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6.1 금융실명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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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한국 금융시장을 마비시켰던 ‘장영자.이철희 부부 사건’과 ‘명성그룹 부도 사건’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생긴 기업의 지나친 차입(돈 빌리기)경영 관행과 함께 사금융과 제도권 금융으로 나뉜 국내 금융시장의 이중구조가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1982년부터 음성적인 자금을 없애고 투명하게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는 금융거래 실명화조치가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까지 금융거래는 1961년 제정된 ‘예·적금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차명이나 가명으로도 거래를 할 수 있는 ‘비실명 거래’를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재산을 가명이나 차명계좌로 관리하면 재산규모가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이라도 출처를 밝히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정부가 이런 비실명 거래를 허용했던 이유는 경제발전을 이끌자면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규모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었고, 정부는 이들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을 보장해 주는 대신 이들이 가진 자금이 금융기관으로 유입되어 투자에 사용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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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는 전격적으로 실시되어 실시 첫날 금융시장에 많은 혼란이 있었다.
시민들이 금융실명제 실시로 인한 증권사의 영업시간 변경 공지를 보고 있다.
자료: 헤럴드경제 (http://biz.heraldcorp.com/photo/ptview.php?ud=362639)


하지만, 비실명거래로 축적이 가능해진 비실명자산들은부정축재 자금, 정치자금, 부동산투기자금 등 각종 불법 자금 거래에 이용되었지만, 추적이 불가능해 말 그대로 ‘돈세탁’ 수단이 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실명자산이 존재하는 경우 종합과세가 불가능해지고, 상속세, 증여세 같은 각종 세금을 포탈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조세의 형평성을 크게 해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기위해 정부는 1983년 7월 1일 이후 예금, 주식, 채권 같은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제로 하도록 강제하는 금융실명제안을 마련하고 동시에 금융종합과세율을 76.5% 수준에서 50% 수준으로 크게 내리고, 금융자산소득을 종합 과세하며 지상배당세도 완화하고, 실명화 과정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은 일정한 조건에 따라 조세상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여러가지 유인책도 마련합니다. 하지만, 1983년 정부가 발표하고 국회에서 ‘금융실명제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했지만, 이 제도가 실시되기까지는 무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립니다. 실시가 미루어진 근거로는 엄청난 금융거래 자료를 전산화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는 했다는 점, 실명제 실시로 은행예금이나 금 등 국부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고 투자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이후, 금융실명제는 그 실시가 두차례나 연기되면서 표류하다가 마침내 1993년 대통령 긴급명령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격적으로 실시됩니다.

금융실명제에 필요한 상당한 준비과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이유로 10년이나 그 실시가 연기된 것은 당시 한국사회의 회계와 금융관행이 얼마나 불투명했는지 그리고 이런 불투명한 관행을 통해 보호받고 있던 기득권층이 실명제 실시에 얼마나 심각한 저항을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 정치인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비자금을 조성해서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제공하는 관행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실명제가 뒤늦게나마 1993년에 실시된 것은 한국 경제가 개발도상국에서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낙후된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는 것일 필수적이고 또 이를 위해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가명, 무기명 자산들이 실명화되면서 지하경제를 억제하고 양성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개인이나 법인들이 금융투자를 통해 얻은 소득에 대한 금융소득종합과세가 가능해지면서 제수 증진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자금 추적이 가능해지면서 정경유착 등 각종 부패사건의 자금추적이 가능해지는 효과도 있었습니다.[1]



  1. 1993년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가명과 무기명 통장을 불법화했지만,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어 그 사람의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서 금융자산의 명목상의 소유자와 실제 소유자가 다른 차명계좌는 여전히 가능했습니다. 이런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법이 실시된지 20년이 지난 2014년 11월부터 불법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