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원래 하나였던 것이라도 다시 하나가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1990년 이후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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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개방되던 날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래 하였던 것이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동독의 모습은 "변혁"이라고도 부르는 혁명 이후 그리고 동서독 통일 이후 어떻게 변하였을까?

새 연방공화국 동독의 인민의회는 1952년 동독에서 중앙집권 체제 하에서 해체되었던 연방주들을 1990년 10월 14일 다시 부활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동서독 베를린은 베를린주로 통합되고, 5개의 신연방주(브란덴부르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작센, 작센안할트, 튀링겐)가 탄생하였다. 12월 초에는 처음으로 전독일인들이 연방하원을 선출하였다. 기민/기사당(CDU/CSU)와 자민당(FDP)은 통일독일의 첫 연방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민당(SPD)와 민주사회주의당(PDS) 그리고 동맹 90/녹색당(Bündnis 90/Grünen) 역시 의석을 차지하였다. 헬무트 콜(CDU)는 다시 총리로 선출되었다. 새 독일연방공화국은 사실상 신생국가는 아니었다. 대외적으로는 독일을 NATO와 유럽공동체의 회원으로 인정하는 모든 종류의 협약과 조약들 또는 프랑스와 체결한 우호조약 등과 같이 독일이 다른 국가와 체결한 양자조약은 그대로 유효했다. 내부적으로는 기존의 독일의 헌법 즉, 기본법이 그대로 유효했고, 국가의 상징과 국가, 국기 등이 그대로 유효했다. 대외적으로 그리고 내부적으로 새 연방공화국은 동서독이 통합된 형태를 갖추었으나, 경제적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나뉘어져 있었다. 왜냐하면 구 동독 지역에 생겨난 신연방주에는 극복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M1 독일의 실업률 위 그래프는 2007년 즉, 통일 후 17년이 지난 시점에도 5개의 동독 연방주에서 실업률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독지역을 떠나 독일 남부 지역으로 이동한다.


(오른쪽 캐리커처) .. 그리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M2 "옛날 옛적에…" (캐리커처, 1991년) 구 동독 지역 주민들은 경제체제의 전환으로 인해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p. 55 일자리, 주택 그리고 환경 계획경제체제에서 경쟁을 토대로 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은 많은 신연방주 사람들 개인에게 피해를 주었다. 수십 만 개의 기업이 민영화 즉, 매각되었고 아니면 문을 닫았다. 갑작스러운 독일마르크(DM)의 도입으로 대부분의 기업은 판매 시장을 상실하였다. 왜냐하면 주요 판매 시장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은 더 이상 물건 값을 지불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급격히 치솟고 지속된 실업률과 독일 서부나 남부 지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또한 큰 문제였다. 여기에 열악한 주거환경이나 예상보다 심각했던 환경오염 문제도 있었다. 주거환경과 자연파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재정이 필요했고 구 연방주들의 지원이 불가피했다. 매년 수십 억 마르크/유로 단위의 지원금 제공, 국내외 투자 유치를 위한 정책 등과 같은 연방정부의 지원조치들 덕분에 많은 문제점들이 개선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노력들은 구 연방주 주민들의 희생 즉, 세금과 매월 납부하는 연대세 그리고 일부 분야에서의 고통스러운 감축조치를 통해 가능했다. 그래서 많은 서독 출신의 사람들은 "오씨(Ossi)"들 사이에서 커진 불만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수의 오씨들은 "베씨(Wessi)"들이 이기적이며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독일 사회에는 새로운 장벽 즉, "사람들의 머리 속 장벽"이 생겨났다. 이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독일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미래의 과제가 되었다.

