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4.7.2. 임금상승 퍼즐과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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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일관된 친 기업, 반 노조 정책과 함께 한국 노동시장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는 점입니다. 한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농촌이 해체되고 산업 노동자로 흡수되는 과정에 많은 도시빈민이 창출된 상태였고 정부 또한 노동자들의 조직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억제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의 빠른 임금 상승은 놀라운 점이 있고, Amsden(1989)은 이를 ‘임금상승의 패러독스’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임금상승이 어느정도였는지는 아래 표 4.13을 통해 1970년부터 84년까지의 임금상승율을 당시 비슷한 정도의 발전단계에 있었던 다른 나라들 – 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터키, 대만 - 과 비교해보면 여실히 드러납니다.

표 4.13. 일곱개 개발도상국들의 비농업부문 실질 임금 상승율 비교, 1970~1984 주: * Real earning in manufacturing sector
** Average wages for skilled workers in construction. Data are from the Central Bank
자료: Amsden (1989)
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터키 대만
1970 100 100 100 100 100 -
1971 102 110 105 103 100 -
1972 104 114 99 104 99 100
1973 119 119 107 104 98 107
1974 130 119 126 107 96 98
1975 131 127 124 114 116 110
1976 154 129 80 123 122 126
1977 187 134 76 125 146 138
1978 219 142 77 122 147 151
1979 238 134 87 121 155 163
1980 227 130 100 116 124 166
1981 225 118 91 119 130 171
1982 241 115 79 117 129 180
1983 261 97 97 86 130 188
1984 276 84 112 83 11 191

1970년대에 이들 일곱개 나라들 모두에서 실질임금이 상승했지만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은 도드라집니다. 1970년을 100으로 했을 때 79년 한국의 실질임금은 238로, 10년 사이에 2.38배 상승했는데, 이는 터키 (155)나 브라질 (134)은 물론이고 같은 시기 비슷한 정도의 빠른 성장을 기록했던 대만 (163~166) 보다도 월등히 높은 상승율입니다. Lindauer(1984)는 조사 범위를 좁혀서 제조업에 종사한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율을 조사했는데 1969년에서 79년사이 10년동안 한국 제조업 종사자들의 실질임금이 무려 250%이상 상승했다고 보고합니다.

한국의 임금상승 속도는 고성장기 일본의 임금상승 속도와 비교해도 빠른데, 일본의 고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 1950년에서 68년 사이 18년동안 일본 생산직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약 2.7배 상승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실질임금은 1955년에서 80년 사이 25년동안 약 4.3배, 1966년에서 80년사이 12년동안 3.6배 증가하는 놀라운 속도를 보입니다. 이로 인해 한국은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성장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고르게 분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이처럼 가파른 임금 상승을 기록한 원인으로는 무엇보다도 경제의 빠른 성장을 들 수 있겠지만, 그 외에도 몇가지 중요한 요인들을 지적할 수 있는데, 이들 요소들은 모두 다른 개도국들과는 차별되는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첫번째는 한국의 출발점 자체가 다른 어떤 나라들에 비해서도 열악했고 따라서 임금도 매우 낮은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그처럼 열악한 상태에서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은 큰 성과이지만, 동시에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임금이 동일한 액수가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증가율로 보면 훨씬 더 높게 잡히는 일종의 착시효과가 있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1975년과 1980년 전세계 제조업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을 비교한 미국 노동통계국 (Bureau of Labor Statistics)의 시간당 보수(hourly compensation)지표를 통해 한국과 대만, 멕시코의 시간당 보수를 비교해보면 75년과 80년에 한국이 $0.35와 $0.95로 대만의 $0.38과 $1.02, 멕시코의 $1.47과 $2.21로 한국과 대만이 빠른 증가세를 기록했지만, 임금의 절대치를 비교하면 1980년까지는 한국과 대만이 여전히 멕시코 보다 낮았고 한국이 대만보다도 낮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두번째로, 베트남 전쟁 특수와 중동 건설 붐이라는 외부적 요소로 인해 저숙련 남성 노동력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이로 인해 건설업을 포함하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실제로, 표 3.15를 보면 베트남 전쟁 특수기라고 할 수 있는 1965~1970년과 중동특수기라고 할 수 있는 1975~1979년 사이에 생산직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율이 높았고 이들의 임금 상승율이 전문, 기술, 관리직 종사자 등 숙련직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율보다 높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표 4.14. 생산직 노동자와 숙련직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율 비교, 1965~1984 자료: 1965~1979, Bai (1982); 1980~1982, 노동부 (1985), Amsden (1989)에서 재인용
임금상승율
기간 생산직 노동자 전문, 기술, 관리직 노동자
1965~1970 12.8 6.6
1971~1974 7.1 6.1
1975~1979 16.8 15.3
1980~1984 5.3 2.5

