 컵스의 구장인 링글리 필드에 온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내가 이 경기를 실제로 보게 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고등학교 야구부 라커룸에 있는 감독실에 몰래 숨어들어가서 오후 수업종이 울리기 전까지 감독님의 라디오로 몇 회의 경기라도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9월 어느 저녁에 아버지는 유난히도 들떠있는 표정으로 집에 오셨다. 나는 서재에 있는 게임 테이블에서 퍼즐조각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코트를 벗으셔서 일부러 책상 의자 뒤에 걸어놓으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조끼의 단추를 푸시고는 앞으로 기울여서 코트 안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셨다. 그 봉투 안에는 10월 1일 시카고 컵스와 뉴욕 양키스의 링글리필드 월드시리즈 개막전 티켓 두 장이 들어있었다. “이제 너는 베이브루스를 볼 수 있단다.”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랑하는 링글리필드는 월드시리즈를 위해 단장을 해서 빨강색, 하얀색, 파란색 깃발이 사방에 걸려있었다. 구장 밖에도 많은 관중들을 위해서 임시 관중석이 세워져있었다. 우리 자리는 경기장에서 여섯줄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좌측편 시카고 컵스 덕아웃과 3루 사이에 있었다. “저기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우리가 앉아있는 왼쪽 편 구장을 가리키면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확실히 거기에 베이브 루스가 동료들과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밤비노(bambino, 이탈리아어로 baby라는 뜻), 스윙의 황제(the Sultan of Swat), 장타의 거인(the Colossus of Clout)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6피트 2인치의 키에 215파운드의 몸집을 가진 그 베이브 루스가 말이다. 선수들이 경기장을 떠나자 아나운서가 월드 시리즈를 위해 관중석 앉아있던 후버 대통령을 소개했다. 박수소리가 흩어졌고, 나는 야유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보이스카우트였기 때문에 대통령에게는 저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뉴욕 주지사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를 소개했을 때 더 큰 박수갈채가 있었고 야유는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모두 11월에 있는 대통령 선거 운동 중에 있었다. 내가 정치적인 감각이 있었다면 바로 그때 후버 대통령이 곤경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그 해에 후버의 업적이 루스만 못 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시카고 컵스에서는 찰리 루트가 투수로 마운드에 섰다. 그는 처음 투구부터 불안정했다. 양키스의 첫 두 타자가 한명은 사구로 또 한명은 유격수 빌리 저지스의 실책으로 출루한 뒤 루스가 천천히 걸어서 타석에 들어왔다. 그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바로 그의 주특기인 높게 뜬 장타의 홈런을 중앙 관중석 쪽으로 날렸다. 시키고 컵스도 키키 카일러 같은 선수의 좋은 타격으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경기를 진정으로 지배하지는 못했다. 5회초 루스가 타석에 들어설 때 스코어는 4대 4였다. 루스가 그의 타격을 예고하다. - 우리가 삼루 쪽에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좌타자인 루스는 우리가 앉은 쪽을 향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의 모든 동작과 몸짓을 볼 수 있었다. 루트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때마다 베이브는 오른쪽 팔을 들어서 첫 스트라이크에 한 손가락을, 둘째 스트라이크에 두 손가락을 펴 보이며 그와 투수 사이의 결투의 상황을 관중석에 알려주었다. 관중들은 거칠게 반응했다. 볼 카운트가 2대2가 되었을 때 루스는 조금 뒤로 물러서서 크게 외야쪽을 오른손으로 큰 원을 그리며 가리켰다. 아버지는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애야, 저 사람이 손으로 가리키는 것 좀 봐, 저 사람이 손으로 가리키는 것 좀 봐, 그가 홈런을 예고하고 있어!” 공기도 떨리는 것 같았다. 나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파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루스는 타석으로 다시 돌아와서 루트의 다음 투구를 기다렸다. 이번 공은 무릎 높이로 들어왔고 베이브는 그 공을 큰 스윙으로 제대로 맞췄다. 관중들은 화산이 터지는 것 같은 즉각적인 탄성을 질렀다. 모든 사람들은 넘어갔다, 넘어갔다,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공은 높이 솟아서 경기장 가운데의 스코어 보드를 넘어가서 링글리필드에서 가장 멀리 쳐낸 홈런 중 하나가 되었다. 베이브는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그가 2루를 돌아서 우리 쪽으로 올 때 우리는 그의 얼굴에서 승자의 미소를 보았다. 3루를 지나자 그는 몸을 기울여서 시카고 컵스의 덕아웃을 가리켰다. 나는 그가 시카고 컵스의 벤치를 행해 뭐라고 말했는지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들었어도 무슨 뜻이었는지 다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카코 컵스의 배터리인 루트와 하트넷은 훗날 루스가 그의 타격을 예고했다거나 손을 들어 외야쪽을 가리켰다는 것을 부인했다. 내 생각에는 강력한 경쟁자였기 때문에 루스에게 이미 얻은 것 보다 더 큰 명성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나는 베이브 루스가 손으로 미리 타구의 방향을 가리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키스는 7대 5로 승리를 거뒀고 그중 4점은 베이브 루스의 타점이었다. 그때가 그 스윙의 황제의 전성기였다. 우리가 경기장을 떠날 때 큰 사이렌소리가 우리 뒤에서 울려서 우리는 무슨 일인지 보려고 경사로의 철책 쪽으로 달려갔다. 아래쪽에 시카고 시의 영접관이 탄 오픈카가 보였고 뒷좌석에 루즈벨트 주지사가 앉아있었다. 그는 만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것처럼 회색의 펠트 모자를 쓰고 권련파이프를 여유 있는 자세로 비스듬하게 물고 있었다. 그가 철책에 줄지어선 사람들을 바라볼 때 잠깐 동안 나의 눈은 그의 눈과 마주쳤다. 바로 그때 나는 새로운 스타가 더 심오한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날은 나의 인생의 타임캡슐과도 같은 날이었다. 나는 10월 1일 그 맑은 가을날의 오후에 소년기의 관심사를 지나서 더 큰 정치라는 게임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1차자료를 이해하기 1.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소개되었을 대 대중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2. 1932년에 이 반응은 왜 특히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