외국인배척 1992년 여름과 가을에는 외국인배척주의가 가시화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극우주의 청년들이 로스톡에 있는 망명신청자들의 숙소를 공격하였던 것이다. 이 청년들은 길거리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하였다. 행패를 부리는 청년들의 편을 들어주는 구경꾼들도 적지 않았다. 극우주의자들의 공격행위를 통해 총 17명의 중상자가 발생하고, 터키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에서 발생한 방화사건으로 2명의 여성과 10세 소녀가 희생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경악하였고 외국인 혐오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1992년 12월 6일 40만 명 이상의 독일인이 촛불을 들고 뮌헨에서 행진을 하며 외국인배척주의와 폭력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독일의 과거와 현재 동서독이 하나되는 과정은 동독의 과거사 청산 없이는 불가능했다. 슈타지-문서의 공개를 통해 그 동안 심증만 있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친구라 믿었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수천 건의 밀고, 서독 정치권을 조종하려고 했던 시도들이 알려졌다. 금지된 약물을 스포츠 분야에서 사용했던 사실, 베를린 장벽에서 근무한 사수들과 동독에서 민간인 대상 사격에 대해 책임이 있는 에곤 크렌츠(Egon Krenz) 같은 정치인에 대한 재판 등은 독일의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중요한 문제로 논의되었다. 구 서독과 구 동독은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이 국가는 기본법의 가치와 내용을 준수하는 국가다. 이런 의미에서 1989/90년 이전 시기를 "헌법애국주의(Verfassungspatriotismus)" 시대라 부른다. 동서독 통일 이후 이 헌법애국주의에 국가주의적 성격이 더해졌다. 독일연방공화국은 독일민족의 국가가 되었다. "세계의 손님을 우리의 친구로"라는 슬로건 하에 2006년 독일에서 축구월드컵이 개최되었다. 2006 월드컵은 의외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독일인들은 세계인들을 향해 개방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독일 국가대표의 성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4주 동안 독일의 국기로 독일의 길거리는 물들였다. 세계는 놀랐고 독일인들이 통일 이후 통일독일에 대해 새로운 소속감을 갖게 되었으며 전혀 위축되지 않고 즐거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p. 56 독일, 통일 되어야 할 조국(Deutschland, einig Vaterland) Bundes Rep. 서독 독일의 4번째 제국은 싫다(Kein 4. Reich)! DDR 동독 M3 "분단된 독일" (호르스트 하이칭거(Horst Haitzinger)의 캐리커처, 1989년) 캐리커처의 내용을 설명하라. 이 캐리커처는 미래의 어떠한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는가?


M4 신연방주 4a 향후 몇 년 드레스덴 일간지 "우니온(Die Union)"의 한 기자가 1991년 3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인기 있는 공포영화, 재미있는 영화들보다 우리 조국에 관한 소식들이 더 흥미진진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주제는 바로 "독일의 통일"인데, 이 사건의 해피앤드는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어져 버렸다. 다행히 해피앤드는 긴 터널의 끝에, 아직 우리 눈에 보이는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 터널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길고, 울퉁불퉁하고, 어두워진 듯하다. 그리고 "새 독일인"들 만이 이 터널을 지날 수 있다. 다른 이들, "예전 독일인"들은 터널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비웃으며 그들을 비난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주 우리 눈으로 확인되었다. 만스펠트 출신의 45세의 동지가 카메라 앞에 서서 더 이상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신의 손을 보여준다. 구리 광산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 이 남자는 27년이나 일했지만 재산을 모으지 못했다. 그가 사는 집은 초라하고 작고 화장실은 작은 닭장 옆에 있다. 이 남자의 자랑은 자신의 직업이었다. 이제 그는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남자 옆에는 한 장관이 서서 잔센안할트가 세계정상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며 경제적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파산이 난 광산에서 일했던 남자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나도 참여할 수 있는 건가요?" 또는 할레 출신으로 시위대열에 있던 한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다. "제가 왜 거리로 나갔냐고요? 직업을 잃었거든요. 애가 둘인데 아직 학교를 가야 하고, 살길이 막막하지 않았겠어요?" 이 두 사람 모두 생산적이지 못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이 문을 다는 것은 옳은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당장 향후 몇 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Gisela Buhrig, in "Die Union", 1999년 3월 26일, p. 14