세번째로, 한국의 노동시간은 당시의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해서도 월등하게 길었고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이 줄지않았다는 점입니다. 1976년부터 85년사이, 제조업 노동자들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을 비교한 아래 표 3.16을 보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독보적으로 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이룬 많은 나라들이 성장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인데 비해 한국은 일제시대 때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에서 이식된 노동관행과 긴 노동시간을 경제발전 과정을 거치면서도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 4.15. 제조업의 노동시간 비교, 1976~1985 자료: International Labor Office (1986)
국가 평균노동시간
남아프리카 47.0
아르헨티나 45.6
멕시코 46.0
푸에르토리코 38.0
미국 40.1
홍콩 47.1
이스라엘 38.7
일본 46.0
한국 53.3
말레이시아 48.4
벨기에 34.3
프랑스 40.1
독일 41.2
노르웨이 38.1
스웨덴 37.8
영국 41.5

한국이 이렇게 긴 노동시간을 가지게 된 이유는 노동시간 단축은 법제화, 제도화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전국단위의 조직적인 노조활동이 불가능했다는 점 그리고 역설적으로 시간당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빠르게 상승한 시간당 임금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긴 노동시간을 장기간 유지한 탓에 한국의 노동자들의 임금은 노동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인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상승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노동시간은 공식적인 유급휴가의 증가, 주 5일제 근무의 도입 등으로 점진적으로 줄어들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들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Amsden (1989)과 Seguino (1997)은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이 남성 노동자들에 비해 유난히 낮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아래 표 3.17에서 보듯이 1980년 현재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 임금의 44.5% 밖에 받지 못하는데, 이는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표 4.16. 제조업 노동자들의 성별 임금 격차*, 1980. * 여성/남성 평균 임금 x 100.
자료: International Labor Office, 1981. Amsden (1989)에서 재인용
국가 비율(%) 국가 비율(%)
스웨덴 89.3 벨기에 69.4
버마 88.8 영국 68.8
덴마크 86.1 시리아 68.8
노르웨이 81.9 아일랜드 68.7
네덜란드 80.1 그리스 67.8
살바도르 78.9 스위스 67.7
호주 78.6 이집트 63.1
프랑스 75.4 룩셈부르크 61.2
핀란드 75.4 사이프러스 50.2
서독 72.7 일본 48.2
뉴질랜드 72.4 한국 44.5

성별 임금 차이가 이렇게 크게 유지된 데에는 문화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한국의 역사적, 정책적 요인들이 많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남성 저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던 중동 특수 같은 외적 요인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는 기회가 되지 못했고, 정부의 중화학공업 드라이브는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높고 임금도 높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했지만, 이 산업들은 남성중심의 대규모 사업장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이후 강력한 노조활동의 기반이 되지만 여성들이 이런 일자리들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섬유와 의류, 전자제품 조립 같은 여성노동자들을 주로 고용한 노동집약적인 분야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은 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정책금융과 세제지원에서 소외된 경공업 부문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생성된 제조업 부문간, 성별 임금격차는 이후에도 장기간 유지되고 여성의 낮은 임금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1. Bureau of Labor Statistics, “International Comparison of Hourly Compensation for Production Workers in Manufacturing, 1975~2003”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