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 Yaqiong

Cefia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인사말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중국 산동성 옌타이시에 있는 루동대학교 한국어학과를 졸업하였고, 항상 한국 연애인 공효진과 닮았다는 소리를 듣곤 한 욱아경이라고 합니다.

욱아경
123456.jpg
Name in Latin Alphabet:
Nationality: Chinese
Affiliation: Ludong University


자기소개

경험

저는 학교 대표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하여 2학년 때 두산그룹 말하기 대회 1등, 세종학당에서 주최하는 옌타이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2학년 때 은상을 받았고, 4학년 때는 한국 영사관과 산동성 교육부 공동주최 한국어말하기 대회에서 학교 대표로 참가해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제가 한국어에 흥미를 갖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의 수상뿐만 아니라 한국어와 관련된 많은 기회들이 찾아왔습니다. 작년에는 옌타이시에서 열리는 한국상품 박람회에서 통역을 맡았습니다. 또한 교수님들을 도와 김진호의 <읽고 찾아가 보는 한국문화>의 일부분을 번역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작년에 학교의 추천을 받아서 12월 7일에 방송된 ‘유기하의 시사토크’라는 전주MBC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본 적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후장(沪江) 인터넷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험도 있습니다. 올해는 제가 강력한 경쟁자를 꺾고 제 녹음dl 옌타이 펑라이국제공항의 한국어 안내 방송으로 뽑혔습니다. 그리고 한국 코나드 제품 회사의 설명회에서 현장 통역도 맡았습니다.

취미

  • 영화 보기

저는 영화를 즐겨 보고 많은 영화를 봤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영화는 "마당에 나온 암탉"입니다. 암탉 잎싹이 양계장에서 살았는데 자기만의 알을 품어 아기를 가지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위해 잎싹이 알을 안 낳고 주인의 버림을 당했습니다. 마당을 나온 잎싹이 오리알을 품게 되고 오리의 엄마가 됐습니다. 하지만 족제비에게 시달려 겨우 오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족제비의 배고픈 아기를 위해 족제비의 먹이가 됐지만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 꿈은 생활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꿈을 품고 살아가면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엄마로서 암탉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기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행복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아기와 족제비의 아기에게까지 베푼 그 암탉의 사랑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참 대단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사랑을 받은 저희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영화를 강추할게요!!

  • 요리 하기

여러분 잘할 수 있는 요리 하나씩은 있으시겠죠?^^ 제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 잘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요리라면 그건 바로 우리 아버지가 해 주셨던 국수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우리 부모님꼐서 아침마다 일찍 출근해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저를 위해서 저의 아버지가 꼭 아침을 준비하고 나서 출근을 하십니다. 그때 아버지가 제일 많이 하신 것이 국수였습니다. 아버지는 간단하게 국수를 만들었지만 제 입에도 잘 맞고 맛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후에 제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아버지가 만드신 국수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도 그 맛있는 국수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우선 적당한 물이 들어가야겠죠. 잘 끓을 때 면을 넣어야 됩니다. 그리고 파 송송 계란 탁~ 잘 익을 때 소금하고 간장도 조금 넣어냐 됩니다. 그리고 비법이 하나 있습니다!!알려드리겠습니다.바로 잘 익었을 때 식초 조금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수를 아주 맛있게 억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가 아버지가 알려주시는 방법대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버지가 해 주신 국수의 맛이 안 나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제가 다시 생각해 봤는데 그거 아마도 아버지가 국수를 만드실 때 저를 생각하면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만드셨던 거지요. 저의 건강을 위해서 꼭 따듯한 것을 준비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맛있는 국수 맛을 낸 것이었죠.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정성과 함께 아버지의 손맛까지 넣으니까 정말 맛있는 국수를 제가 아침마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꼭 해 보세요!!그리고 여러분도 요리를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정성을 넣어보세요~~그러면 그 음식을 먹는 사람도 아주 행복할 것입니다. 요리하는 사람도 맛있게 먹는 그런 모습을 보면 큰 행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

