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3.7 재벌체제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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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은 특정한 산업이나 연관산업에 집중되지 않은 상대적으로 관련이 없는 산업들에 여러개의 대기업들을 거느린 한국의 특유한 대기업집단을 말합니다. 일본의 계열(keiretsu)과 흔히 비교되고는 하는데, 은행을 중심으로 대기업군이 뭉친 자이레츠와 달리 한국의 재벌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은행을 소유하고 있지 않고, 또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계열과는 달리 총수와 그 일가가 기업의 주요한 경영 결정을 담당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재벌은 흔히 계열사를 통해 수출품의 부품을 조달하곤 하는데 비해 일본의 계열사들은 일반적으로 외주를 통해 부품을 조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1]

한국에서 재벌들이 본격적으로 한국경제에 등장한 시점은 50년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재벌로 성장한 대다수 기업들은 적산을 불하받고, 미국의 원조물자를 받아 가공산업으로 사세를 키운 기업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5년의 자본금 기준으로는 삼양사(1위), 대한석탄공사(2위), 한국산업은행(3위), 한국낙희공업사(4위), 금성방직(5위) 등이 선두권을 형성했는데, 50년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태창, 삼성, 삼호, 개풍, 대한산업, 동양그룹 등이 등장합니다.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성장한 것으로 알려진 태창은 태창방직 태창공업, 매일직물, 대한문화선전사, 조선기계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한때 국내 최대의 기업집단을 형성했고, 개풍그룹은 개성출신의 자영업자 이정림이 창업한 그룹으로 6ㆍ25전쟁이 끝난 뒤 서울에서 호양산업을 설립, 주한미군에 얼음을 납품하면서 부를 축적했습니다. 최근 휴대폰과 반도체 산업을 통해 명실상부한 최대의 재벌로 성장한 삼성이 두개의 적산을 불하받아 사업을 시작한 때도 이 시기입니다.

퍼즐 형태의 로고
1950년대 최대의 기업이 된 삼양사는 1924년 기업형 농장으로 출발해서 1950년대 소금과 설탕 생산으로 최대의 기업이 된다. 1930년대 삼양사의 만주 봉천 사무소. 자료: 비지니스 워치(http://www.bizwatch.co.kr/special/2014/first_issue/1_7.php )

재벌들이 본격적으로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는 박정희 정부가 들어선 196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수출지향정책을 수립하고 규모의 경제 개념을 기반으로 대기업을 집중지원하면서 재벌들 간의 승자와 패자가 갈린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64년 10대 그룹을 보면 삼성, 삼호, 삼양, 개풍, 동아, 락희, 대한, 동양, 화신, 한국글라스 등의 순으로 일제시대 때부터 부를 축적한 기업들과 새로이 등장한 기업들이 섞여있습니다. 이후, 삼성은 동양방송, 중앙일보, 동방생명, 전주제지, 삼성전자, 삼성산요전기 등의 기업을 설립하거나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고, 5위로 뛰어오른 락희도 70~80년대 국내 가전시장을 장악한 금성사를 설립하며 도약기를 맞이합니다. 반면 개풍(이정림), 삼호(정재호), 화신(박흥식) 등 일제 시대의 부를 바탕으로 재벌이 된 대표기업들은 경쟁에서 뒤쳐지게 됩니다. 특히 정재호의 삼호는 1972년 8.3 조치 당시 자신의 기업에 사채를 빌려준 것처럼 꾸며 회사돈을 빼돌리는 소위 위장사채가 적발되면서 반 사회적 기업으로 몰려 몰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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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가전시장을 선도했던 금성사의 생산품들. 자료: economy CEO (http://m-ceo.com/content/view.asp?cg=hot&seqNum=611 )

1970년대는 중화학공업화에 편승해서 한국재벌이 급성장하면서 그 체제가 공고해진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10대 재벌의 평균 계열사수가 72년 7.5개에서 79년 17.6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락희가 삼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후발주자였지만 중동 건설붐과 자동차 산업에서의 성공에 힘입은 정주영의 현대가 급성장해서 삼성의 뒤를 서열 3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합니다. 또 60년대 10대 그룹 중 삼양, 개풍, 동아, 동양, 화신, 한국글라스가 10위권에서 밀려나고 현대, 한국화약, 동국, 효성, 신동아, 선경, 한일합섬 등이 약진합니다. 특히 70년대 중반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중화학공업의 약진은 재계판도를 크게 흔들어놓습니다. 삼성은 코리아엔지니어링, 대성중공업, 우진조선, 통일건설, 한국반도체 등을 인수해 그룹의 중심을 경공업에서 중화학부문으로 전환시킵니다. 대우도 한국기계,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을 인수해 그룹의 주력을 중화학공업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이후 재벌기업들은 수출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면서 국제경쟁력을 가진 다국적 기업으로 변모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97년 30대 재벌들은 매출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4%에 달할 정도로 거대해졌고, 이들의 방만한 차입경영, 선단식 경영으로 표현되는 무분별한 다각화, 과잉중복투자 등 여러가지 문제는 결국 199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됩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30대 재벌그룹 중 16개 그룹이 파산하고 구조조정을 거치는 등 일시적으로 위축되지만, 이후 다시 빠른 속도로 회복해서 2011년 사상 처음으로 30대 재벌그룹의 매출액이 GDP를 초과했고 5대 재벌의 매출액 또한 GDP의 62.7%를 차지하는 등 금융위기 이전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전문경영인보다는 총수와 그의 가족이 우선시되는 지배구조로 인해 총수의 전횡과 잘못된 의사결정이 내외부적으로 전혀 견제되지 않고, 경제력이 소수 재벌에게 집중되고 시장이 이들의 전횡을 막지 못하고 왜곡되면서 새로운 기업이나 산업의 성장이 저해되는 등의 문제는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재벌체제의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는 6장에서 보다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1. 좌승희(1998)는 정부가 불안정하고 법치제도가 정착되지 않아써 재산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기형적 경제제도하에서는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경영은 정치자금 요구나 과도한 세금 부여 등 여러가지 위험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에 재벌들이 비공개적인 족벌경영을 선택하게 되었고 또 경제외적인 여러 요인들에 의해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던 시기에는 이런 위험 대비하기 위해 기업의 입장에서는 다각화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다각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정부의 산업정책도 들고 있는데, 정부가 특정 산업에 대한 신규 진입은 억제하는 반면 국가경쟁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선택된 기업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기회가 발생하면 모든 재벌이 진입을 시도하는 다각화 행태가 보편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