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5.4.3.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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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유화화 자본시장의 성장, 그리고 비은행금융기관은 성장은 한국 금융이 후진성을 벗고 보다 경쟁력있는 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금융시장의 이런 변화들은 이후 몇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첫번째는 새로운 금융기관들이 생기고 금융구조가 보다 선진적으로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계의 투명성이나 공시 기준은 후진적인 상태로 방치되었고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능력과 신뢰도는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하에서 민영화 된 은행들은 여전히 정부관료들과 정치권의 영향력 하에 있었고 금융관행도 대기업 위주의 대부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은행과 같은 간접금융기관이 아닌 직접금융시장에 참여하는 금융기관들에 대한 정부의 건전성 감독은 그 체계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본시장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의 투명성은 이후 90년대까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동시에 자본시장이 해외에 개방되면서 외국 투자가들이 직접투자나 장기투자 보다는 은행을 통한 간접투자와 단기투자에 치중하게 되는 이유가 되고 한국 자본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게 됩니다.

두번째, 은행 민영화와 NBFI의 성장은 재벌기업들이 금융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재벌들에의 경제력 집중이 가속화되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Kim & Lee (2007)에 따르면 1988년에 30대 재벌은 25개 증권회사 중 12개, 35개 보험회사 중 18개, 38개 투자신탁회사 중 18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행법에 의해 개별 기업이 은행 주식의 8% 이상을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30대 재벌 전체가 직접 또는 자신들이 소유한 비은행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유한 은행산업의 지분은 전체의 약 30%에 달했습니다. 여기에다 앞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 직접금융시장이 확대되고 5대 재벌들의 경우 해외에서 채권과 주식의 발행이 가능해지면서 재벌들이 사용할 수 있는 투자자금의 공급옵션이 크게 늘어납니다. 이처럼 재벌들이 다양한 경로로 자금을 모을 수 있고 비은행 금융기관처럼 직접 통제가 가능한 자금원까지 확보하게 되면서 정부가 은행의 정책금융을 통해 재벌들을 통제하는 방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됩니다. 박정희, 전두환의 권위주의 시절에 재벌들은 정부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재벌들은 점차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때로는 정부의 시책에 비판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게 됩니다.

세번째, 대기업과 재벌들이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통제를 넓혀가면서 지속적으로 금융자율화를 요구함에 따라 1990년대부터 실질적인 금리자유화를 포함한 자율화가 진전되기는 하지만, 1972년 8.3조치와 1980년대 산업합리화 조치를 통해 확인된 대마불사(too-big-to-fail)의 믿음 즉 기업의 규모를 키워서 재벌의 지위에 오르면 경영상의 위기가 오더라도 정부가 구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대기업과 재벌들의 높은 부채비율 – 기업의 총자산 대비 총부채의 비율-로 표현되는데 1960년대말 재벌체제가 본격화되면서부터 급상승한 부채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