저의 고향은 중국 중북에 위치한 산서성입니다. 제 고향 산서성은 석탄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석탄에 의지하여 우리 고향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서성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산서성에서 수많은 귀중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려면 꼭 우리 고향 산서성으로 오세요!!언제든지 환영합니다.


subject relation object
YAQIONG 의 옆자리는 ~이다 Paloma
YAQIONG 의 룸메이트는 ~이다 Paloma
YAQIONG 은 ~와 친해지고 싶다 YOU
YAQIONG 의 학교는 ~이다 루동대학교

참가 후기

탈춤

탈춤을 배운 이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탈춤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아주 젊어 보이시고 열정이 넘치는 분이셨니다. 처음에 설명을 듣고 아주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직접 해보니까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탈춤은 노래와 춤, 연극, 의상 등 여러 면을 종합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조선 후기 민중예술을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는다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어쩐지 가면과 옷 모두 다 화려하고 노래도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가 가면을 한 번 써봤는데 너무 불편해 보여서 저도 해보고 싶었지만 결국엔 포기했습니다.

역사

한국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 이후 주로 한반도와 만주,연해주,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온 한민족의 역사인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번 수업을 듣고 나서 관심이 더 떨어졌습니다. 교수님께서 강의를 너무 빨리 하셔서 집중이 안돼서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2박3일 경주답사

  • 7월27일에 2박3일 경주 여행을 갔다왔습니다. 제24희 한국문화강좌의 모든 참가자와 선생님이 아침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용인 한국민속촌으로 출발했습니다.