4b 경제성장 - 그 대가는 동독인들이 부담? 한 남부 독일 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냈다. 독일 통일이 가져다 준 이익은 오래 전부터 명백히 드러났다. 독일통일은 구 서독의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수 개월 째 가동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공장들, 각종 소비제의 배송시간 연장, 기업들이 올리는 수익이 이 사실을 입증해준다. 5.6%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던 1976년이 유일하게 통일 이후 보다 성장률이 높았던 때였다. 통일 후 기록한 4.6%의 기록은 그러나 14년전 달성한 높은 성장률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 "신연방주라는 새 구매시장"이 생긴 덕에 달성된 것이었다. 구 동독지역은 새로운 판매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독기업들이 기록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완전히 망해버린 무능한 구 동독 기업들이었다. 결과적으로 통일 이후 서독에서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 5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는 동전의 한쪽 면일 뿐이었다. 새로 생겨날 일자리의 몇 배 이상의 일자리가 동독 지역에서 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서독기업들이 동독에서 물건을 팔기만 하고, 동독에서 생산을 하지 않는 이상 이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Petra Sigge: Auf Kosten des Ostens, in "Augsburger Allgemeine Zeitung", 1991년 1월 12일

4c 국내 이동 베를린 인구•개발 연구소가 2006년 실시한 한 조사 결과 다음과 같다: 신연방주 내 많은 곳들의 상황이 심각하다. 15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동독 지역을 떠나고 있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고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이의 부족은 이들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을 야기시킨 원인 중 하나다. (…) 지자체들은 많은 경우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나치게 큰 규모의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한 지출은 커 어려움을 겪는다. (…) 신연방주에서 안정적인 지역들은 주요 대도시다. 베를린, 드레스덴, 그리고 튀링겐의 주요 도시 예나, 바이마르, 에어푸르트, 아젠아흐 등은 통일 이후 상당히 안정화 되었다고 평가된다.


p. 57 이들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 현상이 중단되었다.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예나 또는 포츠담 같은 도시들은 오히려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출처: Franziska Medicus, Reiner Klingholz, Steffen Kröhnert: Die demographische Lage der Nation. Wie zukunftsfähig sind Deutschlands Regionen? München 2006, p. 12

4d 신연방주에서의 성공사례 2000년 10월 4일 Süddeutsche Zeitung지가 드레스덴 젬퍼오퍼(Semperoper) 극장에서 개최된 독일통일 10주년 행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메지에르(Maizière)에 따르면 동독 주민들이 변혁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물론 그 과정이라는 것은 엄청난 변화를 의미했다. 폐쇄되어 있었던 동독은 이제 현대적인 하이테크입지가 되었다. "동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찾았다." 메지에르 전 총리는 서독의 재건 지원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하였다. "우리는 홀로 버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독일의 통일을 공동으로 이루어낸 성과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행사에 참석했던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모든 신연방주 그리고 베를린은 10년 만에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였다. 모두의 용기와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을 성과다. 지금도 모두의 에너지가 요구된다. (…) 많은 과제가 산재해 있었음에도 달성된 이 모든 성과들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Jens Schneider: Chirac lobt Kohl für Verdienste um die Einheit. In: Süddeutsche Zeitung. 2000년 10월 4일


(굿바이 레닌 포스터)


M5 영화 속 독일 TV와 극장에서는 곧 구동독에서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이 상영되었다. 신 연방주에서 구동독 주민들이 많은 어려움들을 직면하게 되자,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예전 동독에서의 그렇게 끔직했던가?" 그리고 동독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오스탈기(Ostalgie)"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극장에는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은 두 편의 영화가 등장했다. 아픈 어머니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동독의 몰락을 숨기고 동독이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연기했던 한 젊은이에 관한 영화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이 그 중 하나다. 나머지 하는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으로 이 작품은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해외영화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슈타지-간부가 동독에서 한 작가를 감시하는 중에 겪게 되는 내적 변화를 다룬 작품이다.


질문과 심화 탐구 제안 (1) 경제적, 사회적 문제와 성과를 키워드로 정리해 표를 만들어라. (VT, M1, M2, M4a-4c, M5) (2)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원래 하나였던 것이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이 표현에 대해 논하라. (VT, M4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