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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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여년간 한국의 경제발전과정은 국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서로 다른 경제이론들이 지속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이었고, 60년대 실행된 정책들과 70년대 중화학공업화 정책, 80년대 이후 경제개방과 금융개혁 정책으로의 변화과정 또한 일관된 정책기조였다기 보다는 세가지 견해가 상충하면서 진화하는 과정의 결과물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특히 6,70년대 경제정책들 중 일부는 독재국가가 아닌 민주국가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개인간의 합법적인 계약이나 개인의 인권, 재산권 및 노동자들의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침해하는 초법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국가의 특혜적인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급성장하는 반면, 지원을 받지 못한 다른 기업들은 정체되거나 도산하는 등 소비자가 아닌 국가가 기업의 성쇠에 지나치게 영향을 미치면서 이에 대한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70년대 이후,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시민권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국가가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정도와 방식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80년대 독재가 종식되고 민주주의적 요구가 정치, 사회의 각 부분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지속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한국경제가 국제무역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커졌고 국제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재벌기업들의 입김이 강해짐과 동시에 미국을 위시한 교역상대국들의 한국시장 개방압력이 세지면서, 금융시장을 필두로 대대적인 민영화, 규제완화가 시행되었습니다. 이후 1997년 겨울에 시작된 소위 IMF 위기와 그 극복과정까지는 적절한 정부개입의 범위와 방식에 대한 각 사회분파들의 이해가 충돌하고, 이전까지 정부의 직간접 통제 하에 있었던 부분이 민영화되면서 겪는 어려움과 시행착오가 거듭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성장율과 출산율이 둔화되고 고성장기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실업과 노령화에 따른 복지수요가 증대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이 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시장을 왜곡하고 독자적인 투자결정까지 한 적극적인 산업정책의 가장 성공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성장과 함께 국가와 시장간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국가의 개입없이 민간주도적인 경제모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국가의 오랜 통제속에 준공공기관처럼 운용되었던 은행들은 민영화 된 이후에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고 외환위기 과정에서 많은 수가 구조조정이나 합병을 통해 사라지고, 그 이후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지속적인 인적 통제와 간섭 속에서 경쟁력 있는 부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금융억압을 통해 재벌을 지원하고 통제하던 방식이 재벌의 해외시장 진출과 금융시장 개방으로 약화된 반면 민주화 이후에도 서구 선진국처럼 거대 기업들의 독과점적 횡포를 규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지 못했습니다. 시민운동의 성장 또한 국가의 역할이 축소된 부분을 메워주지 못하면서, 재벌의 성장이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보다는 기회의 균등한 배분이 억제되고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로 대표되는 소득과 일자리의 양극화, 낮은 출산율로 인해 예상되는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 등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를 우리도 같이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한국 경제는 위기에서 언제나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게 회복했고 불리한 여건에서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을 이뤄내는 저력을 보여왔습니다. 개도국의 문제들을 유례없이 성공적으로 풀어낸 한국이 이 새로운 도전들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