예전에 교과서를 통해 한국민속촌은 한국의 민속적인 삶을 종합적으로 재현하는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가면 꼭 민속촌에 가야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가봤더니 역시 가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에 크고 작은 한옥과 사원이 가득 차 있고 한복을 차려입으신 아줌마가 마당을 쓰시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성균관 스캔들”의 포스터를 봤습니다. 저는 포스터옆에 치정에 빠진 표정으로 송종기를 바라보면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민속촌안에 한국민속촌박물관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어느 한 해를 기준으로 4대로 구성된 가족 각자에 한해의 삶을 4계절별로 재현함으로써 그때의 사람들은 어떻게 열심히 먹고 살았는지, 여가생활을 어떻게 재미있게 보냈는지, 그리고 당시에 쓰는 항아리, 삼태기와 같은 도구가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을 보고 옛날 모습에 감탄하면서 제가 이런 좋은 시대에서 타어난 것을 속으로 은근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서 조선시대로 돌아간듯이 민속촌이 민간 생활과 관계된 생활 풍속이나 습관, 신앙, 기술, 전승 문화 등을 생동감 있게 나타냈습니다. 그 다음에 친구들이 다 모여서 공연을 봤습니다. 공연은 농악놀이와 마상무예 두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공연이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하이라이트가 끊임없이 있어서 저는 눈 한 번도 깜빡하지 않고 보았습니다. 농악 장단 공연이나 말위에서 뽐내는 무예나 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멋있고 흥미로운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저는 무대에서 보여준 시간은 단지 1분일지라도 , 그 1분을 위해서는 십년의 갖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1분을 위해서 열정과 노력을 얼마나 들여야 이런 훌륭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 연기자들의 자기의 직업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일을 사랑해서 잘할 수 있게 되고 또는 계속해나갈 원동력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람들처럼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잘했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공연 사회를 보는 사회자가 한 명이 있습니다. 그 사회자의 말투가 아주 재미있어서 저는 따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중에 꼭 친구들앞에서 그 사회자의 말투를 따라하는 것을 보여주고 친구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줬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을 본 다음에 바이킹을 탔습니다. 허공에서 무중력 상태가 되는 것은 모든 고민을 떨치는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와서 좋은 일도 있었고 본심에 어긋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허공에서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떨리면서 바이킹을 탔습니다. 역시 소리를 지르고 나서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바이킹에서 내렸을 때 왠지 새로운 자기 자신을 만날 거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민속촌 관람에 비해 그 어디서도 탈 수 있는 바이킹은 그 때의 저에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민속촌에 가고 나서 한참동안 차를 타고 경주 안압지로 갔습니다. 갔을 때 하늘이 거짓말 같이 푸르고 예뻤습니다. 경주의 하늘을 보면 사람의 마음도 깨끗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사진을 많이 찍었고 의외로 다 잘 찍었습니다. 예전에 자기가 보기 싫을 정도로 사진을 잘 못 찍었는데 이제 많은 친구가 다 찍어달라는 정도로 기술이 향상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원인은 잘 모르지만 확실히 잘 찍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잘 찍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잘 찍고 싶어서 각도도 찾고 색채도 조정하고 상대방의 표정과 포즈도 요구하면서 끝내 보기 좋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다 제가 찍은 사진을 좋아한다고 해서 스스로 만족하면서도 친구들과 선생님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봐서 보다 기쁩니다. 저는 그때부터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후에 도움이나 관심을 너무 많이 받아서 조금이라도 다른 친구에게 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진 한 장이라도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피곤하고 재미있는 하루가 지났습니다. 저녁 때 우리 일행이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머물었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로비 매니저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제 옆에 지나려고 했을 때에 제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아저씨가 저에게도 폴더 인사로 답하셨습니다. 아저씨가 떠난 후에 옆에 이 장면을 지켜보신 이주혜 선생님께서 하하거리며 크게 웃으셨습니다. 아저씨의 행동에 놀랍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웃음에도 놀랐습니다. 아저씨가 저에게 어린 아이들에게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신다고 하며 선생님이 저에게 친근감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웃음소리만 듣고도 선생님의 성격이 털털하고 시원시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약간 선생님 울렁증이 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면 좀 무서운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에 이주혜 선생님을 처음에 뵈었지만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새로운 룸메이트 나스짜와 카롤리나와 얘기하면서 좋은 호텔에서 자고 그 다음날에 푸짐한 아침을 먹었습니다. 제일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지만 제일 늦게 나왔다는 것에 부끄러웠습니다.ㅠㅠㅠ 나중에 꼭 약속한 시간을 제대로 기억하고 늦지 않겠다고 우리 셋이 다짐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대릉원의 천마총에 먼저 갔습니다. 천마총 앞에서 몇명 친구들이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을 때 이주햬 선생님꼐서 “무덤앞에 사진을 왜 찍어...”라고 하셨습니다. ㅋㅋㅋ아마 한자로 써있는 천마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해서 역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친구들이 다 사진을 그만 찍고 천마총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찜찔방과 같은 무더운 경주에서 시원한 무덤안에 들어가서 좋았습니다. 