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5.4.2. 자본시장과 비은행 금융기관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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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기업공개촉진법 이후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오던 한국의 자본시장은 1980년대에도 성장세가 지속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을 맞아 1986년 역사상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주가지수 역시 상승세를 지속하고 거래량과 발행물량도 확대되는 등 활황세를 보입니다. 종합주가지수는 1986년 68%, 1987년 98%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고 1988년에도 70.5% 상승하는 등 한국의 주가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합니다. 1989년에는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처음 1,000를 돌파하기도 합니다. 이 기간에는 기업공개에 대한 기업주의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고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업들의 기업공개와 유상증자가 급증합니다. 주식발행을 통한 기업자금실적을 보면 1985년 8,408억원이었던 것이 1987년에는 1조 8,987억원으로 1988년에는 7조 7천억원, 1989년에는 14조 1,755억원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입니다. 이에 따라 상장회자들의 자본금 규모도 급격하게 증가해서 1985년말 4조6천억원 규모였던 자본금이 1990년 말에는 23조 9천억원으로 무려 5배 이상 증가합니다.

상장회사 수도 1985년 342개에서 1990년에는 669개로 95.6% 증가하고 특히 1987년에는 자본금이 3조원을 넘는 한국전력공사가 신규 상장됨에 따라 상장주식 시가총액이 85년말 6조 5천억원에서 1989년말에는 95조 4천억원으로 급증합니다.

표 5.5. 한국 자본시장의 성장 (단위: 억원) Source: Korean Securities Dealers Association
1980 1985 1987 1989 1990 1991 1992
Stock Market
Companies listed 352 342 389 626 669 686 688
Book Value of stock 2,421 4,665 7,591 21,212 23,982 25,510 27,065
Market Value 2,526 6,570 26,172 95,447 79,020 73,118 84,712
Market Value/GNP (%) 6.9 8.4 24.7 67.7 46.1 34.1 35.5
Trading Volume 1,134 3,620 20,494 81,200 53,455 62,565 90,624
Stock Price Index 106.9 163.4 525.1 909.7 696.1 610.9 678.4
Corporate Bonds
Number of Issuers 434 1,213 1,457 1,504 1,603 1,862 2,070
Book Value 1,649 7,623 9,973 15,396 22,068 29,241 32,696
Trading Volume 246 660 5,327 4,378 2,455 1,394 453

주식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직접금융이 기업들의 전체 외부금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22.9%에서 1990년에는 45.2%로, 직접금융 중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0.9%에서 14.2%로 증가하면서 직접금융이 기업들의 중요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표 5.6. External Financing by Corporate Sector in Korea (단위:%) Note: Others include government loans and corporate credit.
Source: Bank of Korea, Understanding of Capital Circulation in Korea (in Korean)
1970 1975 1980 1985 1988 1990 1992
Indirect Finance 39.7 27.7 36 56.2 27.4 40.9 36.3
Borrowing from Banks 30.2 19.1 20.8 35.4 19.4 16.8 15.1
Borrowing from NBFIs 9.5 8.6 15.2 20.8 8 24.1 21.1
Direct Finance 15.1 26.1 22.9 30.3 59.5 45.2 41.4
Commercial Paper 0 1.6 5 0.4 6.1 4 7.6
Corporate Bonds 1.1 1.1 6.1 16.1 7.5 23 12.5
Stocks 13.9 22.6 10.9 13 40.6 14.2 15.9
Foreign Borrowings 29.6 29.8 16.6 0.8 6.4 6.8 5
Others 15.6 16.4 24.5 12.7 6.7 7.1 17.3
Total 100 100 100 100 100 100 100
(A) + (D) 54.8 48.9 37.3 36.2 25.8 23.6 20.1
(B) + (C) 24.6 34.7 38.1 51.1 67.5 69.3 62.5

80년대 후반 주식시장이 크게 성장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국민주제도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선진국에서는 많은 공기업들이 민영화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공기업의 민영화를 소득재분배 정책 차원에서 추진하면서 국민주를 보급하게 되었고 증권시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1988년 4월에 제1차로 포항제철공업 주식 중 산업은행 보유분 3,128만주(매출 규모 4,133억원)가 국민주로서 보급되어 주주 300만 명을 확보하였으며, 증권시장에는 8,000억원 상당의 시가총액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한국전력이 국민주로 매각되는데, 당시 청약자 수가 600만 명을 넘어섰고, 상장일 기준으로 시가총액을 약 14조원 정도 증가시켰으며 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 중 한국전력주 가 차지하는 비중은 15%를 넘는 등 주식시장에 큰 효과를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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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지속된 성장으로 해외로부터의 자본시장 개방 압력이 증가한 시기로 정부가 ‘자본시장 국제화 장기계획’을 발표하고 증권시장 개방을 준비하는 등 자본시장을 국제화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의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 증권에의 투자를 목적으로하는 국제신탁회사인 Korea Fund를 1984년에 설립해서 뉴욕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함으로써 외국인들이 간접적으로 한국 기업들에 투자할 수 있게 합니다. [1] 이와 동시에 1985년 11월 정부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국내기업에게 해외증권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의 해외증권 발행 방안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1985년 12월 국내 최초로 삼성전자가 2,000만 달러 규모의 해외전환사채를 유로달러(euro-dollar)시장에서 발행하여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합니다. 삼성전자의 성공적인 해외전환사채의 발행 이후, 1986년 5월 대우중공업이 4,000만 달러, 동년 7월에 유공이 2,000만 달러를 발행하였으며, 1987년 8월에는 금성사가 3,000만 달러를 발행합니다.

