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2.2.2 촌락의 형태와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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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촌락의 형태와 구조

촌락은 지역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인간이 창조한 하나의 계획물이다. 그러므로 촌락은 주민들의 특성을 의미하는 공간적 형태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촌락의 형태와 구조는 촌락이 입지하고 있는 장소의 자연환경, 역사적 배경, 사회 · 경제적 조건, 주민들의 가치관과 생활양식 등에 따라 달라진다.

(1) 촌락의 형태

촌락의 형태는 가옥의 밀집도에 의한 집촌(clustered rural settlement)과 산촌(dispersed rural settlement)으로 나누어지며, 집촌은 다시 그 가로망의 조직과 마을의 기하학적 형태에 따라 괴촌(compact village), 열촌(row village), 가촌(street village) 등으로 구분한다.

한국의 촌락은 집촌이 대부분인데, 집촌의 형성 원인으로는 먼저 지형적 원인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의 촌락은 주로 골짜기나 구릉지에 들어서 있는데 이러한 지역은 평지에 비해 가옥을 지을 수 있는 대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가옥들이 밀집하게 되었다. 또한 홍수를 피하면서도 생활용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다. 여기에 덧붙여 촌락입지의 선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풍수지리사상의 이른바 ‘명당’이라는 장소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한정된 장소에 가옥들이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공동 작업이 필요한 벼농사 중심의 농경문화, 그리고 작은 규모의 경지를 분산하여 소유하고 있는 토지소유형태도 집촌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가옥이 경지 옆에, 또는 가운데 입지함으로서 시간비용의 절약이나 노동의 효율화 등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가옥의 분산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한국의 촌락 중에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동족마을이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는 점도 집촌을 이루게 한 원인이 되었다. 끝으로, 시간경과와 더불어 역력사가 지속되면 집촌이 더욱 조장된다. 다시 말해서 성립의 역사가 장구한 곳에는 집촌이, 성립의 역사가 짧은 촌락은 산촌인 경우가 많다.

그림 2-10. 한국의 집촌(전북 무주군)

이에 비해 한국에서 산촌은 강원도의 태백산지, 충청남도의 태안반도, 제주도의 과수원 지역 등 매우 한정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산촌이 나타나는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촌락의 역사가 짧을 뿐 아니라 밭농사 위주의 농업이 이루어져 왔다.

한편 한국의 촌락은 기하학적 형태에서 대부분 불규칙한 괴촌을 이루고 있다. 전형적인 괴촌은 가옥들이 담이나 울타리를 경계로 밀집하여 붙어 있고, 가옥들 사이의 골목길도 좁고 반듯하지 않다. 가옥은 작아도 마당은 넓은 편이다. 이와 같은 괴촌이 형성된 이유는 오랜 세월에 걸쳐 땅의 생김새에 맞추어 가옥이 한 채씩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촌락들은 모두 주변의 지형 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열촌은 산기슭, 해안선 등 자연지물과 도로, 수로 등 인공구조물을 따라 열을 지어 가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도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도로를 따라 병렬해 있는 촌락을 가촌이라 한다. 한국의 촌락에서 열촌은 많지 않다. 계획적으로 조성된 간척지의 촌락이나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마을 중 일부에서 열촌을 볼 수 있다.

도로변에 입지하면서 상업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가촌은 다른 나라에 비해 발달이 탁월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상업을 경시하였고, 도로의 관리를 소홀히 하였으며, 사람들도 노변에 거주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의 사람들은 도로를 전염병과 잡귀의 통로이며, 미풍양속을 해치는 부도덕한 것들이 전파되는 길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상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부터 가촌이 형성도기 시작하였다.

(2) 촌락의 구조

촌락의 구조는 마을에 따라 다양하므로 일반화하기 어렵다. 다만 한국 마을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마을의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외부세계에서 마을로 들어올 때에 계류를 건너거나 고개를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배산임수 등 마을의 입지조건 때문에 자연적으로 진입로가 계류와 고개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마을의 입지과정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진입로가 이들을 통과하도록 조성한 경우도 적지 않다. 즉 계류나 고갯마루는 통행인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함으로써 신성한 장소인 마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적인 장소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마을의 입구에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요소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러한 요소들에는 한국 사람들의 사고와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토속신앙, 풍수지리사상과 유교사상이 융화되어 있었다. 풍수적으로는 명당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고 머물도록 하며, 토속신앙의 측면에서 마을 밖에서 들어오는 재액을 차단하는 보이지 않는 문 역할을 하는 돌무지, 솟대, 장승, 독립된 노거수(老巨樹: 흔히 당산목이라 부른다)나 숲 등과, 유교적으로는 마을 주민들에게 충효사상을 고취시키고 외부인에게 마을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설치한 효자비, 열녀비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돌무지, 서낭당, 당산목(堂山木) 등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물들로 마을 주민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기도 하였다. 마을에 따라서 이러한 상징적인 경관요소들은 그 구성이 조금씩 다르며, 하나의 요소만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두 개 이상의 요소들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이중에서도 한국 전통마을의 동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당산목이나 숲으로, 이들은 상징적인 의미 뿐 아니라 주민들의 휴식, 집회, 놀이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그림 2-11. 장승(경기도 광주시)

마을의 내부를 살펴보면, 먼저 마을의 중심이나 가장 높고 양지바른 곳에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우뚝한 집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신분상 또는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주민이 풍수나 지리적으로 제일 좋은 곳을 차지하기 때문이며, 같은 집안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족마을일 경우에는 이러한 곳에 대개 종손이 사는 종가(宗家)가 들어서 있다. 반면 신분상으로나 경제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주민들의 집들은 마을의 주변부와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자리 잡게 되므로 과거에는 경관 상 이 두 집단 간의 구분이 가능하였다.

마을 내부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간이 존재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우물이었다. 마을의 식수원인 우물은 마을의 터를 잡을 때부터 중요시되었으므로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경우도 적지 않고, 이에 따라 우물이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예가 많다. 그리고 우물은 여성들의 중요한 정보교환장소로 이용되었다.

그림 2-12. 정자(전남 담양군)

한편 동족마을에는 사우(祠宇), 정자, 서당 등 외관상 두드러지는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사우는 충절과 효행, 학문 등으로 가문을 빛낸 선조를 제향하는 공간으로 마을 내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자는 보통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계류 변이나 숲 속 등 경치가 수려하고 조용한 곳에 들어서 있는데 공부와 휴식의 장소였다. 서당은 문중의 자제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이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실질적인 기능들은 수행하기도 했지만, 외부인에게 마을의 위세와 가문의 권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한국의 전통마을은 일반적으로 산이나 언덕을 등지고 들어서 있다. 이렇게 마을 뒤로 이어지는 산이나 언덕의 양지바른 곳에는 한국 산의 모습을 빼 닮은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전통마을의 경관은 1960년대 이후 도시화 · 산업화의 영향에 의해 상당한 변화를 겪였다. 특히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전통적인 경관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을 진입로와 안길이 확장되고 직선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동구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경관들이 훼손되고, 대신 마을회관, 공동창고, 경로당 등 새로운 경관요소들이 건립되었다. 특히 동족마을의 경우, 이촌향도현상으로 인한 급속한 인구감소와 주민들의 가치관 변화로 동족결합력이 많이 약화되면서 종가와 사우, 정자 등 동족의 권위를 자랑하는 공간들이 기능을 상실하거나 관리 소홀로 건축물 자체가 황폐화된 곳도 많다.

영문

2) Form and structure of rural vill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