천마총에서 출토유물을 보면서 설명도 들었습니다. 천마총에서 출토한 일부가 국립경주박물관 별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유물중에서 제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금관입니다. 금관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시대 금관 가운데 금판이 가장 두꺼우며 금의 성분도 우수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국보 제188호로 지정되었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금관이 예뻐서 갖고 싶은 사심으로 더 끌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갔습니다. 돌아다니면서 한자로 쓴 고서를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빠가 자기 딸에게 한자를 설명하고 나서 엄마가 어린 아이에게 했던 말이 들렸습니다. “혜수야~아빠의 중국어 잘하지?””응, 엄마, 나도 아빠처럼 할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대화가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한국인이 자기의 뿌리를 중시하고 역사를 잘 익히는 반면에 중국인은 자기의 전통문화를 덜 중시하는 느낌이 들었고, 자기의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된다는 절박감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저는 한중연에 와서 많은 수업을 들었는데 한자로 된 말이 정말 많고 한문으로 된 글도 많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워낙 제가 중국인으로서 더 잘해야 되는데, 모르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그 순간에 왜 중국어를 배우는 한국인이 점점 많아지고, 또한 일부분 한국직장인이 비싼 돈을 내서 이른 아침에 15~30분의 전화를 통해 중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좀 이해가 갔습니다. 저는 중국인으로서 더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품고 박물관에서 나왔습니다. 밖에 나왔더니 너무 더웠습니다. 부채를 열심히 부쳐도 여전히 더웠습니다. 그때에 햇빛에 잘 타서 긴 쳐츠를 입고 본인이 약한 남자라고 자칭한 박상범 선생님이 내기를 제의하셨습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상대방에게 부채질을 30번 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게임을 잘 못해서 먼저 게임하자고 하지 않고 만약 다른 사람이 먼저 게임하자고 하면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에 제가 “상법 선생님이 더우면서도 옷을 벗지 못하는데 제가 꼭 져서 부채질을 해줘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정말 많이 져서 부채질을 제게 많이 해주셨습니다. ㅋㅋㅋ내기를 못하면서 왜 제의를 했을까 싶습니다. 끝내 제가 많이 이겨서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쌍해서 제가 선생님께 부채를 좀 부쳐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신으신 신발을 봤습니다. 횐색 컨버스였습니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번에 선생님과 친구들과 같이 라면을 먹었을 때에 선생님의 검은색 컨버스 신발을 봐서 너무 속상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후로 진짜 신으신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를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검은색 신발 봤던 날은 마침 전 남친이랑 헤이진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감성적인 말을 해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지금 신으셔도 괜찮습니다!! 컨버스는 아주 괜찮은 브랜드이고 선생님이랑 잘 어울립니다.ㅋㅋㅋㅋㅋㅋㅋ 점심을 먹고 나서 주상절리를 보러 갔습니다.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 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부터 빠르게 냉각되었다는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바다 근처인지 시원하고 그리 덥지가 않아서 친구들도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역시 사진을 즐겨 찍었고 바다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날의 하이라이트를 맞이했습니다. 즉 봉길해수욕장에 가서 겪은 일입니다. 저는 바다를 좋아하고 수영도 엄청 좋아하는데 수영복을 안 챙겨 갔습니다. 친구들이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서 잘 노는 것을 보면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때에 우리 착한 박민수 선생님이 귀신같이 저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이 저를 끌고 물에 버려 버렸습니다. 저는 젖으면 상관없지만 제 핸드폰이 젖으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해서 바다의 품에 안기면서 제 핸드폰을 높게 들었습니다. 온몸이 흠뻑 젖어 있는 상태로 바로 제 옷과 화장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핸드폰을 해변가에 맡기고 나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상태로 수영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친구랑 몰래 다른 친구를 들면서 바다로 던지는 것은 최고였습니다. ㅋㅋㅋ잘 놀았지만 바꿀 옷이 없어서 어떻게 할건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에 민수 선생님이 저에게 걸어왔습니다. 처음에 기분이 좀 나빴지만 그 다음의 선생님의 말씀으로 선생님이 위대해 보이고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이 자기의 옷을 빌려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옷을 걸치고 여자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배은영 선생님을 멀리 만났습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으로 가까이 걸었는데 선생님께서”어머! 민수 선생님인 줄 알았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제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차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뷔페 식당에서 음식을 고르고 있었을 때 민수 선생님이랑 만났습니다. 제가 선생님에게 불평하면서 그래도 잘 놀았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고맙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제가 민수 선생님이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진짜 고마웠습니다. 저는 수영을 진짜 좋아하는데 수영복 때문에 처음에 못했지만 민수 선생님이 저에게 개관적인 조건이 없어도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다는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춥고 젖은 상태이었지만 저녁을 아주 기분 좋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호텔에 가서 샤워하고 옷 씻고 그 다음날에 꼭 일찍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하여 잠을 잣습니다.

