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4.2.2. 중화학 공업화와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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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동원, 세제 혜택과 더불어 중요하게 고려된 것이 중화학공업에 필요한 기술,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것과 선진 기술을 도입해서 올바르게 운용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자체기술 개발을 할 수 있는 연구인력을 지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중고등학교부터 고급학위를 소지한 연구자들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교육기관들을 재정비하고 연구기관을 설립합니다.

우선, 1974년 고교 평준화제도를 도입해서 기존의 사립 고등학교들이 시행하던 입학시험을 지역별로 표준화된 국가고시로 대체하고, 학교별로 차이가 심했던 교사와 학교 시설, 직원들의 수준도 평준화 시킵니다. 이런 고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의 수가 크게 증가합니다.

그리고 중화학공업화 선언시에 1981년까지 약 134만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기능공이 부족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공업고등학교를 설립, 육성하고 기능공 양성 기관에 대한 강력한 지원과 공고 졸업생 및 기능 자격자에 대한 각종 우대정책을 펼칩니다. (정진성, 2013) 이 정책은 단기간에 공고에 지원, 졸업하는 학생 수를 증가시키고 중화학공업 공장들의 현장에서 복잡한 기계들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노동자와 기능공, 기능사들을 양성해 냅니다. 그리고 이들 기술인력의 자격검정을 위해 국가기술자격법을 제정해서 기능인력의 이론적 지식과 실무 능력을 평가하고 그 능력에 따라 여러 등급의 자격증을 발급하는 체제를 도입합니다.[1]

고등교육기관의 경우, 실업과 반정부 학생운동에 대한 우려 때문에 통제하고 있던 대학교 정원도 1970년대 중반부터 선별적으로 확대하는데, 주로 2년제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의 이공계, 자연계 학과들 위주로 정원이 확대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외에서 도입된 기술을 현장에서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도입해서 토착화 하고 나아가 자체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고급 인력과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정부는 충남 대덕(현재 대전광역시)에 연구단지를 조성해서 선박해양연구소, 표준연구소, 기계금속 시험 연구소, 전자기술 연구소 등 전략 산업 연구기관들을 순차적으로 설립합니다.

이런 정부의 활동은 R&D 지출의 일부가 되는데, 1970년대 우리나라 전체의 R&D 지출은 GDP의 0.5%에 미치지 못하는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정부가 이 전체 R&D 지출의 50~70%를 담당하면서 연구개발투자를 주도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교육비 지출도 꾸준히 상승하는데, 1960년대 초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전체 정부재정의 약 15% 정도를 차지하던 교육비 지출은 1975년 이후 꾸준히 상승해서 80년대 초에는 정부재정의 20% 를 넘게 차지하는 주요한 재정지출 항목이 됩니다. (Kim and Rhee, 2007)

마지막으로 정부는 중화학 공업에 필요한 대단위 산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공단을 건설하고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거주지역까지 고려한 대단위 도시계획을 집행합니다. 집약적인 공단 건설은 원료, 중간재, 완제품 간의 생산이나 기술적 연관관계가 밀접한 중화학 공업의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일부 산업은 공해산업으로 공해의 집중화와 공동방지시설 설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1974년 3월 창원, 온산, 여천 등의 산업기지와 조선소 입지로 옥포와 거제도 일대 지역이 선정되어 개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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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수출선적을 대기중인 현대자동차의 포니 자동차. 자료: 국가기록원 (http://theme.archives.go.kr/next/photo/gallery.do?high_menu_id=9310000000&menu_id=undefined)

  1. 과학기술 습득은 중화학공업 정책 선언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정부는 이제부터 ‘중화학공업 육성’의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공업 정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또 하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내가 제창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전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국력이 급속히 늘어날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없이는 우리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공업의 육성 등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범국민적인 과학 기술의 개발에 총력을 집중해야 되겠습니다. 초등학교 아동에서부터 대학생, 사회 성인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기술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국력이 빨리 신장되는 것입니다.” 1973년 1월 12일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