정부는 1988년 12월 자본시장 국제화의 단계적 확대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1990년까지는 해외전환사채의 발행 촉진과 해외증권발행의 다양화를 시도하는데, 이에 따라 1989년 11월 삼미종합특수강이 국내 최초로 5,000만 달러의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 데 이어 1990년에 들어서는 서통 등 5개 회사가 총 1억 8,000만 달러의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였고, 현대자동차는 7,000만 달러의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였으며, 삼성물산은 4,000만 달러의 주식예탁 증서를 국내 최초로 유로달러시장에서 발행하는 등 한국 대기업들 – 특히 삼성, 현대 등 5대 재벌이 해외 자본시장을 통해 직접 자본을 조달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조윤제(1999)에 따르면, 이렇게 한국에서 가장 큰 재벌들이 상대적으로 금융비용이 낮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면서 90년대 5대 재벌들의 해외자금 차입은 빠른 속도로 증가합니다. 5대 재벌이 은행대출에 더이상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은행대출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6~30대 재벌들에게 은행신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이는 자금에 목말라있던 이들 기업들의 부채 증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시기는 또 1972년 8.3조치 이후 사채시장을 제도권에 끌어들이기위해 설립된 투자금융회사와 종합금융회사[2] , 상호신용금고가 확대되고 보험회사, 투자신탁회사[3], 증권회사 등 여러 부문에서 비은행 금융회사들이 신설되거나 성장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상호신용금고는 주로 서민 및 영세상공인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담당하도록 했는데, 73년 제 1차 석유파동 이후 도산하는 상호신용금고가 속출하고 이에 따른 서민들의 피해가 증가하자 정부는 실적이 우수한 신용금고들만을 선별해서 대형화하고 일부 할부전업금고들은 대기업들이 인수하도록 합니다. 은행법을 통해 은행시장 진출이 차단된 대기업들의 금고업 진출은 상호신용금고들이 대형화되고 안정되는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모기업의 재정난 해소나 유사시 자금동원을 위해 신용금고를 사금고처럼 편법적으로 운영하려는 의도로 인수한 경우도 많아서 이후에 많은 문제가 됩니다.

흔히 단자회사라고 불린 투자금융회사들은 기업어음(commercial papers, CP)시장의 성장과 함께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기업어음은 기업들이 일반대중이나 금융기관들에게 투자자금을 융자받을 때 발행하는 회사채(bond)와 같이 돈을 빌려쓸 때 쓰는 일종의 차용증서라는 점에서 채권과 유사하지만 일반적으로 만기가 1년 이내로 짧고 이사회의 의결 없이 기업대표의 직권으로 발행이 가능하고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는 등 발행절차가 상대적으로 간편해서 기업들이 단기 운용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선호하는 직접금융상품입니다. 단자회사들은 이 기업어음을 발행기업들로부터 할인해서 매입한 후에 다른 금융기관들에 판매해서 매매차익을 얻으면서 성장하게 되는데 1976년부터는 종합금융회사도 기업어음시장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시기에는 주식시장의 성장으로 증권회사들의 수와 규모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을 필두로 한 보험회사들도 빠르게 성장해서 1975년 2160억원에 불과했던 보험회사의 총 자산이 1985년에는 5조 4천억원으로 1989년에는 26조 2천억원, 1991년에는 44조 6천억원으로 매년 25%를 넘는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합니다.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는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꾸준한 성장으로 인해 전체 대출 중에서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꾸준히 증가합니다. 아래 표를 보면, 1976년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은 전체 대출의 약 25%선이었는데, 이 비율이 1980년에는 36.2%, 1986년에는 43.7%를 넘어서고 1990년에는 50%를 넘어서 은행대출을 앞서게 되고 예금 수신액에서도 전체 수신액의 59.5%로 은행의 예금액을 넘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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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은행 금융기관의 가파른 성장으로 은행부문은 시장을 점차 상실하게 되고 수익성이 하락하자 정부는 은행들이 비은행 금융기관들과 경쟁하도록 자본시장과 단기 금융시장 자산에 대한 신탁업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은행의 신탁계정은 이후 급속하게 성장해서 예금은행이 국내 신탁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4년 5%에서 1993년 40% 이상으로 커집니다. 하지만, 은행들이 신탁계정을 통해 기업어음이나 주식 등 위험자산들에 투자를 하면서 은행보유 자산의 위험성은 높아지게 되고, 은행이 단기 및 장기자본시장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1. 하지만, 외국인들의 자본시장 직접투자는 1992년까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2. 종합금융회사는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지분을 취득하는 투자를 하는 투자은행의 기능에 중장기 설비금융기능을 혼합한 기업금융 전문기관으로 1976년 한국종합금융이 설립된 후 1979년까지 5개 회사가 추가되어 6개사 체제가 1990년까지 유지됩니다.
  3. 투자신탁회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각주 25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