  • 7월29일이었습니다. 2박3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에 갔습니다. 날씨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몹시 더웠습니다. 물론 다 불교성지라서 불상과 관음보살의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하도 더워서 핸드폰 꺼내기도 싫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불상 앞에 장삼을 입은 스님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친구 몇 명이 들어가서 기도도 했습니다. 불교를 믿는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어떤 종교에 속해도 믿음과 신앙생활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고향인 오태산(五台山)은 중국에서 유명한 불교성지이고 해마다 적지 않은 중외 관광객들은 명성을 듣고 끊임없이 찾아가서 기도하는 명소입니다. 만약에 친구들 중에 누가 한 번 가보고 싶다면 제가 꼭 초대하고 안내해줄게요~^^

오전에 빠른 속도로 관람을 끝내고 한중연으로 갔다. 저녁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밋집”능이버섯”에서 닭과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역시 감동적인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동적인 맛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식사에 이어 민주의 이별인사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미리 떠나야하는 민주가 말하자마자 눈이 젖어 들고, 목소리도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다 계속 여기 있을 것이고 민주의 속마음을 아마 헤아리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민주의 말을 듣다 보니까 다들 다 글썽글썽했습니다. 민주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동생이기도 하고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민주가 떠날 것에 섭섭하며 민주의 말을 듣고 나서 괴로웠습니다. 그동안 많은 친구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지 못해서 아쉬워하면서 또는 민주가 배은영 선생님께 “하나하나 빠짐없이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저는 뭉클해졌습니다. 배은영 선생님은 저에게 아주 미안하고도 감사하는 분입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를 걱정해주시고 챙겨해주시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제가 속이 쓰리고 정말 말을 꺼내자마자 멘봉될 만큼 힘들었을 때 선생님이 제 마음을 이해해주고 옆에 지켜주고 자기의 경험을 통해 저를 위로해주셨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 밝은 빛이 같은 존재이고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제가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뎌 왔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진심과 따뜻함을 아낌없이 베풀며 끝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하고도 감사했습니다. 제가 일찍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하루하루 아끼면서 보람있게 지낼 거라 다짐했습니다. 저를 위할 뿐만 아니라 저를 감싸주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선생님과 친구들 위해서라도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통일교육원 강의

오래전부터 제가 한국 사람이 남북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오늘 남북관계 현황과 통일정책에 대한 강좌를 들을 수 있게 되어 아주 만족합니다. 오전에 북한에서 온 정은찬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역사와 남북관계 변천과 현황, 그리고 통일정책, 대북정책 방향 등 내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사실 한반도 분단된지 오래돼서 지금 단순히 국가간 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분단 이후에 남과북의 차이점은 국명과 정치에 그치지 않고 경제와 사회까지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분단된 두 나라가 같은 민족입니다. 통일하는 과정은 틀립없이 길고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결국에 통일하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된다는 통일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엔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꿈을 밀고 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되가 아니라 심장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국가 대사이든 사소한 일이든 이루고 싶다면 생각보다 열정과 희망이 더 중요한 말이었습니다. 그런 소신을 가지고 남북관계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될 것으로 믿고 저도 앞으로 계속 열심히 살 것입니다.

음악수업

한 2주전에 우리 음악수업에 유명한 아티스트를 모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음치이지만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은근히 이번 수업을 기대했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보이는 선생님은 외국인이어서 약간 놀랍고 의심했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전통 음악수업을 하면 잘할 수 있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업을 듣고 나서 저는 완전히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영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다 능통하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음악에 조예가 아주 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쟁을 치셨고 다른 한국 선생님의 장구 연주와 말없이 협력이 매우 잘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멋있는 연주는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하던 ‘음악의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며 탄성을 자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기분이 안 좋아도 그런 멜로디가 들리면 왠지 고민도 더 이상 고민이 되지 않아 마음이 비워지고 평온해졌습니다. 저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자기의 기분을 듣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젠 보니까 만약에 신나고 경쾌한 노래 들으면 기분전환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날씨는 선택할 수 없지만 자기의 기분은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선생님들의 연주를 듣고 나서 친구들이 오랫동안 박수를 쳐 드렸습니다. 음악의 힘이 아마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가시지 않은 감동을 주는 것인가봐요...