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2.1.1 인구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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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지리: 2. 인구와 거주 공간 > 1. 인구 > 1) 인구의 성장


1) 인구의 성장

인구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은 인구 규모이며, 일반적으로 인구 규모의 변동을 인구 성장(population growth)이라고 한다. 이 때 인구 성장은 일정 기간 동안 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발생한 인구의 양적인 변화를 말하며, 인구의 증가뿐 아니라 인구가 감소되는 것도 포함한다. 인구 성장은 출생과 사망에 의한 자연적 증감과 인구 이동에 의한 사회적 증감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구 성장은 경제적 수준이나 의료 및 위생 환경, 종교와 윤리관, 사회적 관습, 인구 정책 등의 영향으로 국가나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인구 성장을 비롯한 다양한 인구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인구 통계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1925년부터 현대적인 센서스(Census)가 5년 마다 실시되었다. 그 이전에도 고대부터 세금이나 역을 부과하기 위하여 인구조사가 이루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매우 적으며, 그 기록도 단편적이다. 조선시대(1392~1910년)의 경우, 인구조사의 결과물이 남아 있으며, 지리지, 지도, 역사서 등에도 인구 기록이 기재되어 있다

(1) 고대~조선시대까지의 인구 성장

역사서와 지리지 등의 기록을 통해, 서기 원년 경 한반도의 인구는 약 300만 명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918~1392년)에는 정기적으로 인구조사가 이루어졌으나, 현존하는 자료가 거의 없다. 대체로 고려 초기인 10세기에는 약 700만 명이 살고 있었고, 고려 말기인 14세기에는 학자에 따라 약 550만 명에서 1,0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인구조사 자료는 비교적 많이 남아있다. 이들 자료를 통해 대체적인 경향을 파악해 보면,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는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시기의 인구 증가는 농업 생산성의 향상과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국은 16세기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었다. 일본이 한반도에 침략한 임진왜란(1592~1598년)과 중국 청나라가 침입한 병자호란(1636~1637년)이 그것으로, 두 전쟁의 직접적 간접적 영향으로 인하여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그 이후 19세기까지 인구 증가와 감소가 번갈아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는 전반적으로 인구가 증가하였으나, 자연재해로 인한 흉년과 기근, 전염병 등이 발생하거나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면 일정 기간 동안 사망률이 높아져 인구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리하면, 전형적인 농업사회였던 조선시대는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높아 인구의 증가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안정되어 있었다. 1,000명의 인구 당, 일정한 기간(보통 1년) 동안 몇 명이 출생하였는가를 나타내는 지수인 조출생률은 35-45 정도의 높은 수준에서 안정되어 있었으며, 역시 1,000명의 인구 당 일정한 기간 동안 몇 명이 사망하였는가를 나타내는 지수인 조사망률도 30-35 정도로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2) 일제강점기(1910~1045년)의 인구 성장

한국의 인구는 일제강점기에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19세기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서양의학과 서양식 의료시설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보건환경이 향상되면서 1920년대부터 사망률은 떨어지기 시작하였으나, 출생률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망률의 감소와 출생률의 증가는 인구의 급속한 자연증가를 가져왔다. 1915년의 0.4%에 불과했던 자연증가율이 1935년 이후에는 연평균 2.0%를 상회하게 된다. 이에 따라 1910년 약 1,743만 명이던 총인구는 1930년 약 2,044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1944년 인구조사 결과, 한국의 총인구는 2,512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34년 간 약 770만 명의 인구가 증가된 셈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약 330만 명이 외국으로 이주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34년간의 인구증가는 약 1,100만 명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급격한 인구증가는 토지에 대한 인구의 압력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특히 농촌지역은 인구의 증가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여기에 일제의 수탈정책이 더해지면서 농촌의 경제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었고, 대규모의 이농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3) 해방(1945년) 이후 현재까지의 인구 성장

1945년의 해방과 뒤이은 남북의 분단, 한국전쟁(1950~1953년) 등은 인구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48년의 남북 분단 이후에는 북한의 자료가 매우 제한적이며 신뢰성도 낮기 때문에 인구 상황은 남한에 한정하여 살펴 볼 수밖에 없다. 1949년 남한의 인구는 20,166,756명이었다. 그 후 한국전쟁 동안 많은 북한 주민이 남한으로 이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인한 인명 손실과 경기도와 황해도의 인구가 조밀한 지역이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약 130만 명의 인구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휴전이 성립되고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1960년에는 해방 직전의 남북한을 합친 전국 인구와 거의 같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인구가 가장 급증한 시기는 1955년부터 1960년까지로 인구의 사회적 증가가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연평균 3%라는 높은 인구증가율을 기록하여 매년 70만 명 씩 인구가 늘어났다. 이와 같은 인구 증가는 전쟁 후의 출산붐(baby boom)에 의한 것이었다. 새로운 의약품인 항생물질과 의료시설의 보급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도 이러한 인구 증가에 상당히 기여하였다.

표2-1. 해방이후 남한의 인구 출처: 국가통계포털(http://kosis.kr/)
연도 인도 성비 인구밀도(인/km2)
1949 20,166,756 100.1 204.9
1955 21,502,386 100.1 218.4
1960 24,989,241 100.8 253.9
1966 29,159,640 101.4 296.4
1970 30,882,386 100.8 320.4
1975 34,706,620 101.3 351.1
1980 37,436,315 100.5 378.8
1985 40,448,486 100.2 408.8
1990 43,410,899 100.7 437.7
1995 44,608,726 100.7 449.4
2000 46,136,101 100.7 463.9
2005 47,278,951 99.5 474.5
2010 48,580,293 98.7 485.6
그림 2-1. 인구 경향(1949~2010)

급격한 인구증가는 196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1960~1966년 동안 인구는 연평균 2.6%씩 증가하였고, 1967년에는 인구가 3,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정부는 높아지는 인구 압력을 줄이기 위해 인구 억제정책을 수립하고, 그 일환으로 1962년부터 가족계획사업을 시작하였다. 가족계획사업은 정부의 주도하에 매우 강력하게 추진되었으며, 이에 따라 출생률이 저하되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는 연간 인구증가가 60만 명 이하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출생률의 저하와 함께 사망률도 상당히 감소하였다. 이러한 사망률의 감소는 경제발전으로 인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보건 및 의료시설이 확충된 결과이다. 총인구는 1984년에 4,000만 명을 넘어섰고, 2010년 인구센서스에서 48,580,293명을 기록하였다. 현재 남한은 사망률의 점진적인 감소와 출생률의 급격한 저하로 인구 성장이 정체된 상태이다. 다산다사형에서 소산소사형에 이르는 인구 변천(demographic transition)이 서구선진국에서는 150~200년이 걸린 데 비해, 남한은 불과 60여 년 만에 이루어지면서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그림 2-2. 조출생률, 조사망률, 인구 자연증가율의 경향 (1970–2010)

영문

1) Population Grow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