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점진적 개방 및 시장경제 전환 모색기: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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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제 2차 오일쇼크 이후 물가폭등과 불황, 정치적 불안 속에서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이전 성장위주의 정책과 결별,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기조를 채택하고, 재정정책 또한 재정적자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던 방식을 흑자재정 기조로 전환하고 80년대 중반까지 통화량 증가율을 크게 낮추는 (1982년 21.3퍼센트였던 통화증가율을 84년에는 7.2퍼센트까지 낮추는) 방식으로 전환해서 물가안정에 주력합니다. 그리고 1970년대 말 중화학공업의 과잉투자로 인한 채산성 악화와 투자효율 저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및 산업합리화 정책이 실시됩니다. 경제운용 방식도 정부주도형에서 민간주도형으로 전환함과 아울러 개방화, 자율화, 경쟁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시도하지만 산업합리화 정책에서 보듯이 정부 주도의 경제운영은 당분간 지속되고 자율화 과정은 모색과 형식적 시도의 단계에 머무르게 됩니다. 금융시장 또한 은행들이 민영화되는 등 시장경제를 통한 금융의 자율화를 모색하고, 대외적으로는 자본거래의 자유화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정책적인 요인들과 함께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라 엔화를 비롯한 마르크와, 프랑화, 파운드화의 가치가 급상승하는 등 국제환경이 변화합니다. 이로 인해 선진국 시장에 대한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일시에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원자재가격과 국제금리도 낮아지는 소위 3저 현상으로 우리경제에 전례없는 최적의 조건이 조성됩니다. 그 결과 수출이 기록적으로 증가해서 1986년 사상 처음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후 1989년까지 4년 동안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기도 합니다.

경제구조의 측면에서 본다면, 1980년대는 한국경제의 구조가 다시한번 변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의 경제성장이 자본재의 집중투자를 통한 양적성장이었다고 한다면 8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단순한 생산요소의 증가보다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인적자본과 연구개발투자가 빠르게 증가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성장패턴의 변화가 경제전반적으로 균등하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참여하면서 성장패턴의 변화를 주도한 수출 대기업과 대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산업은 빠르게 고도화 되며 생산성을 높였지만, 이에 뒤쳐진 다수의 중소기업과 인건비가 싼 후발공업국과의 경쟁에 직면한 산업은 빠르게 낙후되어 갔으며, 중화학공업화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생산성 격차는 이후 한국경제의 큰 골치거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