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911사태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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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라는 현상이 긍정적으로만 평가되지 않는 것은 앞 장에서도 언급되었었다. 세계를 두 개의 이데올로기 진영으로 나누던 냉전의 종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갈등도 생겨났다. 유고슬라비아나 소비에트연방 등과 같은 과거 거대한 국가를 형성하던 지역에서는 부분적으로 새로이 싹트기 시작한 국가주의로 인해 발생한 긴장과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과거 수십 년 동안 미국을 모범으로 삼고 진행된 세계의 "서구화" 움직임에 반대하자는 분위기가 세계 곳곳에서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993년 미국의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말했던 것 같은 "문명충돌"이 일어난다고 표현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듯 하다. 왜냐하면 서로 상이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사회적 조건을 가진 나들을 (예를 들어 서방세계와 이슬람세계) 서로 적대시 하는 두 개의 문화권으로 분류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로 실질적으로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서양 시설물에 대해서 테러공격이 일어나고 이를 주민들이 반가워하는 경우도 있다. 서구의 선진산업국의 반대편에 위치한 실패한 나라라는 느낌 때문에 신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이슬람교도들이 점점 더 많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인 근본주의자들의 테러행위는 199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난 반면 전통적인 두 국가 간의 전쟁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테러리스트들은 현대적인 매체(예를 들어 인터넷)를 이용하며 전 세계에 흩어져 포착하기 어려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세계 테러와의 전쟁이 21세기 초 인류가 극복해야 할 대표적인 과제라고 말한다. 911사태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은 테러에 대한 전세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테러조직인 알카에다가 4대의 여객기를 납치하였다. 그 중 2대를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로 향하게 하였고, 1대는 워싱턴 소재 미국국방부 건물인 팬타곤으로 향하게 해 추락시켰고, 마지막 1대는 피츠버그 인근 외진 곳에서 추락하였다. 911사태의 결과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약 3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희생자들을 향해 전세계가 연대와 위로를 보냈다. 전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고 희생자를 추모하였다. 수 많은 국가들이 장례절차 지원, 구호 지원, 물자제공으로 현장을 지원하였다. "911"(9월 11일을 의미)사태는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의 지휘 하에 미국이 단행할 "테러와의 전쟁"의 발단사건이 되었다.


M1 201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테러사건

p. 86 NATO는 설립 이래 최초로 동맹사태를 선포하고 미국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정부는 그러나 우선 단독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2011년 가을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하고 당시 아프카니스탄을 지배하던 탈레반을 추방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은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빈라덴을 지지하고 숨겨주고 있는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설치되었다. 그 사이 아프카니스탄에는 (독일군도 포함한)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파병되어, 재건과 민주화를 돕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는 사담후세인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이라크를 공격하고 2003년 당시 이라크를 지배하고 있던 독재자 사담후세인의 정부를 무너뜨렸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사담후세인의 정부가 알카에다와 관련이 있고 대량살상무기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독일, 프랑스, 러시 등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은 이러한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거리를 두었다. 오늘날에는 미국이 내세운 명분이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 상태다. 물론 사담후세인이 폭군이자 자기 국민들을 대량학살하는 독재자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중동 지역의 안정화를 위해 이라크 전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이 지역의 불안정을 조장했다. 이라크에 자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결과적으로 주변 국가들 역시 안정화시키려는 미국의 바람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 이후 수 천 명의 미국 파병군사들과 이라크의 민간들이 공습으로 인해 희생되었다. 이라크는 내전으로 몰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과연 군사적 방법을 이용한 테러와의 전쟁이 성과가 있기는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M2 알카에다의 공격 알카에다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 사건들, 2001년 이후 줄어들지 않았다.


p. 87 M3 9월 11일 아침 일어난 일들 08:15 UA11편 항공기가 납치범에 대해 납치된다. 동시에 UA175편 항공기도 납치된다. 08:38 북아메리카항공우주방위군(NORAD)에 관련 정보가 전달된다. 08:45 UA175편 항공기가 납치된다. 08:46 첫 번째 비행기(UA11)가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하였다. 충돌이 사고 일 것이라 추정한다. 남쪽 건물 사람들에게 침착하게 행동하며, 자리를 지키라는 안내방송이 나간다. 08:55 UA77편 항공기가 납치되었다. 09:03 UA175편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건물과 충돌한다. 이로써 이것이 의도가 있는 테러였음을 알 수 있다. 여객기 운항이 중단되고 뉴욕을 수호하기 위해 요격기가 투입되었다. 09:37 3번째 납치된 항공기가 미국 국방부 건물(팬타곤)으로 떨어진다. 09:45 격추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항해중인 모든 항공기는 가까운 공항에 비상착륙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백악관이나, 워싱턴의 의사당건물이나 미대통령의 전용별장이 캠프 데이비드를 목표물로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4번 째 항공기 UA93편도 이미 납치범의 손에 넘어간 상태다. 09:59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건물이 무너진다. 10:03 UA93편 항공기가 (아마도 납치범과 승객들 사이의 몸싸움 끝에) 피츠버그 인근에서 추락한다. 10:28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건물이 무너진다.


M4 테러를 위한 성명 "유태인과 십자군 전사들에 대항하기 위한 세계 이슬람 지하드"의 설립에 관한 코뮈니케, 빈라덴 등이 서명함 (1998): 미국은 이슬람의 주요 성지인 아라비아 반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곳의 재산을 탈취하며 이슬람 이웃국가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그곳을 공격선봉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 미국인들이 일삼고 있는 이 모든 범행과 불미스러운 일들은 신과 선지자와 이슬람교에 대한 도전이며 선전포고다. (…)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알라신의 계명에 입각하여 모든 이슬람교도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파트와(=종교적 권위로 내리는 판결)을 선포한다. "미국인들과 그들이 민간 및 군사 동맹들을 죽이는 것은 모든 이슬람교도의 의무다. (…) 우리는 이슬람교의 울레마(=종교적 지식인)들, 이슬람교의 귀족 지도자들, 청소년과 충성스러운 군인들 모두 악마에 대항하기 위해 싸울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 Dictionnaire mondial de l'islamisme, Paris 2002, p. 126 (저자가 번역함)


M5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시위 오사마빈라덴의 추종자들이 미국 국기를 불태운다.


질문과 심화 탐구 제안 (1) 911사태가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하라. (VT, M1, M3, M5) (2) M2에 설명된 사건들에 대해 자세한 자료를 검색하라. 학급에서 짧은 발표를 하라. (3) 이슬람교의 성명서를 작성한 저자가 제시한 문제와 요구사항을 정리하라. (M4) (4) "지하드"라는 개념은 "불신자"들에 대한 싸움인 "성전"을 이야기 할 때 종종 언급되곤 한다. 이 개념의 보다 정확한 개념에 대해 알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