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3.6 수출 드라이브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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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하고 종합적인 수출지원 정책과 1960년대 세계적인 호황이 결합되면서 한국 경제는 1964년부터 71년사이 목표치를 초과하는 수출 신장과 고도성장을 이룹니다. 이 기간동안 GDP는 연평균 8.7퍼센트라는 고속성장을 했고, 국민 1인당 GNP 역시 빠르게 증가해서 1961년의 82달러에서 1970년에는 240달러를 넘어서게 됩니다.

부문별로 보면, 수출의 빠른 증가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960년 이후 수출은 연평균 40%를 상회하는 속도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수출품 중에서 공산품, 특히 경공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급속하게 증가합니다. 섬유류의 경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61년에는 10.8%에 불과하였지만, 1969년에는 40%를 점하게 되어,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의 자리잡습니다. 이에 따라, 수출액 구성에서 농업 등 비제조업 제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히 감소하였고, 1960년대 말이 되면 경공업제품이 전체 수출액의 70%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상철, 2014) 수출이 증가하고 경공업이 성장하면서, 경공업 제품 생산을 위한 고정자본 투자도 빠르게 증가합니다. 경기과열에 따른 긴축기조를 유지했던 1964년과 71년을 제외하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서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수출입의 급속한 증가에 따라 무역의존도는 아래 표에서 보듯이 해마다 증가해서 1962~64년의 20~23%에서 1971년에는 43%로 높아집니다.

총수출이 이렇게 빠르게 증가했지만 원자재와 자본재의 수입 또한 빠르게 증가해서 무역수지는 개선되지 못했습니다. GDP 대비 총 수출은 1962년의 6.0%에서 16.6%로 증가한 반면, 총 수입은 16.6%에서 26.7%로 증가합니다. 그리고 같은 기간 국내 총 저축율도 11%에서 18%롤 증가했지만 총투자가 12%에서 25%로 크게 증가함으로써 저축으로 충당되지 못한 부분은 외자로 채워야 했습니다. 따라서 1965년 이후 경상수지는 해마다 적자를 기록했고 GDP의 8.4%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가 됩니다.

산업구조도 광업과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퍼센트에서 26퍼센트로 증가한 반면 농업은 그 비중이 37 퍼센트에서 25 퍼센트로 감소하는‘체질변화’를 겪게 되고 빠른 성장으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어서 실업률이 1963년의 8.1%에서 1970~71년에는 4.4%로 현저하게 하락합니다.

박정희 정부의 정책들이 이런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로 분석될 수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공통적으로 1) 수출위주의 정책으로 정부의 특혜를 받은 기업들도 해외시장에서 살아남고 정부가 제시한 수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진 기술들을 빨리 모방하고, 효율성을 개선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었고 2) 이런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부가 은행부문의 자율성/수익성을 희생하면서 정책금융을 지휘하고, 외채를 통해 재원조달까지 책임지는 하나의 거대은행 역할을 했다는 점 3) 1960년에 분출되었던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억제하고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이나 노동시간 등 기본권 보호를 등한시하는 대신, 기업의 성장을 통해 노동자들이 간접적으로 그 혜택을 누리게하는 낙수(trickle-down)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철저하게 친기업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함과 동시에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었다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사공일과 존스(1981)는 이전 정부에서 특혜적인 방법으로 외환을 획득하고 수입권을 독점해서 막대한 지대를 챙기는 영합적 (zero sum) 활동에 치중하던 기업들이 환율제도의 개혁으로 지대의 원천이 봉쇄되었다는 점 그리고 수출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수출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제품들을 제조해내야하는 보다 생산적인 정합적 활동 (positive sum) 활동을 촉진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표 3.3. GDP 성장율 및 수출입 의존도 (1962~1971년)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http://ecos.bok.or.kr), 한국경제60년사편찬위원회 (2010)에서 재인용
GDP 성장률 GDP 수요부문별 성장율 무역의존도
최종소비 고정투자 총수출 총수입 합계 총수출 총수입
1962 2.1 5.8 28.7 13.0 34.0 22.6 6.0 16.6
1963 9.1 3.1 27.3 9.0 26.8 21.3 5.4 15.8
1964 9.7 6.5 -9.3 23.5 -24.2 20.2 6.7 13.5
1965 5.7 6.3 27.1 35.9 12.6 25.5 9.5 15.9
1966 12.2 6.8 59.5 42.4 56.2 32.2 11.9 20.3
1967 5.9 8.3 22.6 32.7 30.8 36.0 13.6 22.4
1968 11.3 9.6 37.4 39.5 43.6 40.6 14.7 25.9
1969 13.8 9.4 24.8 36.1 26.6 41.4 15.4 26.0
1970 8.8 9.5 1.0 19.6 8.0 41.3 16.0 25.3
1971 10.4 9.2 6.4 24.7 19.6 42.5 16.1 26.4


물론, 다른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으로 인해 물가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유지해서 연 평균 12.3퍼센트라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했습니다 . 그리고 고금리 정책으로 저축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저축이 충당하지 못하는 투자 재원은 경상수지 적자로 메워야 했고 이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면서, 1973년에는 총외채가 GNP의 32퍼센트에 육박하게 됩니다 (Collins and Park, 1989, p.171). 그리고, 국내시장에서 기업활동의 경쟁을 제한하는 대신 기업들의 규율(discipline)과 경쟁력은 수출시장에서 찾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은 내수 위주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수출시장에서 성공한 대기업들과 내수와 대기업의 하청에 의존하는 다른 기업들간의 생산성 격차가 발생하는 장기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표 3.4. 고용, 물가상승율 및 국제수지 (1962~1971년)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http://ecos.bok.or.kr), 한국경제60년사편찬위원회 (2010)에서 재인용
고용(%) 물가상승율(%) 국제수지(백만달러)
취업자 증가율 실업률 경제활동 참가율 총수출 총수입 경상수지 무역수지 자본수지
1962 - - - 6.6 9.3 -55.5 --335.3 19.2
1963 - 8.1 56.6 20.7 20.6 -143.3 -410.2 106.5
1964 1.8 7.7 55.7 29.5 29.5 -26.1 -244.9 26.6
1965 5.4 7.3 57.0 13.5 13.5 9.1 -240.3 7.4
1966 2.6 7.1 56.9 11.3 11.3 -103.4 -429.5 196.5
1967 3.6 6.1 56.9 10.9 10.9 -191.9 -574.2 280.3
1968 5.1 5.0 58.0 10.8 10.8 -440.3 -835.7 501.0
1969 2.5 4.7 57.8 12.4 12.4 -548.6 -991.7 718.1
1970 3.6 4.4 57.6 16.0 16.0 -622.5 -922.0 661.6
1971 3.4 4.4 57.4 13.5 13.5 -847.5 -1045.9 8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