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3.3.1 주요 공업과 공업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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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지리: III. 생산과 소비의 공간 > 3. 공업 > 1) 주요 공업과 공업지역

1) 주요 공업과 공업지역

한국의 공업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정부는 수출 진흥을 목표로 지원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정부로부터 지원은 성과를 내게 되며, 1970년대부터 수입대체산업에서 수출 지향의 중공업화 정책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게 된다. 이 기간이 자본재의 집중투자로 양적 성장을 이룬 시기라면 1980년대는 단순한 생산 요소의 증가보다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인적 자본과 연구개발 투자가 빠르게 증가한 시기이다. 이 시기 동안 급성장한 기업들은 이후 한국 경제에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제공하게 된다.

한국의 산업은 먼저 건설 분야에서 대형 기업체와 거대 프로젝트 수행 능력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후 철강, 자동차, 조선 등의 중공업 분야가 성장하였으며, 전자 산업도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건설 산업은 1960-70년대 초 제1차 경제개발계획(1962-66)에서 전력이나 석탄과 같은 에너지원을 확보하고, 기간산업의 확충,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통해 경제개발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며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정유공장, 시멘트 공장, 화력발전소, 한강교, 경인복선, 수력발전소와 다목적 댐 등 대규모 토목 사업이 시행되었다. 제2차 경제개발계획(1966-71)은 ‘공업단지개발법‘의 제정으로 구미, 창원, 포항, 반월 등지에 공업단지가 조성되었다. 또한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국토개발의 대규모 사업들을 통해 국내 건설 사업은 괄목할 만한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과 경험은 국가 경제의 기초를 제공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 정부는 철강, 화학, 비철금속, 전자, 기계, 조선의 6대 전략산업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였다.

철강 산업은 급증하는 철강 수요에 부응하여 1960년대 초부터 정부는 제철소 건설을 시도하였으나, 막대한 소요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 보상금인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와 차관을 빌어 착수, 1973년 포항종합제철소(현 POSCO)를 완공하여 산업과 국내건설, 사회간접자본 구축에 소요되는 철강의 원활한 공급이 가능해졌다. 이후 동국제강, 현대제철 등과 더불어 한국의 철강 총 생산량은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 2012년 현재 3,447만 톤을 생산하며 세계 6위의 위상을 보이고 있다.

조선 산업은 1960년대에도 조선소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성장은 1973년 현대중공업, 1977년 삼성, 1978년 대우가 조선소를 설립함으로써 대형선박 건조 체제가 완비되며 시작되었다. 2011년 기준 한국의 선박 수주량은 세계시장의 51.2%로, 중국의 31.2%, 일본의 4.7%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였다. 최근에는 LNG 운반선, 쇄빙유조선, 석유시추선, 석유나 천연가스 채굴은 물론 생산과 수송에 사용되는 각종 설비를 포함한 해양 플랜트에서도 시장점유율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수입 대체를 위한 노력으로 1962년 새나라자동차가 경기도 부평에 공장을 세우고 조립생산을 시작한 후 신진, 새한, 현대, 기아가 4강 체제를 구축하여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모델의 반제품을 조립 생산하였다. 그러나 완성차 생산은 1973년 기아가 경기도 광명에 일관조립공장을 설립하고, 1975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울산에 종합자동차공장을 건설 현대적인 생산 시설을 갖추게 되며 시작되었다. 1986년에는 미국시장에 ‘포니엑셀’을 수출하며 자동차생산 강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고, 대우자동차는 GM에,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쌍용자동차는 상해자동차에 각각 매각된다. 이후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경쟁력을 갖추며 세계시장을 잠식해 들어가 자동차 판매량 세계5위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전자․정보통신 산업은 한국 제조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럭키금성(현 LG)과 삼성 간의 전자산업을 둘러싼 첨예한 경쟁체제가 갖춰졌다. 1971년에는 정부 주도로 수출 전진기지인 구미전자공업단지를 착공하고, 아남, 대한전선 등 여타 기업들이 등장하였다. 반도체 산업은 1960년대말 값싼 노동력으로 모토롤라와 같은 외국기업들의 조립생산기지로 출발하였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설립, 연구와 기술개발에 노력하게 된다. 반도체 개발은 민간주도로 이루어졌으나 정부의 지원으로 선진국과의 격차가 점차 줄어들다 1993년 세계 D램 매출 1위를 차지하고, 1996년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인 CDMA의 서비스 상용화에 성공하였다. 한국의 전기전자 산업은 1994년부터 부각되기 시작해,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공업은 1960년대 섬유, 의복, 신발 등의 노동 집약적 경공업에서 시작하였는데, 노동력이 풍부한 서울 등 대도시에 발달하게 된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는 제철, 석유 화학, 조선, 정유 등 자본·기술 집약적 중화학 공업 발달로 이어지는데, 이때는 원료 수입과 제품 수출에 유리한 남동 임해 공업 지역의 발달하게 된다. 1990년대부터는 컴퓨터, 반도체 등의 기술·지식 집약적 첨단 산업 발달이 이루어지는데, 첨단 산업 발전 조건이 좋은 수도권 중심으로 입지하게 된다.

그림 3-12. 주요 공업지역

주요 공업 지역의 특징을 보면, 수도권 공업지역은 편리한 교통과 풍부한 자본과 노동력, 넓은 소비 시장, 그리고 오랜 공업 전통에 기초해 경공업, 중화학 공업, 첨단 산업이 고르게 발달한 최대의 종합 공업지역으로 평가된다. 남동 임해 공업 지역은 원료 수입 및 제품 수출에 유리하고, 정책적 지원으로 성장한 최대의 중화학 공업 지역으로 제철(포항, 광양), 석유 화학(여수, 울산), 자동차(울산), 조선(거제, 울산), 기계(창원) 공업이 발달하였다. 영남 내륙 공업 지역은 풍부한 노동력과 편리한 철도·도로 교통으로 섬유, 전자 조립 등 노동 집약적 공업이 발달하였는데 임금 상승으로 공장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며 지역 경제 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태백산 공업 지역은 풍부한 지하자원에 기초한 원료 지향형 시멘트 공업이 발달하였다. 호남 공업 지역은 중국과의 근접성으로 대중국 교역의 거점 지역으로 제2의 임해 공업 지역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 충청 공업 지역은 편리한 교통, 수도권에 인접하여 수도권에서 분산하는 공업 입지로 서산·당진은 중화학 공업, 대전·청주는 첨단 산업이 발달하였다.

한국은 2012년 휴대전화와 더불어, 반도체 매출액(세계 2위), 선박 수주량(세계 2위), 자동차 생산량(세계 5위) 등 제조업에서 세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1960년대 이후 약 30여년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산업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기술자립을 성취하고, 세계적인 기술 강국으로 주목받기까지에는 정부의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문

GK:3.3.1 Major Industries and Industrial Are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